탈레반 집권 1년, 여아는 '초등교육만'…여성 직장은 '남성 친척'에 물려줘라

여성인권 보호 촉구 국제사회 요구 무시…GDP 45% 해당하던 국제 원조 끊기며 국민 절반 굶주려

"당신의 직업을 물려 받을 남자 친척의 이력서를 보내시오."

영국 BBC 방송은 아프가니스탄 여성 공무원들이 탈레반 관리들로부터 남자 친척에게 자리를 내 주고 직장을 떠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 공무원은 매체에 "17년간 열심히 일했고 석사 학위까지 마쳤다. 그것이 이제 0으로 돌아갔다"고 토로했다. 이는 탈레반 정권이 여성을 경제 활동에서 축출하는 한 단면이자, 여성이 축출돼 남은 자리는 누가 차지하는지 보여주는 실례다.

15일 <워싱턴포스트>(WP)를 보면 탈레반 집권 1년을 축하하며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엔 수백 명의 탈레반 전사들이 모여 행진했다. 그러나 자축의 이면에서 지난 1년간 아프가니스탄은 인구의 절반이 굶주리는 최악의 빈곤에 직면했고 특히 여성들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박탈당한 채 집 밖에서 '물리적으로' 존재가 지워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45%에 해당하는 국제 원조를 받아 왔던 이 나라의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재 해제가 필수적이지만, 여성 인권 보호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탈레반이 응하지 않으며 고통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 인권 보호는 원조를 재개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내 건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지만 탈레반 정권은 이를 개선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여성 공무원, 여성 교사 등 많은 여성들이 직업을 잃었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성들은 노골적인 방해에 직면했다. 이슬람 질서 구축을 위한 '도덕 경찰' 구실을 하는 정부 조직인 '미덕 증진 및 악행 방지부'는 탈레반은 지난 5월 여성 뉴스 진행자들이 방송 때 눈을 제외하고 얼굴을 가리도록 하기도 했다. 앞서 악행부는 여성은 필요할 경우에만 집을 떠날 수 있고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복장을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탈레반 쪽은 복장 규제에 대해 자신들의 집권 이전 여성들이 옷을 입는 방식이 남성의 성희롱을 조장했다며 이 조치가 "악행 방지를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악행부는 탈레반이 집권 뒤 여성부를 폐지하고 그 자리에 신설한 조직이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여성들에게 직업을 내려 놓으라고 말하지 않아도 출퇴근까지 방해하는 여성 이동권 제약은 여성의 사회·경제 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탈레반 정권은 7살 이상의 남성 보호자를 동반할 경우에만 여성의 장거리(75km 이상) 이동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여성의 이동권은 그 이상으로 제약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탈레반 전사들이 통근을 포함해 여성의 단거리 이동도 막아서고 보호자 없이 승차한 여성 승객을 태운 운전기사를 위협하는 등의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여성들이 남성 보호자가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직장에서 퇴출되고 집 밖 출입 자체가 어려운 탓에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여성들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뒤덮고 있는 빈곤 문제에서도 가장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탈레반 1기 집권 때 교육 기회 박탈당한 엄마, 2기 집권으로 학교 못가는 딸 

7학년 이상의 아프가니스탄 여성 청소년들은 지난 3월 여학생의 등교를 허용하겠다는 탈레반의 약속이 뒤집힌 뒤 여전히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당시 적절한 교복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여학생 등교 방침을 철회한 탈레반 정권 아래 여성들에겐 사실상 초등교육만이 허용되는 셈이다.

정권의 여성 교육 거부가 지속되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여성 청소년들의 미래에 대한 포부 자체가 꺾이고 있다. 누룰라흐 스타나크자이(45)는 3월 등교를 거부당한 딸들이 "이전처럼 학교에 가기를 열망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딸들이 '이제 내 미래는 불확실해요' 라며 곧 여성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탈레반의 지난 집권 당시(1996~2001년) 여성 교육 거부를 경험한 여성들은 이제 자신의 딸이 같은 상황에 놓인 것을 본다. 1996년 12살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여성 프로잔(37)은 8살 이상의 여성은 교육에서 배제하는 당시 집권 탈레반의 방침 탓에 졸지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됐다. 교사였던 그의 어머니는 태형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와 그의 자매들을 몰래 교육시켰다. 이제 그는 우주비행사가 되고자 하는 그의 딸 수라야(15)가 등교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프로잔은 "불행히도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며 "25년전 어머니가 그랬듯" 인근에 사는 다른 여학생들을 모아 몰래 교육을 시킬 예정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전했다.

반면 최근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주를 취재한 <워싱턴포스트>는 이 지역에서 남학생들의 취학률이 치솟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일년 사이 이슬람 경전 코란과 이슬람 율법을 가르치는 종교 학교가 크게 늘어난 이 지역의 한 학교는 규모가 두 배로 늘기도 했다. 경제난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을 졸업한 남성들까지 종교 학교에 등록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사회운동 경력이 있고 30대 중반에 학사학위를 가진 한 남성은 현 상황은 "후퇴이고, 우리를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라면서도 종교 학교에서 공부하면 구직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봐 입학을 희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활동가들에 대한 거듭된 구금과 탄압으로 공개적인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찾아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5일 여학생들에 대한 교육 금지에 항의하는 공개 시위를 벌이려던 여성들이 안전한 장소를 찾지 못해 결국 실내에서 작은 규모의 시위만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많은 여성들이 시위를 포기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며칠 전 길에서 비슷한 시위를 하다가 구타당한 뒤 부상에서 회복하는 중이며 나머지는 체포의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구 절반이 굶주려…탈레반 전사들 "해방 위해선 고난 견뎌야"

여성 인권 보장 등 국제사회의 핵심적 요구 사항을 탈레반 정권이 이행하지 않으며 GDP의 45%에 달하는 규모의 국외 원조를 받아 왔던 아프가니스탄의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제재로 9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가 동결됐고 원조도 중단됐다. 세계은행(WB)은 지난 4월 탈레반 집권 뒤 아프가니스탄 경제가 20~30% 가량 위축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며 인구의 절반이 굶주림에 빠졌다. 국제구호단체인 국제구조위원회(IRC)의 지난 5월 자료에 따르면 43%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하루에 한 끼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거의 2000만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정 상태에 처해 있다. 단체의 설문에 응한 90%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은 가장 긴급하게 필요한 것이 식량이라고 답했다. 단체는 "현재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지난 20년간의 전쟁보다 훨신 더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죽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국제사회가 당장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CNN 방송은 15일 비키 에이큰 IRC 아프가니스탄 국장이 국제사회의 제재가 "여성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여성들이 굶주림에 죽어가는 것을 본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카불의 한 의사는 <워싱턴포스트>에 "지금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 많은 이들이 울면서 나를 찾아온다"며 "구직 중인 남성들은 졸업장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여성들은 내게 신경을 안정시킬 약을 구걸하는데 약값으로 낼 돈이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집권 1년을 축하하며 행진한 탈레반 전사들이 집권 뒤 경제가 나빠진 것에 대해 인정하긴 했지만 "해방되기 위해선 고난을 견뎌야 한다"며 "침략자(미군 등)들은 결코 경제를 나아지게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탈레반 전사가 총을 들고 서 있는 가운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복식(부르카)을 착용한 한 여성이 구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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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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