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물이 고갈된다면 망하는 건 인류지 지구가 아니다

[함께 사는 길]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가 말해주는 것

"우리가 뭔가 대단한 걸 감추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애석하게도 아는 게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고요의 바다(The Silent Sea)>에서 우주항공국장이 생존 확률 10%도 안 되는 임무를 맡은 대원들에게 내뱉은 말이다. 정말 그럴까? 스릴러 장르에서 '정보 불균형(information asymmetry)'은 극적 긴장감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비밀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보 불균형은 '정보 통제(information control)'로 이어진다. 그래서 '아는 게 없다'는 '알아서는 안 된다' 또는 '알면 다쳐'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악역은 항상 이 감춰진 또는 감춰야 할 '1급 비밀'을 알고 있고, 드러나지 않은 어둠의 조직과 연결돼 있다. 생존과 직결된 비밀을 미리 알고 있는 악역과 이를 전혀 모르고 있는 주인공. 대중은 주인공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냉혹한 게임의 법칙 속에서 조각난 퍼즐을 맞춰 고난과 역경을 모두 극복하기를 원한다. 아니 생존하기를 바란다. 역설적으로 현실에선 가능성이 크지 않기에 말이다.

'우리나라 최초 SF 스릴러'를 내세우며 배두나, 공유가 주연을 맡은 <고요의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 정우성은 제작자로서 감독 최항용의 동명의 단편 영화를 여덟 편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지난 1월 14일 <서울경제> 인터뷰에서 정우성은 "단편을 봤을 때 '물을 찾아서 달로 간다'라는 역설적인 설정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지구를 떠난 우주선과 우주복 안에서만 안전을 보장받는 대원들, 이런 제한된 공간 안에서 스릴을 구현하는 소재였기 때문에, 한국적인 SF가 가능할 것 같았다"라고 밝혔다. 사실 우주 공간은 한국적 SF만이 아니라 보편적 스릴을 구현하는 최적의 장소이다. 인간은 우주선과 우주복이라는 좁은 공간 외에는 생존할 수 없기에 말이다.

'물을 찾아 달로 가는' 드라마

'고요의 바다'는 라틴어로 'Mare Tranquillitatis'라는 달 적도 부근 우측 원형의 어두운 곳을 가리킨다. 17세기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했던 천문학자들이 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기에 이러한 명칭이 생겨났다.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라고 말하며 인류 최초로 달을 밟았던 지점이 고요의 바다이기도 하다.

▲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최항용 연출, 박은교 각본) 한 장면.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는 외부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긴장감을 스릴러 장르의 법칙에 따라 살려냈다. 그 단절과 고립의 무대가 바로 달이다. 드라마는 최악의 지구 상황으로부터 시작했다. 언제인지 모를 미래, 지구는 극도로 메말라 가고 있다. 연평균 강수량이 또다시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여의도 부근 한강은 시냇물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세상은 온통 황톳빛이 되면서 가로수는 앙상하게 말라버려 화석화되고 있다. 수질 오염에 따른 영아 사망률은 통계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식수는 국가 기여도에 따라 등급제가 시행되면서 차등 분배되고 있고, 식량은 물 사용을 줄이기 위해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반려동물 사육은 금기시됐다. 더욱이 과학자들은 향후 10년 내 지구 전체 물 40%가 감소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달의 '고요의 바다'에 '발해 기지'라는 대규모 연구단지를 만들어 비밀 연구를 진행했다. 우주항공국은 5년 전 핵 사고에 따른 방사능 누출로 발해 기지 연구원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히며, 영구 폐쇄 전 중요 샘플을 가져오기 위해 전문가가 포함된 대원들을 소집했다. 우주항공국이 원하는 중요 샘플이 바로 '달의 물' 즉, 월수(月水)였다. H2O라는 기본 화학구조는 지구와 같다. 하지만 월수는 혈액 한 방울을 기반으로 100배 이상 증식하는 일종의 살아 있는 물질이다. 박테리아(세균)인지 바이러스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발해 기지엔 마치 익사한 것 같은 사체들이 즐비했고, 월수 샘플을 찾으러 갔던 대원들도 이 월수에 감염돼 피가 아닌 엄청난 물을 토해내며 죽어 나갔다. 우주 왕복선과 복제 인간은 기본이고 발해 기지 내 인공 중력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의 과학 기술을 지녔지만, 월수는 도저히 분석이 안 되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마치 인류가 우주에 대해 아는 게 여전히 미천한 것처럼 말이다.

발해 기지에서는 '풍성한 바다를 되돌리고 싶다'는 꿈을 안고 이 월수를 지구에 적용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여러 방법의 하나가 복제 인간을 월수에 적용하는 극단적 실험이었고, 수많은 주검 속에서 '루나'라고 불리는 단 한 명의 소녀만이 월수에 적응해 살아남았다. 루나는 불사신에 가까운 사기급 캐릭터다. 엄청난 민첩성과 힘을 지녔고, 심한 상처를 입어도 월수가 있으면 빠르게 원상회복된다. 마치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울버린처럼. 심지어 달 표면에서 우주복 없이, 즉 산소 없이도 생존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달에서 만들어진 신인류, 즉 '호모 루나 워터스(Homo Lunar Waters)'의 탄생이랄까.

인류 거주지 건설을 위한 인공 월면토 경쟁

드라마 <고요의 바다>는 대원들을 일회용 소모품으로 여기는 국가(우주항공국)와 이익을 위해 살인멸구(殺人滅口)로 월수를 차지하려는 다국적 기업,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생존하려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잘 버무려 놨다. 주인공 중 한 명은 월수에 감염돼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달은 지구 밖에서 태양과 함께 인류가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존재다. 고대 신화에서 신격화의 대상이 됐던 것이 달이다. 역사 이래 현재까지 문학과 음악 등 예술 작품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만큼 인간들과 긴밀한 관계라는 걸 말해준다. 이런 달의 기원에 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 4가지 학설이 있다. 지구 주변을 떠돌던 작은 천체가 지구 중력에 잡혔다는 '포획설', 지구 생성 때부터 같이 만들어졌다는 '쌍둥이 설', 원시 지구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분리설' 등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원시 지구에 화성 크기만 한 행성이 충돌하면서 그 파편이 뭉쳐 달이 만들어졌다는 '거대충돌설'이 유력한 학설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면 드라마에서 등장한 발해 기지처럼 달에 인류의 거주 공간 건설은 가능할까? 2016년 3월 국제학술지 <뉴 스페이스>는 특별판 서문에서 "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이번에는 달에 머물기 위해서다"라고 밝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는 논문을 통해 100억 달러, 현재 환율로 우리 돈 11조8900억 원이 있으면 달에 인류 거주지 건설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마도 지구에서 모든 건축 자제를 수송해서 지으려면 적어도 수십 배에서 수백 배 비용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구 저궤도에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물 1ℓ 운송 비용이 5000만~6000만 원이 들어가는 상황을 고려하면, 달까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이 비용이 든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월면토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달 기지 건설에 달 토양을 건축 자제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저렴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폴로 11호가 지구로 귀환하면서 달 토양 380kg을 싣고 왔다. 현재 이 중 절반만 남아 있는데, 전 세계 연구 요청을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월면토를 채취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뿐이고, 이들 국가는 격한 달 탐사 경쟁일 벌이고 있다. 그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인공 월면토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매일경제>는 2021년 발간한 <비욘드 그래비티>에서 "월면토를 만드는 자, 우주를 지배한다"라고까지 밝히고 있다. 월면토 화학성분은 알려졌지만, 40억 년 지구와 떨어진 달의 토양은 태양풍과 우주 방사능 영향으로 완벽한 재현이 쉽지 않다고 한다. 태양풍과 우주 방사능 등에 따른 영향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지구와 달리 달에 있는 철(Fe)은 녹이 슬지 않는 성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인공 월면토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 일본, 중국, 캐나다가 만들고 있고, 우리나라 건설기술연구원도 국내 현무암을 이용한 인공 월면토를 만들고 있다.

수구(水球)여서 행복한 지구

2009년 NASA는 인공위성을 달에 충돌시킨 실험을 통해 달 남반구에 얼음 형태의 물이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달 탐사 위성을 쏟아 물 존재 여부를 정밀 탐사할 예정이라 한다. NASA는 달 남반구에 대략 3800㎦의 얼음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구 수자원 총량이 14억㎦, 이 중 70%가 바닷물이고 인류가 직접 이용할 수 있는 민물(지하수, 하천수 등)은 대략 1% 수준인 1400㎦다. 달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량이 지구 민물보다 2.7배 많은 셈이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지구 물은 순환 과정을 거쳐 재생산되지만, 달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은 재생 불가능한 존재라는 점이다.

다시 <고요의 바다>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SF 불모지와 다를 바 없는 한국에서 양질의 CG를 장착한 수준 있는 SF 작품이 나온 것만으로 반갑기 그지없다. 최항용 감독은 세심한 연출을 통해 생존 불가능 공간이 갖는 근원적 긴장감을 배가시켰던 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다만 2% 부족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과학적 불가능성이야 SF 장르의 특징상 상상력의 영역으로 넘길 수 있지만, 설득의 서사 구조, 즉 배경 이야기가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드라마 도입부에 지구적 물 고갈(원인은 알 수 없지만)에 따른 전 세계적인 모습을 다루긴 했지만, 너무 단편적이다. 우주에서 볼 때 지구는 물로 덮인 수구(水球)다. 이 물은 지구의 에너지 균형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이며 생명 부양의 원천이다. 지구 전체 물의 40%가 고갈된다는 것은 지구 전체 생태계 기능의 40% 이상이 멈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국제적 물 전문가인 샌드라 포스텔과 브라이언 릭터는 <생명의 강>(최동진 옮긴, 이뿌리와이파리 펴냄)에서 지구의 생태계 기능은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해서 인간이 인공적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비용뿐만 아니라 엄청난 복잡성에 따라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드라마 설정처럼 지구에서 40%의 물이 고갈돼도 지구는 망하지 않는다. 망하는 건 인류 문명이다. <고요의 바다> 다음 시리즈에선 이런 점을 보완하면 어떨까 싶다. 그래야 위험천만한 월수를, 그것도 엄청난 비용을 들여 만든 발해 기지(아마도 수십조 원 이상 들어갔을 것 같다)에서 비밀리에 계속 연구하는지에 대한 설득력과 공감대 형성되지 않을까 싶다.

지구는 물이 있어 행복한 행성이다. 불행히도 지구 물의 재생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현대 문명이다. 강과 하천을 가로막은 불필요한 구조물은 물을 썩게 하고 생태계 회복을 더디게 하고 있다. 2022년 올해는 4대강사업으로 만들어진 '녹조라떼'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지 10년째 되는 해이다. 녹조라떼엔 청산가리 100배 수준의 마이크로시스틴 독성이 포함돼 있어 먹거리 등 환경 위해성이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낙동강 등에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강을 흐르게 하는 것이 결국 우리 지구와 우리 자신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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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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