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고용대책, '각자 도생'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지방 소멸 위기, 해결 시간 많지 않아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라고 한다. 그런데 투표에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 외에 다른 투표도 있다. 경제학자 티뷰가 '발로하는 투표'라고 지칭한 '인구이동'이다.

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고 퇴장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더욱 무서운 심판이다.

수도권으로 떠나가는 청년들의 행렬

2000년대 이후 수도권으로 유입된 인구의 흐름을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량이 2016년 이후 다시 증가하고 있다(그림 (가)의 파란색).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이 완결되고 균형상태에 접어드는 것으로 보였는데, 여기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20대 청년층의 수도권 순 유입량이 전체 인구의 순 유입을 초과할 정도로 더 많다(그림 (가)의 주황색). 지난 2010년대(‘10-’19년)에 수도권으로 유입된 20대 청년층은 55만 명이 넘는데, 이는 전체 인구 유입 규모(18.5만 명)의 거의 세 배 규모에 달한다. 중·고령층을 중심으로 귀농·귀촌 인구가 증가한다지만,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청년들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셋째, 20대 청년층 내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유출되고 있으며, 그 규모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00년대(‘01-’10년)만 하더라도 20대 여성(40만 명)보다 남성(45만 명)이 더 많이 수도권으로 이동했다(그림의 (나)). 그런데 2010년대(‘11-’20년)에는 여성(29만 명)이 남성(26만 명)보다 더 많이 이동한 것이다.

▲ 2001~2020년 수도권 인구 유입 추이 (출처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인구이동통계로부터 작성)

특히 세 번째 현상이 흥미롭다. 전통적인 이론에 따르면 여성은 가부장적인 문화나 배우자의 이직에 따른 종속적 이동이 많기 때문에 남성에 비해 이동 성향이 낮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고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여성들의 이동성향이 높아졌다는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문화나 심리적 요인만으로는 왜 이런 변화가 최근에서야 나타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부족하다. 오히려 최근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일자리 양극화가 어떻게 지리적으로 상이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도권 청년 유출의 원인 : 지역 일자리의 구조적 위기

우리나라는 과거 국가 주도의 불균형발전 전략을 취해왔다. 특히 중화학 공업은 지리적인 입지 조건이 중요하기 때문에 전기·전자의 구미, 기계산업의 창원, 자동차·조선·화학의 울산, 화학과 철강의 여수와 광양, 철강의 포항과 같은 산업도시들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수만 명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이들 도시는 지역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인구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반면 상대적으로 지리적 제약이 크지 않은 연구개발, 경영-금융-회계-법률 등 비즈니스 서비스 영역의 전문직 노동자들은 광역대도시로 집중되었다. 구상하고 기획하는 본사 기능은 수도권에, 실행하는 기능은 비수도권에 특화함으로써 나름의 선순환 관계를 형성해왔던 것이다.

이같은 '구상과 실행의 공간적 분업'은 영국의 여성 경제지리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인 메시(Massey)가 주창한 <공간분업론>(Spatial Divisions of Labour, 1984)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그런데 2010년대 초·중반부터 주력 제조업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제조업 쇠퇴는 유가나 글로벌 시장 상황과 같은 경기적 요인도 한몫했지만, 더 근본적으로 로봇의 도입이나 자동화와 같은 기술-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기술변화는 한편으로 연구개발, 정보통신 및 비즈니스 서비스 분야의 고숙련 일자리를 증가시킨다.

다른 한편 중간 수준의 임금을 제공하던 제조업 생산직 일자리는 더 낮은 임금을 제공하는 돌봄이나 플랫폼 노동과 같은 서비스 일자리로 대체된다. 이런 현상은 21세기 이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주요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자리 양극화'는 노동경제학의 '반복업무편향적 기술변화'(Routine-biased Technological Change: RBTC)론에 의해 이론적, 실증적으로 규명되고 있는데, 이같은 현상 뒤에는 기술 발전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담겨있다.

문제는 새롭게 성장하는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다수는 주로 수도권에서 만들어지지만, 자동화로 대체되는 제조업 부문 생산직 중간임금 일자리 다수는 비수도권에서 사라진다는 점이다. 더욱이 성장하는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는 여성의 비중이 많고, 쇠퇴하는 제조업 부문의 일자리는 남성의 비중이 많다.

지역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면 로컬 서비스와 관련된 일자리가 더 많이 사라지는 ‘승수 효과’로 이어진다. 대규모 산업도시의 쇠퇴는 1-2차 협력업체가 소재한 인근의 중소도시, 3-4차 협력업체가 자리잡은 더 작은 지역공동체의 쇠퇴로 이어지며, 초광역권 전체 일자리 감소에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가속화되는 지방소멸위험과 지지부진한 해법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몇 년 사이에 소멸위험지역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소멸위험지역'은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이상 인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곳(0.5 미만)으로 정의되는데,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10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10년 전에 년에 60곳이 조금 넘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대부분의 군 지역은 이미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되었고, 주력 산업이 쇠퇴한 도시들이나 혁신도시, 그리고 대도시 원도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결국 일자리와 관련된 구조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지역소멸의 위기 역시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정부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만들어서 매년 1조 원씩을 지자체에 나눠준다고 하니, 지자체들은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사업 아이템을 짜내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업들이 청년들을 위해 제대로 쓰일지도 걱정이지만, 설령 좋은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기초지자체 수준에서 각자도생하는 방식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 지역 간의 관계는 서로 얽혀 있으므로 개별 지역에 대한 파편적인 접근만으로는 절대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신산업이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각종 투자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십 년 간 지역 클러스터나 IT·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투자가 적었던 것이 아니다. 디지털 전환이나 그린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산업과 인프라 정책들을 쏟아내기 전에 왜 과거의 정책들은 성공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사람 중심의 새로운 일자리 전략 마련이 시급

이상과 같은 하드웨어 중심의 투자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함께 변해야 한다. 즉 사람 중심의 새로운 일자리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지역 일자리 정책의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겉으로는 지역발전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지역의 쇠퇴와 양극화를 불가피하거나 돌이킬 수 없다고 전제하는 순간 아무리 예산을 투입해도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무엇보다 서울-수도권 일극에 집중된 구상기능을 지역으로 분산하겠다는 분명한 목표설정과 의지가 중요하다.

둘째, 수도권 집중된 구상기능을 분산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의 분산이다. 구상기능을 수행하는 핵심 연구개발 인력, 금융-경영, 전문직 등이 지역에서 일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 중소기업과 대학의 혁신, 공공 및 민간 연구소의 확대 등을 통해 지역 인재가 지역에 머물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셋째, 장소기반 정책과 사람기반 정책이 서로 조화롭게 연계되어야 한다. 혁신도시나 도시재생, 도로와 철도, 산업단지 조성과 같이 특정 장소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들은 인력양성이나 채용지원, 고용서비스 등 사람기반 정책과 분리되어서 추진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의 산업과 인구 구성에 따라 맞춤형 정책 수단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넷째, 지역 내 고용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보호와 통합을 강화하는 것이다. 원하청 협력구조 개선, 중소기업 작업장 혁신, 플랫폼노동 등 비전형근로에 대한 보호, 산업안전 강화를 통해 상대적으로 더욱 취약한 지역 일자리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과제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중앙과 지역 모두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지역의 역량이 부족해서 권한을 줄 수 없다는 편견을 버리고, 지역의 역량이 축적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 지역도 모든 것을 내부에서 해결하기보다는 외부의 역량과 자원을 잘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부디 지역이 매력적인 장소로 탈바꿈함으로써 떠나가는 쳥년들의 발걸음을 되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저자소개

이상호 박사는 한국지역고용학회의 상임이사 및 한국고용정보원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방소멸위험지수'를 개발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지역노동시장과 일자리정책평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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