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화장품은 안전할까요?

[함께 사는 길] "화장품 뒷면에 발암물질 플로오르 성분을 확인하세요"

'과불화화합물'이라는 물질명이 조금은 생소할지 모르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우리 생활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음식물이 들러붙지 않게 하는 프라이팬이나 냄비, 불이나 얼룩 방지를 위해 표면 처리된 가죽 소파, 패스트푸드를 담는 1회용 용기나 즉석식품 포장재 등에도 과불화화합물이 들어있을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테플론' 프라이팬이나 '고어텍스' 의류 제품 등은 대표적인 과불화화합물 상표다.

발암물질 과불화화합물

과불화화합물은 물과 기름에 쉽게 오염되지 않고 열에 강한 특징 때문에 우리 생활 전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화장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물과 땀에 쉽게 지워지지 않고 보호막을 형성하는 성질로 워터프루프 기능의 메이크업 화장품뿐만 아니라, 피부 흡수율과 투과성을 높이는 기능으로 로션과 크림 등 기초 화장품에도 사용된다.

문제는 안전성이다. 과불화화합물의 안전성에 관해 설명하기에 앞서 화학적 특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과불화화합물은 탄소와 불소의 강력한 결합을 이루는 4700종 이상의 물질군이다. 과불화화합물은 분자량이 큰 고분자 물질로 안정적인 화학구조로 되어 있다. 분자 단위가 큰 만큼 환경 및 생체 내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고 오랫동안 축적될 수 있어 '난분해성 물질'로 불린다. 과불화화합물이 체내에 축적될 경우 발암 가능성과 간 손상, 호르몬 교란 등 면역계 질환뿐만 아니라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동물실험에서 체중 감소, 갑상선 호르몬 변화 등의 사례가 보고되었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과불화화합물을 그룹2B 발암물질(인체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했고 미국 환경청(EPA)도 "사람에게 발암 가능성에 대한 증거 있는(suggestive) 물질"로 구분했다. 전 세계적으로 과불화화합물이 규제돼야 할 독성물질로 떠오르면서 2009년 스톡홀롬 협약을 통해 국제사회는 대표적인 과불화화합물 2종(PFOS, PFOA)을 관리대상 물질(잔류성 유기오염물질, POPs)로 규정하고 생산과 사용을 금지했다. 유럽연합(EU)은 화학물질등록평가제도(REACH)에 따라 일부 과불화화합물 사용을 제한했고, 미국 환경보호청도 독성물질관리법(TSCA)을 통해 과불화화합물을 규제하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11월 8일 국내 화장품을 대상으로 한 과불화화합물 검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환경운동연합

조사대상 절반에서 과불화화합물 검출

지난 6월 미국과 캐나다에서 판매되는 화장품 절반 이상에서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국내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다. 유럽에서도 화장품에 함유된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우려가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던 터였다. 그렇다면 국내 화장품은 어떨까. 안전한 걸까.

먼저 화장품 실험분석을 위해 국내에서 판매 중인 화장품에 사용되는 성분 중 과불화화합물 검출 가능성이 높은 불소화합물의 종류와 규모를 파악했다. 화장품에 들어있는 불소화합물은 과불화합물의 전구체(어떤 물질대사나 반응에서 특정 물질이 되기 전단계의 물질)다. 대한화장품협회 성분 사전을 통해 “불소화합물(fluorinated Compounds, '플루오르' 또는 '플루오린'으로 검색)” 성분을 검색한 결과 121종을 확인했다. 그 중 실제 국내 화장품에 사용되는 것으로 확인된 43종의 불소화합물 중에서, 해외 선행연구에서 다루었던 성분 및 제품군을 선정해 10종의 불소화합물을 대상으로 '과불화화합물(16종, PFOA를 포함한 PFCAs 계열 12종, PFOS를 포함한 PFSAs 계열 4종)' 검출 여부를 분석했다.

화장품 라벨의 성분 표시에 따라 '불소화합물(성분명 중 플로오르 포함)'이 표기된 화장품 중 판매량이 가장 높고 소비자 리뷰가 많은 제품 20개를 선정했다. 그 결과 10개 제품에서 '과불화화합물'이 불순물로 검출됐다. 모든 불소화합물이 과불화화합물로 분해되는 것은 아니다. 즉 불소화합물을 성분으로 사용했더라도 제품 제조 과정상 과불화합물로 분해되지 않을 가능성과, 실험 분석 과정상 농도가 너무 낮아 검출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입술에 직접 닿는 립 메이크업 제품의 경우 모든 제품에서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다. 자외선 차단제는 80%, 메이크업 베이스 제품은 50%, 파우더/팩트에서는 40%가 검출됐다. 20개 제품 중 10개(50%)에서 1종 이상의 과불화화합물이 미량(4.02~105.5ng/g) 검출됐다. 제품군으로 살펴보면 립 메이크업은 조사 대상 3개 제품 모두에서 검출됐고 자외선 차단제는 5개 제품 중 4개에서 검출됐다. 자외선 차단제는 다른 제품군에 비해 가장 높은 농도(4.28~105.5ng/g)를 보였다. 또한 자외선 차단제 2개 제품의 경우 3종류의 과불화화합물(PFPeA, PFHxA, PFHpA)이 확인됐다. 파우더/팩트는 5개 제품 가운데 2개 제품에서 검출됐다(각 PFHxA 4.02ng/g, PFOA 4.72 ng/g). 메이크업 베이스 제품에서는 2개 중 1개 제품에서 5종류의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다.

이번 국내 화장품 조사에서 검출된 과불화화합물 중 가장 많이 검출된 과불화화합물은 PFHxA로 모든 립 메이크업 제품을 포함해 총 7개 제품(35%)에서 검출됐다. PFHxA는 체내 생체 축적성 물질로 생식기관 및 발달 장애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PFHxA와 유사한 유해성을 가지는 PFHpA는 자외선 차단제 2개 제품, 메이크업 베이스 1개 제품에서 확인됐다. 발암성, 생식독성, 생물 축적성의 인체 유해성을 가진 대표적인 과불화화합물인 PFOA는 자외선 차단제, 파우더/팩트, 메이크업 베이스에서 각각 1개 제품에서 검출됐다. 눈과 피부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PFPeA는 자외선 차단제 제품 4개 중에서 3개에서 검출됐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최인자 분석팀장은 "이번 화장품에서 검출된 과불화화합물 농도는 비록 미량일지라도 사용 과정에서 피부에 직접 흡수된다는 점, 하루에도 여러 개의 화장품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과불화화합물은 잔류성이 강하기 때문에 낮은 농도라도 체내 축적 시 발암성 등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유럽 등은 규제 국내는 아직

최근 몇 년간 유럽, 북미 등 해외에서도 화장품 내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지난해 6월 북미에서 판매되는 화장품의 절반(52%)에서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다. 이보다 앞서 2018년에 보고된 덴마크 환경보호청의 화장품 분석 결과도 북미와 한국과 같이 유사한 종류의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다. 다만 화장품 내 과불화화합물 검출 농도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국내 조사와 지금까지 공개된 국외 연구 결과를 비교해 보면, 덴마크(53.46ng/g)가 가장 높은 농도의 과불화합물이 화장품에서 검출되었고, 다음으로 한국(23.17ng/g), 캐나다(14.45ng/g) 그리고 미국(6.45ng/g) 순으로 높았다. 국내 화장품이 덴마크에 이어 두 번째로 과불화화합물(PFPeA) 농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화장품 내 과불화화합물 사용으로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유해성 연구 결과가 속속 밝혀짐에 따라 국제적으로 법적 규제가 신설되는 추세다.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는 “3년 이내에 과불화화합물 사용을 전면 통제하고, 규제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을 비롯한 8개 기관이 본격적인 제한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 의회도 화장품에 의도적으로 추가된 모든 과불화화합물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No PFAS In Cosm33etics Act 2021)을 논의 중이다. 2020년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 최초로 주 차원에서 화장품 내 과불화화합물 사용을 금지했다. EU도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추가 규제관리조치에 대해 협의가 진행 중이며 2022년 말까지 과불화화합물을 포함해 특정 성분을 규제하는 화장품 규정(No.1223/2009)을 개정할 방침이다.

국제적으로 화장품 내 과불화화합물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화장품 내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다. 법적 규제가 없으니 그에 따른 정부 차원의 안전관리 기준도 없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정부 차원에서 국내 화장품 내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조사가 진행된 바도 없었다. 이번에 민간 차원에서 화장품 내 과불화화합물 함유 여부와 그 정도를 과학적으로 평가한 것이 국내 최초다.

한편 소비자가 화장품을 안심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기업의 책임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환경연합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한 후 국내 화장품 대표 기업을 대상으로 현재 유통·판매 중인 화장품 내 과불화화합물 조사와 사용 금지 선언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답변 대신 대한화장품협회의 입장만 전했다. 협회의 답변도 무책임했다. 협회는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선진국의 연구 및 규제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소비자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최우선으로 하는 화장품 업계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했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과 같다.

안전한 화장품을 위해

화장품에 과불화화합물을 꼭 사용해야만 할까? 이번 조사 결과 절반의 화장품에서는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되지 않았다. 해당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대체 물질로도 충분히 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연합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현재 국내 화장품 내 과불화화합물 전수조사와 함께 화장품 내 과불화화합물 사용 전면 금지와 엄격한 규제기준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온라인 청원 캠페인("화장품 뒷면에 발암물질 플로오르 성분을 확인하세요")을 통해 시민들에게 국내 화장품에 사용된 과불화화합물 성분 목록을 공개하고 있다. 발암물질로부터 더 안전한 화장품을 위한 시민들의 선택과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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