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엔딩, 대학과 지역의 위기
봄바람에 벚꽃이 휘날리고 있다. '벚꽃엔딩'은 이제 '지역대학의 위기'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상용구가 되어버렸다. 학령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면서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수도권대학 선호 현상이 심해지면서, 소위 말하는 '지방대학'은 폐교 위기에까지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자주 언급되었던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 문을 닫는다'는 말은 이제 현실이 되었고, 심지어 이제는 지방대학들이 한 번에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단순히 지방대학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지역소멸의 문제이기도 하다.
2021년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 발표한 전국의 한계대학은 84개교에 이르며, 대부분이 비수도권에 소재하거나(73.8%) 사립대학(94%)이다. 이들 한계대학은 특히, 중소도시 소재 대학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사회 내에서 산학협력을 통한 인적자원의 배출과 일자리의 순환관계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강조되어 왔으나, 이는 수도권에 대항한 비수도권 주요 거점도시 수준에서 고려되어, 혁신 여건이 열악한 중소도시에서의 검토는 부족했다.
또한 한계대학의 대부분이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에 따라 설립된 사립대학으로, 대학이 소재하고 있는 지역의 주민과 지자체가 '우리 대학'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대학이 지역의 자산이기보다는 그들의 사유재산으로 취급되어져, 대학이 폐교 위기에 있어도 지역 주민과 지자체가 개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향후 지역대학의 폐교는 중소도시 지역경제에 직격탄이 될 것이다. 대학은 그 규모와 재정으로 인해 존재 자체만으로도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대학은 교육을 통해 지역 노동시장에 양질의 인적자원을 공급하고 연구를 통해 지역 산업의 혁신을 지원하며 연구시설을 제공하기도 한다. 대도시, 중소도시를 막론하고 지역발전에 있어서 대학이 갖는 역할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중소도시 혁신공간 조성과 대학
혁신은 특정 공간에서 창출되어진다.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혁신 활동이 이루어지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거점이 있다. 이러한 혁신공간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혁신지구(innovation districts)'다.
혁신지구란, 도시 내 일정한 공간에 스타트업·중소기업·대기업이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환경, 교육부터 창업·판매·금융과 법률 등 전 과정에 대한 매력적인 지원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혁신을 주도할 창조적 인재를 위한 주거·생산·여가와 문화 기능이 어우러지고 이들을 위한 실험실이자 테스트베드로서의 도시환경을 갖춘 혁신공간으로 정의된다(Katz, B. and Wagner, J., 2014, The Rise of Innovation Districts: A New Geography of Innovation in America, Brookings Report.)
이러한 혁신지구는 4차 산업혁명 및 코로나19에 따른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 도시재생과 지역경제 발전의 새로운 흐름이자, 장소기반 혁신정책(place-based innovation policy)의 새로운 방향을 제공하고 있다.
최초의 공식적 혁신지구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22@ 프로젝트와 미국 보스턴 씨포트 혁신지구의 성공적인 혁신지구 개발에 따라 세계 수많은 도시들에서 혁신지구 모델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초기 혁신지구는 혁신 인프라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대도시 도심을 중심으로 주로 형성되었으며, 최근에는 미국 채터누가, 영국 셰필드 등의 중소도시에서도 혁신지구가 출현하고 있음이 경험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대도시에 비해 중소도시는 밀접한 근접성으로 사람들 간의 대면접촉의 편리함을 주기 때문에 지식의 교환과 융합이 쉽게 창출될 수 있다. 중소도시에서 혁신지구라는 혁신공간의 조성은 매력있는 장소만들기를 통해 새로운 삶과 근무 형태를 희망하는 인재들을 지역에 유입하는 발전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소도시 혁신지구 조성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점은, 지역 내에 혁신을 선도할 앵커기관이 존재하지 않거나 그 역량이 미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중소도시의 혁신성장에 있어 지역대학은 중소도시의 혁신지구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인프라이자 잠재적 앵커기관으로서 역할이 강조·강화될 수 있다.
인구 58만의 영국 셰필드에 입지하고 있는 '첨단제조업 혁신지구(Advanced Manufacturing Innovation District)'는, 기존의 산업단지들을 재활성화하기 위해 2015년부터 10년의 중장기계획을 수립하여, 지자체와 지역대학이 주도적으로 혁신지구를 조성하고 있다.
셰필드 첨단제조업 혁신지구는 2000년대 초반에 조성된 Advanced Manufacturing Park(AMP)와 Sheffield Business Park(SBP), Sheffield Olympic Legacy Park(OLP)를 통합·확장하고 중심부에 연구중심 대학캠퍼스를 조성하여, 산학협력에 기반한 지역산업의 재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혁신지구의 중핵기관은 셰필드 대학교에서 설립한 첨단제조연구센터(Advanced Manufacturing Research Center)로 산업단지 내 입주 기관을 대상으로 연구개발, 기술사업화 등의 산학협력 활동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으며, 현재 항공, 원자력, 석유 분야의 첨단제조업 기업들이 입지하고 있다. 이는 구미, 포항 등의 제조업 중심의 국내 중소도시에 충분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혁신지구는 계획적·정책적으로 설계된 커뮤니티이므로 혁신이 쉽게 이루어지며, 대체로 지역 대학의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혁신지구들이 대학의 캠퍼스나 창업공간을 혁신지구로 선정하거나(미국 캠브리지 혁신지구, 필라델피아 혁신지구 등), 대학 연구기관 주도로 혁신지구 내 산업과 기업이 발전하고 있으며(미국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RTP) 혁신지구, 영국 셰필드 혁신지구 등), 혁신지구에 대학의 기능이 없는 경우에는 대학 또는 대학 일부 기능을 유치·이전하고 있다(미국 채터누가 혁신지구, 영국 리즈 혁신지구 등).
혁신지구의 조성 및 발전에 있어서 대학의 존재와 역할은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이자 성공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대학이 먼저 지역을 위해 변해야
최근 대학들은 지역 기반의 지속가능발전을 목표로 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혁신지구에 있어서 대학은 미래의 기업가, 재능 있는 졸업생, 기업가적 교수, 스타트업을 위한 시드머니 등 혁신을 위한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혁신지구 조성은 학령인구 감소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지역대학들과 인구 감소로 지역소멸 위기에 처해 있는 중소도시가 상생할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 국토를 혁신성장의 무대로 삼는 지역혁신체계의 관점에서 지역균형발전정책과 산학협력정책이 그동안 추진되어 왔으나, 과연 대학을 중요한 지역의 혁신 자산으로 인식하고 역할을 부여하였는가에는 정책적 반성이 필요하다.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지역대학을 중심에 세우는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지방대학과 중소도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대학, 기업, 지자체가 상생 거버넌스를 통해 협력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며, 무엇보다 대학이 먼저 지역을 위해 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현장중심의 교육기관으로 개편되어야 하며, 지역 기업 R&D 허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스타트업 육성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한달 남짓 앞두고 있는 현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간담회에서 "지방시대라는 모토를 갖고 새 정부를 운영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는 지역 인재양성 거버넌스 혁신과 지역대학에 대한 지원 강화를 통한 지방시대 개막을 강조하고 있다.
새 정부에서는 지역과 상생하는 대학만들기를 통해 대학-기업-지자체가 선순환하는 지역혁신생태계 조성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되므로, 지역에서 대학이 발휘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판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필자소개
장후은 박사는 일본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지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교육부 정책중점연구소인 경상국립대학교 산학협력정책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한국경제지리학회 국제교류위원회 부위원장 활동과 함께, 산학협력 및 지역개발·산업 정책 등과 관련된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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