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인권의 바람]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를 위해 나아가자

넘쳐나는 말과 사건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벼리기 위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들의 고민을 <프레시안>에 연재합니다. 우리의 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여는 싹이 되고, 인권 감수성을 돋우는 생각의 밭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9년 4월 11일 형법 269조 '낙태'의 죄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왔고 2020년 말까지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한국에서 '낙태죄'는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서 계속해서 '낙태죄'가 시끌시끌하다. 미국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 '낙태죄'의 헌법불합치의견 전제로 언급되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은 49년 전 여성의 임신중지권를 합법적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성폭력으로 임신한 로(Roe)의 임신중지를 금지한 텍사스 주 형사법이 미국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 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불합치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판결은 임신 3개월까지만 임신중지 가능 기한을 제한한 한계가 있음에도 여성의 임신중지권이 헌법적 권리로 인정된 역사적 판결이었다.

그러나, 2022년 6월 24일 미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 주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6대 3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임신중지의 권리는 헌법 어느 조항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판결로 개별 주에서 임신중지를 금지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50개 주 중 절반은 임신중지에 대한 새로운 규제 법안으로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미 13개 주에서는 법적 효력이 발생하면 임신중단을 자동으로 불법화하는 방아쇠 법(trigger law)들을 통과시켰다.

우리를 흔들고 있는 것은 임신중지 찬반이 아니다

미국의 임신중지권 폐기 판결에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 WHO 사무총장인 게브레예수스는 미국 대법원의 결정을 두고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한 권리를 말하며 "안전한 낙태는 건강과도 직결된 문제다. 안전한 낙태는 생명을 구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2019년 '정부의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예고안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퇴보에 한국도 흔들리고 있다. 임신중지 관련 대체 법안이 공백이라는 핑계로 정치와 사회적 여론이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진짜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공백은 임신중지를 해야 하는 여성 앞에 놓인 현실의 문제이다.

"낙태갈등 상황에 처한 여성은 형벌의 위하로 말미암아 임신의 유지 여부와 관련하여 필요한 사회적 소통을 하지 못하고, 정신적 지지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실행하게 된다(2017헌바127)."

헌재에서 지적했던 '낙태죄'의 문제점이 헌법불합치 결정 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하다. 한국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소재 산부인과 29개 중 임신중지를 문의한 결과 12곳은 임신중절(약물,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임신중지 정보는 인터넷(62.6%)과 친구 및 지인(40.9%)를 통해 겨우 얻고 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1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유통을 승인한 유산유도제(임신중지 약물)가 없어 불법으로 약을 구해야 한다.

임신중지는 비범죄화 되었지만, 임신중지에 대한 안전한 정보를 얻을 수도 없고 유산유도제를 구할 수 없고 의료 현장에서는 기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임신중지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이미 임신중지가 죄가 아닌 한국에서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임신중지 권리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시급하게는 건강보험 적용과 유산유도제 승인부터 이뤄져야 한다. 또한 성‧재생산 권리보장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낙태죄는 더 큰 차별을 가져온다

대법원 판결이 뒤집힌 다음날, 공화당 소속 일리노이 주의 메리 밀러(Mary Miller) 하원의원은 미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백인의 삶을 위한 역사적 승리에 감사하고 싶다"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개최한 유세에서 발언했다. 밀러 의원의 인종차별적 발언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비난을 받아 원고를 잘못 읽은 것이라고 수습하였으나 그 발언이 유발시킨 우려가 분명 있었다. 임신중지권 폐기가 유색인종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다.

6월 24일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격퇴한 대법원 결정에 대한 유엔인권전문가들의 공동웹성명>에서 밝혔듯이 "임신중지가 부자의 특권이 되지만 제한된 자원을 가진 여성은 안전하지 않은 제공자와 관행에 의존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흑인과 원주민 여성과 같이 취약한 상황에 있는 이주 여성, 장애를 가진 사람, 성범죄 피해자 등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유색인종 여성 등은 재생산 의료 서비스에 대한 장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임신중지 금지는 구조적 차별을 심화시킨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임신중지를 해야 하지만 성관계부터 임신중지까지 말을 꺼내기 어려운 청소년 여성은 어디서 어떻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가. 임신중지가 권리로 보장되지 않는 법제도 아래 가난한 여성은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를 할 수밖에 없고 더 큰 사회적 낙인과 차별의 위치로 밀려나게 된다.

WE WILL NOT GO BACK

한국을 포함한 세계가 흔들린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여성 차별적 법 권력에 맞서 미국 시민들과 연대하는 세계시민들이 미국의 판결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수만 명의 여성들이 'We will not go back(우리는 돌아가지 않는다)'라며 자신의 몸에 저항의 글을 적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결정 이틀 후인 26일(현지시간)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수도 워싱턴DC에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4일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에 공식 폐기했다. 2022.6.27 leekm@yna.co.kr ⓒ(워싱턴 AFP=연합뉴스)

미국의 대법원 판결로 한국 사회도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나 우리는 '낙태죄' 폐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법제도에 계속해서 맞서왔고 3년 전 임신중지의 비범죄화를 이뤄냈다. 이제는 임신중지에 대한 찬반이 아닌 안전한 임신중지와 재생산 권리 보장을 구체화하기 위한 논의 테이블에 나설 것이다. 미국의 임신중지 권리를 위한 투쟁에 연대의 마음을 보내며, 우리는 임신중지와 재생산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더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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