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들의 무연고지 출마, '소용돌이'의 지방선거

[최창렬 칼럼] 중앙정치에 포획된 '지방 없는 지방선거'

미국 정치학자 그레고리 헨더슨은 그의 저서인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한국정치를 중앙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로 설명하며 이를 '소용돌이의 정치'로 개념화한 바가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 앙시앵 레짐이 타파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권력은 중앙으로 더욱 집중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토크빌이 제시한 '결사체의 예술'은 권력의 중앙집중화에 대응하고, 파편화된 개인을 가치지향 집단의 구성원으로 참여시켜 권력집중을 완화하고 개인의 정치참여를 증진시키는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민주화 이후 여러 번의 정권교체를 경험했고, 참여와 지방분권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앙으로의 집중은 강화되는 추세다. 한국의 문제만은 아닐지라도 급격한 성장과 경제 규모의 증대, 복지 강화 등 어느 나라보다도 국가의 역할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보수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이는 기업 규제와 부동산 규제 완화 등에 일부 적용되는 정책일 뿐이다.

더구나 수도권으로의 집중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정부의 정책이라는 건 고작 공동주택 공급책으로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 등이다. 지역 간 불균형은 심화되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지역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지방분권이고 균형발전이었다. 그러나 균형발전이라는 구호는 더 이상 정치적 상징성은 물론 실질적 효과와 정책목표로도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고 앞에서 보수정권은 성장 우선 정책을 명시적으로 내걸었다. 지난 정부들 역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라는 큰 원칙에 입각했다는 사실만 봐도 성장은 중요한 목표일 수밖에 없다. 성장은 중요한 가치이고 성장 없는 분배는 가능지도 않기 때문이다.

경제와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대책으로 분배만을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격차와 불평등의 문제는 피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층 간 벌어지는 경제적 수준 못지않게 지역 간 불균형, 특히 지방의 공동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방자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신재생 에너지 등 글로벌 이슈와 인공지능, 전기차 등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의 역량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지만 국내적으로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지방선거가 며칠 후면 끝난다. 대선 후 불과 두 달 여 만에 치러지는데다가, 대선주자급 출마자들의 때 이른 출전, 역대 대선을 통틀어 가장 근소한 표차의 대선 결과 등으로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 때의 대립 양상이 그대로 연장된 선거다. 지방선거는 대체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어왔다. 이번 선거는 워낙 임기 초에 실시되는 선거이기 때문에 중간평가의 성격은 부여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측면보다 '지방 없는 지방선거'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각 지역선거에 나붙는 대형 프로젝트와 건설에 소요되는 재원을 어림잡아 산출해 보면 980조 원이 넘는다. 공약의 진정성을 누가 믿을 것인가. 게다가 대선에 투입됐던 인력들이 바로 지방선거에 출전하는 선거정치의 동학 상,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 불균형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책수단 등의 공유 등이 논의되는 정치과정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레고리 헨더슨이 책을 쓴지 60년이 다 된 지금도 중앙정치가 그대로 지방정치에 전이되는 '소용돌이의 정치'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와 분권을 통한 각 지자체의 특성을 살리는 정치는 처음부터 배제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천 계양을에 가서 지역을 살린다고 한다. 송영길 후보는 인천에서 정치적 무게를 키워 오다가 느닷없이 서울 행정의 적임자라고 나섰다. 안철수 후보 역시 분당에 안랩이 있다는 억지 연고를 동원해 분당갑에 출마했다. 아무리 광역단체라고 하지만 경북에 연고가 있던 유승민 전 후보는 경기도 지사 경선에도 참여했다.

노골적인 권력지향 외에 이들에게 지방자치나 균형발전 등의 가치가 스며들 공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하던 정치인이 갑자기 의원직을 내던지고 광역단체장에 도전하는 것도 난센스다.

이러한 정치의 잘못된 틀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정치는 정치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대선 직후 치러지기 때문에 더욱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지만 과거의 지방선거도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예외가 아니었다.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요구하는 정치인의 '열정'은 정치인의 '탐욕'으로 대치됐고, 권력정치는 지방선거에도 예외가 아니다.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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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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