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논란, 기후정치의 장으로 가는 마중물

[시민건강논평] "본격적인 '기후정치'를 시작하자"

대선후보 1차 TV토론회가 끝난 후 단연 화제가 된 것은 RE100과 택소노미라는 용어였다. 두 가지 말 외에도 블루수소, 탄소포집기술, 탄소국경세 등 기후에너지 관련 용어, 그리고 MD(미사일방어)체계, 롱샘(L-SAM, 중고도 요격체계), 킬체인(Kill-chain) 같은 익숙하지 않은 국방 용어도 등장했다. 어려운 말 만큼이나 토론 수준이 올라가지 못했으니, 단순한 에피소드로 끝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다음에 벌어진 일을 보면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유력 후보 한 사람이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핵심 트렌드를 아느니 모르느니, 문제다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2월 4일 자 ''RE100' 공방 남긴 토론…"속성과외 소용없어", "엘리트 정당이냐"') 후보 개인도 비판받아야 하나, 우리는 이어진 사회적 논의가 한국의 기후정치 수준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판단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1.

먼저 지적할 것은 '기술만능주의'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에너지정책으로 재생에너지를 강화하자는 쪽이나 원전을 지속하자는 쪽이나 모두 기술과 시장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대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이 계속 제기한 비판을 넘어설 대안이 조금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해야 했다.

몇 가지 예.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며 정부와 기업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기술인 CCUS(탄소 포집·이용·저장) 기술은 아직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관련 기사 : <녹색경제신문> 2021년 12월 26일 자 '[ESG 칼럼] 탄소 포집·저장 기술, 기후위기 해결사인가 '위장술'인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이 기술은 포집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보다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이 훨씬 많다는 보고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관련 기사 : <한겨레> 2월 6일 자 ''탄소포집저장 기술' 효율성 논란…“과대포장” 경고도') 탄소배출권 제도나 탄소국경세 또한 시장원리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기후 불평등을 해결하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일명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1997년부터 기술을 개발했다지만, 기술을 실용화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다.(☞ 관련 기사 : <한국일보> 2021년 12월 24일 '핵폐기물 95% 줄일 수 있다는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 개발 재개될까') 2018년에 추산된 사용후핵연료 관리사업비는 최소 64조원에 이를 정도로 막대함에도 이를 대체할 기술확보는 요원하다.(☞ 관련 기사 : <에너지타임즈> 2018년 10월 6일 자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최소 64.1조 원 추산돼') 원전이 안전하고 싸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유력 후보들이 내세우는 정책들은 기술적으로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거나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확언하기 어려운 것이다. 기술과 과학 발전이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시점에, 기대하는 수준의 완성도에 이를지 알 수 없는데도 공동체가 지향하는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2.

현실정치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우선순위가 턱없이 낮다. 부동산이나 교통과 같이 실생활과 밀접한 이슈와는 비교조차 어렵지만, 사드 배치나 외교 같은 추상적 의제보다도 관심이 미미하다.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하고 탄소감축 실천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은 한국 정치에서도 '필수템'이 되었지만, 다분히 국제용에 머물 뿐 실제 책임을 이행할 국가적 투자나 정책의 전면적 혁신은 뒤따르지 않는다. 나아가 탄소 근본주의를 넘어선 에너지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체제 전환으로 이어지는 '기후정의'는 의제 축에도 끼지 못한다. 대선 국면에서 이 비슷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형편이 아닌가.

국내에 한정해도 기후위기 대응은 국가권력과 정부뿐 아니라 기업과 시민사회 모두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 그야말로 '사회적' 과제이다. 정부는 '범정부'가 되어야 하고 기업은 경제권력 전체가 관련된다. 여러 사회적 주체와 개인도 '소비자'를 넘어 집합적인 정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국가적, 사회적 과제를 대선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정치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하려는 정치인가?

안타깝지만, 지금으로서는 시민이 먼저 주체가 되어야 현실정치와 정치 지도자가 끌려오는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 시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단계라 해야 한다. 그러니 한탄하고 비판하며 촉구하는 것을 넘어, 알고 동의하며 압력을 받도록 기후정치의 주체를 다시 세우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지 않나 싶다.

시민의 책무로 보면, 개인적 실천을 사회화하고 규범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교통 정책과 에너지정책 개혁을 우리의 삶과 연결하기. 개인 행동을 바꾸는 것과 함께, 녹색에너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필수적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에너지정책, 교통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바로 가기 : Seth Wynes and Kimberly A Nicholas 2017 Environ. Res. Lett. 12 074024 'The climate mitigation gap: education and government recommendations miss the most effective individual actions')

기후정치만큼 개인 행동과 이에 기초한 정치 행위가 밀접한 것이 또 있을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기후정치는 거대한 전환과 일상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개인과 체제를 연결하는 기후정치의 주체를 다시 세우는 일이 긴요하다.

기후정치의 실패는 곧 가장 큰 규모의 세대간·지역간·계층간 불평등을 초래하는 역사적 실패가 될 것이다. 'RE100' 논란을 정치적 한담으로 넘기기보다, 절실한 기후정치의 장으로 가는 마중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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