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반대'한다는 '생명 옹호파'들, 사람 죽이는 자동소총은 찬성?

미국, 총기규제법 거북이 걸음 vs. 캐나다, 권총거래 전면금지법 추진

"제발 뭐라도 해라!(Do something!)"

지난 주말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19명의 초등학생과 2명의 교사가 사망한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롭 초등학교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찾았을 때 그가 들은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그럴 것이다.(I will.)"라고 답했지만, 총기 규제 문제에 정치는 작동하지 않은지 오래다.

6-7세의 어린이 20명과 학교 직원 6명이 사망해 최악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불리는 2012년 코네티컷 샌디훅 초등학교 참사 등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직후 여론이 들끓지만, 그때 뿐이다.

지난 2000년부터 2020년까지 20년간 총 886건의 학교 총기 사고가 발생해 383명이 죽고 805명이 부상당하는 등 118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학교를 간 아이가 수업을 듣다가 총을 맞고 사망하는 일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미국에서만 '익숙하게' 일어나는 비극이다.

바이든은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총기규제법안 통과는 결국 의회의 몫이다.

바이든은 30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총기 규제 문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행정조치를 취했고 계속 그런 조처를 할 것"이라며 "그러나 나는 (공격형) 무기를 불법화할 수 없고 신원조회 (규정)을 변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밸디 롭 초등학교 총기 참사 이후 상원에서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간 협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조차도 공화당에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더 강성인 공화당 의원들은 많다. 이러다가 여론이 사그라들면 앞서 그랬듯이 총기 규제 관련 법안은 상원에서 계류하다 폐기될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7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전미총기협회(NRA) 연례 총회에 참석해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그는 "총을 든 악당에 맞서기 위해 총을 든 선한 사람이 필요하다"며 "악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총기 소지가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나다 "개인의 권총 소유 및 거래 금지 법안 추진"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캐나다가 텍사스주 총기 참사로 자극을 받아 권총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거나 거래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30일 기자회견을 갖고 소총 탄창에 5발 이상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하며, 대용량 탄창의 양도와 매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총기 규제 법안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트뤼도 총리는 "총기 폭력은 복잡한 문제지만 사실은 정말 간단하다"며 "우리 지역사회에서 총기가 적을수록 모두가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법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스포츠나 사냥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캐나다에서 일상을 사는데 총이 필요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최단 시간에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도록 설계된 무기는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캐나다에서는 이미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 참사를 비롯해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에서 범인들이 사용한 AR-15 같은 자동소총 1500종 등은 2년 전에 판매가 금지됐다. 또 민간에 유통된 권총을 거둬들이고 보상금을 지급하는 정책도 시행 중이다.

미국에서 공격용 화기에 해당하는 AR-15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전미총기협회의 로비 등으로 관련 법제화는 더디기만 하다. 플로리다 파크랜드 고등학교 총기 참사의 생존자이자 총기 규제 운동가인 데이비드 호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텍사스 총기 살인범과 내 고등학교 총기 살인범은 둘 다 (총기를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법적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이 법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9일 <뉴욕타임스>는 '선데이 리뷰' 섹션에 "당국은 총격범이 합법적으로 무기를 구매했다고 밝혔다"는 문장이 반복되는 전면 검은색 기사를 올렸다. 최근 텍사스 총기 참사와 뉴욕주 버팔로 총기 참사를 포함해 15건의 총기 난사 사건의 총격범이 모두 "합법적"으로 무기를 구매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 기사를 올린 트위터에 한 누리꾼은 다음과 같은 게시물을 댓글로 달았다. 총격범들이 모두 AK-15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공화당의 '생명 옹호파(Pro-Life)'들은 왜 낙태만 반대하고 AR-15은 반대하지 않을까요?"고 물었다.

▲ 대량 살상을 가능하게 하는 공격용 화기 금지 등 총기 규제는 반대하면서 임신중지시술은 '생명 존중'을 이유로 반대하는 공화당의 이중적 잣대를 비판하는 게시물. ⓒ트위터 갈무리(@FrankMikeDavis1)

▲<뉴욕타임스> '선데이 리뷰' 기사 화면.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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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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