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없고 간판만 있는 尹 정부의 '탈원전 백지화'

[초록發光] 탈원전 폐기 들여다보기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1월 2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이라는 두 줄 공약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윤석열 후보는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저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의 지속적 이용은 불가피하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는 바로 추진하고 후속 원전 추진 여부는 국민 의견 수렴하여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히고 있었다. 국민의힘 또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여러 차례 비판해 온 것을 감안하면 놀랄 건 없었다. 다만 정치는 의지의 표명이고 메시지가 중요한지라, 이 두 줄짜리 공약이 더욱 강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당시 윤석열 후보보다 오히려 안철수 후보가 탈원전 비판에는 더 진심이었다. 그는 "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허구"이며 신재생에너지는 효율이 떨어진다며, 안전성은 과학기술로 극복하면 될 일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두 사람의 공동정부가 탄생하면서 탈원전 정책 폐기는 더욱 분명한 방향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이런 호언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폐기의 알맹이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선거운동 시기의 발언과 공약이 아니라 인수위를 거쳐 다듬어진 윤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가 5월에 발표되었는데, 산업부의 "탈원전 폐기,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 부분을 들여다보아도 그렇다.

우선 '원전의 적극적 활용' 항목이다.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조속 재개하고 안전성을 전제로 운영허가 만료 원전의 계속 운전 등으로 2030년 원전 비중을 상향하겠다는 것이다. 뜯어보자면, 원전을 늘린다지만 실제로 추진되는 것은 결국 부지 조성 공사와 주기기 기초 제작까지 해두었던 신한울 3,4호기뿐이다. 부지 선정과 보상까지 진행되었던 삼척과 영덕마저 언급이 없다. 

신규 원전 추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윤 정부도 모르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수명이 다한 원전의 계속 운전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 기준과 투입 비용을 고려하면 그것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 윤 정부가 내놓은 것은 계속운전 신청기간을 늘려서 가동중단 기간을 제도적으로 최소화하겠다는 것 정도다.

다음 항목인 '원전 생태계 경쟁력 강화'는 신한울 3,4호기 건설과 계속운전에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예비품 발주 등으로 관련 산업계 일감을 조기에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원전 생태계를 다소간 유지하겠다는 것이지 다각적 생태계 경쟁력 강화를 담보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기실 생태계라는 것이 변화하고 사멸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고 세계 에너지시장이라는 더 큰 생태계에서 핵에너지가 갖는 위상을 직시하는 게 필요하겠지만, 이 정책은 일단 핵산업계의 강한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렇게 국내의 신규 원전 건설이나 확대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윤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세 번째 항목인 '원전의 수출산업화'다. 2030년까지 수출을 목표로 적극적 수주활동을 전개하며 노형 수출, 기자재 수출, 운영보수 서비스 수출 등으로 다각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지금 세계에서 신규 원전 추진 건수는 한 해에 2-3기도 되지 않는다. 많이 잡아도 2030년까지 수주 물량의 절반 정도를 한국이 하겠다는 목표인데 아무리 덤핑 경쟁에 나선다 해도 현실성은 의문스럽다. 그리고 수출 다각화는 아랍에미리트 바카라 원전처럼 통째로 건설을 맡는 경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으로 보인다. 이렇게 설계나 부품을 수출하는 것은 당연히 돈이 되지 않고, 원전 최강국의 희망에서도 멀어질 것이다.

다음 항목인 '원자력 외교 협력 강화'와 '차세대 원전기술 확보'는 결국 한미 원전동맹 강화와 SMR(소형 모듈 원전) 개발을 의미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 등 최근 일련의 만남에서 이 부분이 여러 차례 부각되었지만, 들여다보면 윤 정부의 요구를 미국이 수용해 준 꼴이지 특별한 새로운 게 있지는 않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은 파이로프로세싱 연구 개발과 관련된 것인데, 핵무기 확산을 우려하는 미국이 태도를 바꿀 구체적인 유인은 없다. SMR은 양국 모두에서 미래 기술로 연구 개발하는 것일 뿐, 언제 상업용 전기를 생산하고 전력망에 연결한다는 계획은 전혀 없다. 이런 단계의 SMR 역시 원자력산업계에게 큰 먹거리는 못 된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대 공학관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도해 온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면담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판만 있는 '탈원전'

어쨌든 이렇게 해서 윤 정부는 기대효과로 무탄소 전원인 원전 활용 확대로 2030년 NDC 달성에 기여하는 것과 원전의 신성장동력화 달성을 꼽는다. 그러나 원전은 무탄소 전원이 아닐뿐더러 목표 역시 NDC 달성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제시되지 않는다. '기여'라는 단어의 소박함이 전해주듯, 탄소중립으로 가려면 오히려 원전 외의 주요한 수단들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또한 앞에서 살펴보았듯, 원자력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신성장'이나 '동력화'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결국 탈원전 정책 폐기라는 명칭과 간판만 있을 뿐, 국내 신규 원전 확충이나 해외 수출 물량이라는 핵심에서 그리 강력한 탈원전 폐기가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이미 탈석탄과 탈원전 그리고 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추세를 윤 정부의 원전 사랑이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윤 정부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원전 관련주 동향이 부진하다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탄소중립이라는 과제 앞에서 원전이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도 조만간 세부 정책 추진 과정에서 드러나고 논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난맥상을 두고 윤 정부만을 비판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역시 그 이름값을 하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2080년대까지 원전을 수명대로 가동하는 너무 느린 탈원전이었고, 지난해 10월 작성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도 원전은 현상 유지를 전제로 했다. 문 정부가 탈원전이 아닌 데 탈원전이라 명명하고 결과적으로 정쟁을 유발했다면, 윤 정부는 역시나 원전 현상유지에 가까운 내용을 가지고 탈원전 폐기와 원전 최강국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에너지 기술과 시장의 변화, 그리고 다가온 기후위기 속에서 다른 여러 산업과 마찬가지로 원자력산업은 냉혹한 처지에 놓여 있다. 허장성세의 단어들이 사용되는 정쟁 뒤에서 에너지산업은 정부와 시장 그리고 사회운동의 합력 사이에서 길을 찾아갈 것이다. 때문에 정치인 개인의 의지에 따라 탈원전도 탈원전 폐기도 쉽게 되는 것이 아니지만 정치의 역할은 분명히 크다. 자원을 낭비없이 배치하고 피해와 갈등을 줄이며, 무엇보다 시민과 기업 주체들에게 미래를 준비할 정제된 시그널을 주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는 이 일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과 정부를 갈아치울 수는 있어도 에너지 정책과 기후위기 대응은 정부들보다 훨씬 오랜 시간동안 그리고 일관되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에너지시민의 폭넓은 논의와 개입이 중요하다. 에너지시민과 기후시민의 활동도 긴 시간에 걸쳐 꾸준해야 하고 더욱 넓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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