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금지州 피하려 1지망 대학 바꿔"…美 여고생들 '학습권 침해' 우려

"진로 상담 때 낙태 제한 언급 늘어"…미 연구 "낙태 거부된 여성, 인생 이정표 달성 기회 놓쳐"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한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었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고등학생 니나 후앙(16)은 최근 입시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지난달 미 연방대법원은 24주 이내 임신중지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는데 오하이오주는 임신중지를 거의 전면 금지하는 법을 보유 중이다. 후앙은 <로이터> 통신에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주에 위치한 학교로 진학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11일(현지시각) 미국의 일부 여자 고등학생들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뒤 임신중지권을 보호되지 않는 주에 위치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진로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임신중지권 보호 철회가 여학생들의 학업 선택권을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주리주에 위치한 대학에 지원할 예정이었던 알렉시스 프리스코(17)도 최근 고민에 빠졌다. 미주리주는 거의 모든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프리스코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뒤 "엄마가 (헌법상 임신중지권 보호가 철폐될 경우 임신중지 제한법이 발동되는) '트리거' 조항이 존재하는 주에 위치한 학교에 지원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고 통신에 말했다. 메릴랜드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브리나 탈러(16)는 "만일 내가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주에 있는 대학에 다니다가 강간 당해 임신했는데 임신중지를 못하게 되면 어떡하냐"며 5월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는 대법원 판결문 초안이 유출됐을 때부터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주의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불안했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대학 진학 상담업체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진로 계획 때 임신중지에 관해 언급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해당 요인 탓에 1지망교를 포기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학생들이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텍사스주, 플로리다주, 테네시주의 상위권 대학을 지원 희망교에서 제외하거나 재생산권을 침해하는 주에 위치한 대학에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임신중지금지법이 있는 주에 위치한 대학에 여학생들이 지원하지 않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학습권 침해의 문제에 가깝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대학도 서열화 돼 있기 때문에 임신중지권 폐지 때문에 해당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것의 기회비용은 상당하다. 대학진학 상담사인 제이슨 웨인가르텐은 임신중지는 "대부분의 학생이 우려하는 문제지만 그것 때문에 상위권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는 어렵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통신은 학생들이 대학 진학 뒤에도 성별 차이로 인한 차별에 직면하거나 필요시 임신중지를 할 수 없을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등학생뿐 아니라 교수나 연구자의 길을 모색 중인 여성 대학원생들도 진로 선택권을 침해 당하고 있다. 텍사스에서 의과학자 과정을 밟고 있는 한 학생은 "텍사스를 사랑"하지만 과정이 끝나면 이 주를 떠나 다른 곳에서 진로를 모색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이달 초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가 보도했다. 워싱턴DC에서 신경과학 박사후 연구과정을 밟고 있는 로사 레이퍼-소사도 향후 구직 때 각 주의 임신중지 제한을 고려할 예정이다. 그는 "과학자들이 나라의 절반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한다면 과학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사이언스>에 비판했다. 매체는 성별과 경력 단계를 넘어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주에서 직업적 기회를 추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학계 구성원들의 고민이 소셜미디어(SNS)에서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이미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선택권도 제약되고 있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임신중지를 거의 전면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며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대졸 노동자 66%가 텍사스 및 유사한 임신중지금지법을 가진 주에서 일하지 않을 것이라 답했다고 보도했다. 설문에 응한 여성 대졸 노동자 4분의 3이 텍사스법이 해당 주에서 일하는 것을 좌절시키고 있다고 답했다.

가임 시기와 학업 기간, 진로 설계 기간이 맞물려 있는 만큼 예기치 않은 임신을 끝내지 못하는 것은 여성의 향후 생애 계획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수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켈리 존스 아메리칸대 경제학 교수의 지난해 연구에 따르면 24살 이전에 임신중지에 접근할 수 있었던 흑인 여성은 평균 2.5년에서 3년 가량 교육을 더 받았고 대학을 마칠 가능성이 2~3배 더 높았다고 보도했다. 프랭크 퍼스텐베르그 펜실베니아대 사회학 교수는 10대에 엄마가 된 300명의 여성들의 30년을 추적 관찰한 결과 "10대에 엄마가 된 여성들은 출산하지 않은 다른 급우들에 비해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적 상황이 다소 악화됐다"고 했다.

연구자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끝낼 수 없었던 여성들이 학업, 취업을 포함한 향후 계획 자체를 세울 수 없다고 봤다. 지난 2015년 다이애나 그린 포스터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 산부인과·재생산과학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임신중지를 원했지만 하지 못한 여성들은 임신중지를 수행한 여성보다 고용과 연계된 1년 목표를 가질 가능성이 훨씬 적었다. 포스터 교수는 "이 연구는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성이 임신중지를 수행한 여성보다 포부에 찬 1년 계획을 가질 가능성이 훨씬 적다는 점을 제시했다.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성들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중립적인 기대를 가질 가능성이 높았다. 포부에 찬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지표다. 그런 계획이나 희망이 없다면 여성은 인생의 이정표를 달성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VOX>는 여성이 생애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을 막음으로써 여성의 진로를 "가장 교활하게" 제한하는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인 다수가 임신중지권 철폐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행동을 촉구받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행정부의 권한을 동원해 임신중지권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로이터>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은 8일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를 포함해 임신중지 관련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10일 임신중지 관련한 공중보건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염병이나 생화학테러 등 공중보건 비상 상황이 발생할 때 선포될 수 있는 이 조치가 발동되면 보건복지부는 90일간 대응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고 기간 연장도 가능하다. 미국에선 현재 2020년 코로나19 관련 공중보건비상사태가 선포된 뒤 현재까지 계속 연장되고 있다. 11일 미 보건복지부는 의료제공자들은 연방법에 근거해 임신한 여성의 생명이 위험할 경우 임신중지를 제안해야 한다고 상기시키기도 했다.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임신중지권 보호 요구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모습.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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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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