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딸 이방카도 "선거조작 증거 없어" 청문회 증언

1·6 조사특위 첫 청문회…특위 "폭도 소환하고 공격 불 붙인 것은 트럼프"

지난해 1월6일 미국 의회의사당 습격에 관한 하원 청문회에서 특별위원회 위원들은 폭동의 책임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있다고 직접적으로 지목했다. 딸 이방카를 비롯 다수의 트럼프 측근들을 인터뷰한 특위는 트럼프 측근들조차 선거조작 주장을 믿지 않았으며 트럼프가 폭력을 선동했을 뿐 아니라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 뒤에도 이를 진압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9일(현지시각) 저녁 8시 황금시간대에 생중계된 청문회에서 특위는 폭력의 책임자로 트럼프를 지목했다. 의사당 습격을 "쿠데타 시도"라고 규정한 1·6 조사 특별위원회 의장 베니 톰슨 민주당 하원의원은 "폭동은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다. 이는 권력 이양을 저지하려는 트럼프의 마지막, 가장 절박한 기회였다. 그리고 트럼프는 궁극적으로 헌법에 반대하는 폭도들이 의사당으로 행진하고 미국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도록 부추겼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은 2020년 대선이 조작이라며 결과 인증을 막고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의사당에 난입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최소 5명이 숨지고 경찰관 140명이 부상당했다. 하원은 지난해 9월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초당적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특위는 이날 청문회를 위해 1천명을 인터뷰하고 14만건의 문건을 검토했다.

특위 부위원장인 리즈 체니 공화당 하원의원은 트럼프가 "폭도들을 소환하고 결집시키고 공격에 불을 붙였다"며 트럼프가 미국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신이 낙선한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모든 증거를 무시했으며, 주정부 및 연방정부 관료들에게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도록 압력을 넣고 폭도들의 의사당 습격을 부추기는 등 ”대통령 선거를 뒤집기 위한 정교한 7개의 계획”을 올해 9월까지 계획된 청문회에서 밝힐 것이라고 공언했다.

특위는 이날 청문회에서 트럼프 측근들조차 부정선거 주장을 믿지 않았다며 딸 이방카의 증언을 제시했다. 제시된 영상에서 이방카는 2020년 대선 약 한 달 뒤인 12월1일 트럼프 측근으로 꼽히던 윌리엄 바 전 법무장관이 "지금까지 우리는 선거에서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규모의 사기를 보지 못했다"며 트럼프의 선거 조작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을 듣고 "나는 바 전 장관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였다"며 아버지의 선거 부정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바 전 장관은 해당 발언 2주 뒤 사실상 경질돼 사직서를 제출했고 그 달 23일에 퇴임했다. 특위는 청문회에서 바 전 장관을 인터뷰한 영상도 공개했다. 그는 트럼프에게 선거 사기 주장은 "헛소리"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고 증언했고 트럼프의 주장이 완전히 "넌센스"라고 강조했다.

특위는 트럼프가 의사당 폭동을 적극 선동한 것이나 다름 없으며 습격을 보고 받은 뒤에도 늑장대응하며 막으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위원회는 폭동을 주도한 극우단체 프라우드보이스의 회원 수가 트럼프가 대선 기간 그들에 대해 호의적으로 언급한 뒤 3배로 증가했다고 제시했다. 특위는 또 이날 폭도들이 의사당으로 진입한 직후인 오후 2시24분 무렵 거의 실시간으로 트럼프의 트위터 게시글을 낭독하는 영상을 제시했다.

특위는 트럼프가 습격에 앞서 2020년 12월부터 반복적으로 "1월6일에 워싱턴DC에서 집회가 있을 것"이라고 소셜미디어(SNS) 트위터에 게시글을 올렸는데 이 중 12월19일에 올린 "거기에 가라, 그리고 거칠어져라"라는 게시글이 극우단체들에게 "무장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 게시글이 올라온 뒤 하루 뒤 프라우드보이스는 1월6일 시위에 대한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채팅 모임을 만들었다. 특위는 청문회에서 이날 폭동에 참여한 이들이 "우리는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체니는 시위대가 당시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를 교수형에 처하자"고 외치자 트럼프는 "지지자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펜스는) 그렇게 돼야 마땅하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폭동 전날까지 펜스에게 선거 결과를 뒤집으라고 트위터를 통해 공개적으로 압박했지만 펜스는 폭동 당일 선거 결과 인증을 앞두고 의회에서 부통령에게 그런 권한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는 폭동을 보고 받았음에도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위에 증언한 마크 밀러 합참의장은 폭동이 일어난 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에게 이를 진압해야 한다는 거듭된 요청을 받은 반면 마크 메도우 전 백악관 비서실장에게서는 부통령이 모든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라는 "서사"에 집중하자는 정치적 요청만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체니는 이날 트럼프가 법무장관, 주방위군 등에게 어떤 요청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당시 폭동을 막다 부상을 입은 의회 경찰관 캐롤라인 에드워즈가 출석해 증언했다. 당시 바리케이트를 치고 시위대 진입을 막던 에드워즈가 시위대의 폭력으로 의식을 잃는 장면도 공개됐다. 에드워즈는 의식을 찾은 뒤 다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나갔고 두 번의 뇌졸중 끝에 이후 사망한 동료 경관 브라이언 시크닉과 함께 시위대에 맞섰다고 증언하며 습격이 "전쟁"이며 "학살"이었다고 묘사했다.

애덤 킨징거 의원과 함께 특위에 참여한 2명의 공화당 의원 중 하나인 체니는 이날 청문회를 진행하며 조사에 협력하지 않은 동료 공화당 의원들을 비난하며 "언젠가 트럼프가 잊혀질 날은 오겠지만 당신들의 불명예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를 공격하는 특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니는 현재 공화당에서 소외된 상태다. <뉴욕타임스>(NYT)는 공화당이 체니의 지역구인 와이오밍주에서 다른 후보를 내세워 체니를 하원에서 축출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청문회 중계 안해…미 언론들, 청문회 영향력에 비관적 전망

트럼프는 이날 청문회 전에 소셜미디어에 "1월6일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다. 이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운동임이 드러났다"고 썼다.

이날 미국 주요 방송사 중 유일하게 청문회를 생중계하지 않은 우파 채널 폭스(FOX)뉴스는 유색인종이 백인을 대체하려 한다는 극우 음모론인 '대체이론'을 주장해 지난달 미국 뉴욕주 버팔로에서 발생한 인종혐오 총기난사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는 터커 칼슨이 진행하는 정규 방송을 내보냈다. 칼슨은 방송에서 의사당 습격이 "경미한 사건"이었다고 일축하며 폭스뉴스가 "선동을 방영하지 않는 유일한 방송"이라고 했다. 방송은 폭력의 책임을 이를 막지 못한 의회 경찰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에게 돌렸다.

위원회는 이날 청문회를 이례적으로 황금시간대에 방영하며 대중의 반향을 이끌어내려 노력했지만 1년 넘게 시간이 지난 데다 최근 인플레이션 등 현안이 많아 관심을 끌기에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시카고에서 청문회를 시청한 크리스티나 멀로(53)가 방송을 보고 "그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 잠시 잊었던 것 같다"고 지난해 폭동을 환기한 반면 "하지만 지금 사람들의 관심을 붙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많은 전문가들은 청문회가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파편화된 미디어와 양극화된 사회에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1·6 폭동에 대한 입장을 이미 정한 상태고 자신과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의 말만 듣는다"고 분석했다.

공화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청문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날 청문회를 "미국 역사상 가장 합법적이지 않은 청문회"라고 깎아내렸다.

청문회는 9월에 완료될 예정이며 이번 청문회를 포함해 7~8차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13, 15, 16일에 추가 청문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의회의사당에서 열린 지난해 1월 6일 의사당  습격 공개 청문회 증언 영상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증언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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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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