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갈치국의 기적
"야 꼬마야 솔직히 이야기해, 너, 빨갱이지?"
"아닌데요. 저 빨갱이 아니에요!"
"한데 왜 빨갱이들 있는 백운산으로 들어가려 했어?"
"절에 불 지른다고 해서 산으로 들어간 큰 스님 만나려고 들어간 것이에요."
"조그만 자식이 거짓말 할래!"
"거짓말 아니에요."
"그럼 왜 화엄사에서 너 거기 중 아니라고 했겠냐?"
"화엄사에서 그랬어요?"
"그래!"
"서동월 큰스님이 그랬다고요?"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랬대."
"그럴 리가 없는데요."
"너 이 새끼, 애빨(애기빨치산)이지? 빨리 자백 안 해!"
주먹이 날라 왔다.
다른 경찰이 와서는 다른 것을 시켰다.
"너 진짜 중인지 염불 한 번 해 봐!"
병삼은 오랫동안 절에서 염불하는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에 거침없이 염불을 했다.
"너 화엄사 한자로 써봐."
중이면 한자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한자 테스트도 했다. 천자문도 한 달 만에 뗀 한자실력을 발휘해 단번에 써 보여줬다.
그렇지만 경찰은 병삼을 석방하지 않았다. 그를 빨치산으로 몰 증거도 없지만, 의심을 풀지 못한 것이다. 병삼은 근 한 달 가까이 경찰서에 갇혀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병삼은 초조해졌다. 이대로 감옥에 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됐다. 그 뿐 아니라 이현상 아저씨도 걱정이 됐고, 한산스님이 걱정할 것 같아 마음이 초조했다.
그 같은 가운데 기가 막힌 반전이 일어났다.
"다들 이리와 식사들 하지. 그동안 고생이 많아 특식 준비했네."
취조실 문을 열고 전투경찰 대장 같은 남자가 군복을 입고 들어왔다.
"이 꼬마중은 뭐야?"
"아 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잡았는데, 혹 빨갱이인지 몰라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도 밥은 먹여야지. 야~ 꼬마야, 이거 같이 먹자. 먹어야 조사도 받지."
대장이 내민 찌그러진 양은그릇에는 시래기와 갈치 한토막이 든 시래기 갈치국에 보리밥 한 덩이가 올려 있었다.
국을 보자 배에게 꼬르륵 소리가 나고 목에 침이 넘어갔다.
"어디 가서 고기나 비린 것을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갑자기 한산스님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야 중인 줄 안다는 것이었다.
"대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배 안 고파?"
"배는 고프지만, 큰 스님이 스님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비린 건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어요."
"그래? 이놈 진짜 중이네. 야~ 이 꼬마, 내보내."
갈치국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병삼은 대장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배낭을 챙겨 경찰서를 빠져 나왔다. 경찰서를 빠져 나오는 병삼의 배에는 꼬르륵 소리가 진동하고 있었다.
27. 두 명의 죽음
병삼은 경찰서를 나오자마자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광양향교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 광양향교를 향했다. 광양향교는 경찰서에게 그리 멀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 헌데 한산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여기서 보자고 하셨는데…"
백운산으로 떠날 때 한산스님은 혹 일이 잘못되면 무조건 이곳으로 오라고 이야기하셨다. 너무 오래 갇혀 있어 스님이 떠나신 것인가? 불안감에 병삼은 눈물이 나왔다. 밤이 깊어지자, 혼자 버려졌던 예지동 아지트, 그리고 스님이 혼자 두고 떠난 동해 삼화사의 관음암이 생각났다. 이제 그때보다 컸고, 장소도 동물들이 밤 새 우는 산속이 아니라 나은 편이었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한산스님을 기다리며 향교에서 혼자 밤을 보내는 것은 12살 소년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며칠 뒤 한산스님이 나타났다.
"아이고 병삼아~ 무사했구나!"
"스님~"
한산스님을 보자마자 병삼은 울음을 터트렸다.
병삼은 백운산을 가다가 경찰에 잡힌 것으로부터 그간의 사정을 자세히 얘기했다.
"고생이 많았다. 그래도 배가 무척 고팠을 텐데 갈치국을 안 먹고 이렇게 풀려나왔으니 장하다. 장해!"
"병삼아, 헌데 안 좋은 소식이 있다."
"뭔데요?"
"나는 믿지 못하겠는데, 이현상 아저씨가 죽었다고 한다."
병삼은 자신의 잘못으로 이현상이 죽은 것 같아 스님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엉엉 울었다.
"울지 마라. 사람은 다 한번 죽는 거란다. 우리가 이현상 아저씨의 혼을 위로해주자.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움보살."
한참이 지나, 병삼이 다소 진정한 것 같자, 한산은 다시 입을 열었다.
"헌데 죽은 사람이 또 한 사람이 있단다."
"또요? 누군데요?"
"서동월 스님이다."
"예? 스님이 왜요?"
"네가 안 돌아오기에 나는 네가 잡혔는지 알았다. 네가 잡히면 내가 시킨 대로 화엄사 소속이라고 답할 것 같아, 산사람들을 화엄사에 보내 네가 화엄사 소속이라는 증명서를 써달라고 스님에게 부탁했단다. 헌데 스님이 무슨 일인지 끝까지 거부했다는구나. 네 머리까지 깎아준 사람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러게요."
"그런데 너 좀 살리게 증명서 한 장 떼어달라는데 안 해주는 데에 화가 난 산사람들이 스님을 처형했다고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구나."
"아니 나 때문에 스님을요? 나 때문에 스님이 돌아가셨다고? 내가 뭐라고 스님이 나 때문에 돌아가셔요?"
병삼은 또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어린 나이지만 자신 때문에 스님이 처형을 당했다고 하니 자기 자신이 너무 싫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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