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어찌하나…고민 빠진 독일, 웃고 있는 인도

부차 학살 뒤 제재 강화 요구 높아져…"금수보다 관세가 현실적" 분석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부차 학살로 유럽이 다시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 고민에 빠졌다. 유럽연합(EU) 최대 규모 경제대국이자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이 특히 곤경에 처한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4일(현지시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이 러시아에서 석유 및 석탄 수입을 금지하는 것을 지지하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마크롱은 인터뷰에서 "부차에서 일어난 일은 새로운 단계의 제재와 매우 분명한 조치를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유럽 파트너들과, 특히 독일과 협력할 것"이라며 "석유와 석탄 부문에서 행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프랑스 엘리제궁이 러시아 석유와 석탄 금수조치를 지지할 것이며 유럽 차원에서 6일 논의할 것이라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의 러시아산 연료 의존도는 막대하다.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태트(eurostat)를 참조하면 EU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2020년 기준 25.7%에 이른다. 러시아산 천연가스(LNG) 수입 비중은 38.2%, 석탄 수입 비중은 49.1%나 된다. 러시아산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 비중이 8%에 그치는 미국이 일찌감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처를 발표한 데 비해 유럽이 제재를 망설인 이유다. 마크롱도 제재 대상으로 석유와 석탄은 언급했지만 천연가스는 언급하지 않았다.

가장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는 국가는 독일이다. EU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가져 그에 합당한 정치적 역할이 기대되는 독일은 유로스태트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기준 EU 내에서 벨기에·네덜란드 등과 함께 석유와 천연가스의 러시아산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천연가스의 경우 러시아산 수입 비중이 50~75%, 석유는 25~50%에 달한다. 마크롱이 석유와 석탄 수입 중단 제재와 관련해 "독일"을 따로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일단 에너지 금수 조처에 선을 그었다.  <워싱턴포스트>는 4일 베아테 바론 독일 기후경제부 대변인이 즉각적인 에너지 수입 금지 조치는 비현실적이라며 "불행히도 독일은 러시아산 수입에 크게 기대고 있고 이는 지난 10년간 줄기는 커녕 늘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4일 크리스티안 제빙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도 "석유와 가스에 대한 금수 조치를 할 경우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부차 학살로 압박은 거세지는 모양새다. 마테우스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4일 기자회견에서 "독일이 러시아에 대한 더 강한 제재를 막는 주요 방해물"이라고 비판했다.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외무장관도 부차 사건이 "새로운 제재를 불러올 분노의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며 러시아 가스 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폴란드와 이탈리아도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독일 내부에서도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크리스틴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은 현지 언론에 3일 유럽연합이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수입 중단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 연정에 참여 중인 사회민주당(SPD)과 자유민주당(FDP)의 청년 그룹도 러시아에서 화석 연료 수입을 중단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마르셀 더수스 키엘대 안보정책연구소 연구원은 "독일에 광범위한 분노가 퍼져 있고 독일 정치인들은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며 그러나 "이제 좋은 선택이 남아 있지 않다. 대규모의 제재는 독일에 해를 입힐 것이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공범이 된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러시아산 연료 수입 완전 배제보다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는 4일 프랑스 총리실 산하 경제분석위원회(CAE)의 연구를 인용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완전히 중단해도 유럽 경제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긴 하지만 리투아니아·불가리아·슬로바키아·핀란드 등은 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대신 40% 가량의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이들 국가들이 받는 타격이 3분의1에서 4분의1로 줄어들 것이라고 제시했다.

러, 에너지 자원 정치 무기로…"장기적으로는 악수" 전망도

러시아는 이미 연료 수출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달 말 러시아가 4월부터 수출한 가스 대금을 루블로만 받겠다고 발표했고 유럽이 이를 거부함에 따라 지난 주말 가스 공급 중단 우려로 유럽 대륙에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당장 가스 공급이 끊기지는 않았지만 5월 전에 돌아올 결제일까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하루 3억5천만달러에 이르는 유럽의 가스 결제 대금은 이미 제재를 심각하게 약화시키고 있다"며 "유럽이 가스대금을 유로로 결제하든 루블로 결제하든 러시아는 이미 루블화 가치를 방어하거나 수입에 필요한 충분한 외화를 얻고 있다"고 짚었다. 

유럽이 출혈을 감수하고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처를 고심하는 동안 인도는 제재로 갈 곳을 잃은 러시아산 원유를 값싸게 사들이며 반사 이익을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16일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300만배럴을 국제 기준가보다 20% 싼 가격에 5월에 인도받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중국도 이 대열에 동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은 이미 지난 2월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수입 계약을 러시아와 체결한 상태다. <로이터>는 이를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러시아가 중국과 에너지 동맹을 강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에너지 수출을 볼모로 한 러시아의 전략은 자충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가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만 결제하도록 한 조처가 단기적으로는 서방에 반격을 가할 수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계약 훼손으로 공급자로의 신뢰를 저버려 악영향이 있을 것으로 봤다. 이 매체는 "평화 협상의 일환으로 일부 제재가 해제되더라도 러시아산 가스 의존을 끊겠다는 유럽의 결정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가 3일 독일 베를린에서 기자들과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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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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