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이후 11년, '후쿠시마'는 이제 고유명사가 되어간다. 다른 한편으로는 잊혀져 간다. 하지만 막상 가보려고 호텔 예약을 하자면 시내(후쿠시마, 현 미나미소마 시)에선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다. '잊혀져 가는 시골 도시'의 현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유는 정부 주도 재건사업에 있다. 먼저 폭발한 도쿄 제1원전 인근에는 허드렛일, 위험한 일거리가 많다. 또 쓰나미나 방사능오염으로 폐허가 된 지역 재건을 위한 토건사업도 많다. 여기에 피난주택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돌아와 다시금 보금자리를 건축하는 일도 많다. 그런 특수 경기에 기대어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몰려온 탓이다. 그 노동자들은 그럼 방사능 오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철인들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소문으로는, 여기서 일하려는 노동자들이 없자 야쿠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 모집을 대행한다고 한다. 미나미소마 시내에는 한국식 이름을 단 술집과 식당도 여러 곳이다. 살림이 어려운 재일조선인들이 다소 임금이 높은 이곳으로 다수 옮겨온 것이다. 그곳을 찾는 이들은 대체로 한국말을 잘 하진 못해도 듣고 이해는 잘 하는 3세, 4세 분들이다. 이런 식의 지역 경기 부흥(?)과 더불어 빠칭코도 늘었다. 긴장과 욕망은 늘 함께인 모양이다. 또 하나 여전히 함께하는 것이 있다. 여전히 높은 방사능 수치가 그것이다.
이 포토 다큐는 2011년 11월 시작해 2020년 코로나가 엄습하기 전까지 매년 수 차례씩 후쿠시마를 오가며 촬영한 것이다. 긴 시간 작업한 것이어서 여러 주제가 섞여 있다. 매년 새로운 주제를 설정해 진행해온 까닭이기도 하다.
처음 왔을 때 느낀 정서는 절망이었다. 주민들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은 더욱이나 할 수가 없었다. 내 시선의 끝에 매달린 풍경의 일그러진 모습이나, 시내 밤거리의 적막함, 떠나간 일상의 흔적이 찬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등은 숨이 폐로만 쉬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했다. 절망의 공기는 폐까지 가기에는 너무 무거워 목에서 입으로만 들락거릴 뿐이었다. 혀가 마르는 숨이었다. 방문이 계속되면서 차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커졌다. 비극의 중심에서 허공을 바라보기보다는 원 밖으로 비극을 끌고 나오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그곳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러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폐허의 마을 어귀에서 쓰레기를 치우다 잠시 쉬는 사이 다가간 내게 내미는 주먹밥과 그들의 잔잔한 웃음소리에서 본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에 갇히지 않고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지나온 일상'처럼 보내며 그 비극을 뚫고 나가려는 그분들의 모습이 내게 미래를 보고 또 구상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 후 내가 세운 목표는 후쿠시마를 100년 동안 촬영하자는 것이 되었다. 내 삶의 물리적 시간의 한계는 '다음 세대 사진가 또는 내 제자'가 맡아서 해주면 가능할 터이니 100년의 촬영은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 작업을 모아 함께 미래를 구상해 본다면 후쿠시마를 반성 없는 비극의 갇힌 터에서 '우리 안으로 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1년이 흘렀다. 풍자적인 차원에서 이제 내 계획은 '전 지구적인 일'이 될 모양이다. 올해 일본 정부가 방사능 오염수를 전 세계인들과 함께 나누겠다고 한다. 곧 시행할 모양이다. 세계 바다의 절반,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남북 아메리카를 두루 아우르고 있는 바다, 태평양에 오염수를 방류할 계획이다. 세상 사람 중, 그 바다에서 난 것을 먹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많다. 그 바다에 핵-방사능을 섞어 세상 사람 모두 함께 <아톰(ATOM)>(데츠카 오사무 作 원자력 로봇)이 되고자 하는 모양이다.
후쿠시마의 자연과 사람들에 절망과 희망, 그리고 인내가 함께한다. 봄은 다시 오는데, 지난 가을의 결실은 겨울을 넘지 못한다. 먹을 수 없어 따지 못한 감은 거기에 그렇게 그냥 달려있는 것이다. 이것을 사진(寫眞, 생긴 그대로 옮겨놓음)으로 다시 내보이는 까닭은, 넘어오지 못한 결실에 손을 내밀어 보고자 함이다. 비록 그것이 땅을 거쳐 다시 감꽃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후쿠시마를 '빼앗긴 들'이라 부르는 데 거부감이 드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다. 공감한다. 의아하기도 할 터이다. 빼앗긴 들이 지시하는 역사적, 지정학적 의미가 '식민 조선'이었기에, 저항의 슬픔이 그것과 등가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영광이, 울진이, 월성이, 고리가 이 땅의 '에너지 식민지'라 부른다면 그것이 과한 일일까?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처럼 사고의 무덤이 깊이 파인 곳이라면, 그리고 그곳에서 생산된 에너지가 거대 도시로 빨려 들어가 정작 주변의 주민들은 그 생산과정에서 생기는 위험만을 떠안는 구조가 여실하다면, 과거 이 땅에서 식민과 수탈을 경험한 민족이 부르는 이름 '식민지'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말이다. 비록 그곳 후쿠시마는 우리를 침탈하였던 제국주의의 동토(同土)지만, 그곳은 여전히 식민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작업의 제목이 그러한 데에는 이런 생각이 깃들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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