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 무장폭동 1년, '2024 트럼프 대통령' 위해 공화당은 또 진실 외면할까?

[워싱턴 주간 브리핑] 1.6 美 의회 폭동 1주년 맞는 워싱턴 정가 풍경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트럼프 세력'이 한 최악의 행위인 '미국 의사당 무장 폭동 사건' 1주년이 코앞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암울한 전망, 그리고 지지부진한 '폭동 진상 조사' 상황이 뒤엉킨 워싱턴 정가의 표정은 쌀쌀해 보인다.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까' 했던 미국 의사당 테러 사건은 2021년 1월 6일 백주대낮에 전국에서 워싱턴DC로 모여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 지지자들에 의해 자행됐다. 이들은 이날 오전 백악관 앞에서 "지옥처럼 싸워라", "우리는 의회로 갈 것이다"라는 트럼프의 연설을 듣고 실제 의회로 몰려갔다. 이날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상원의장)이 진행하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승리를 확정지을 예정이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집결한 그들은 창문을 깨고, 문을 부수고 난입해 의사당 내부를 점령했다. 이들은 "펜스를 교수형 시키자" 등 구호를 외치며 의회 곳곳을 누비면서 의회 경찰 등과 대치했으며, 이 과정에서 5명이 사망했고 1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무장 난동은 TV, 인터넷 등을 통해 생중계 됐다. 전 세계인들이 '민주주의 종주국'이라 자부하던 미국에서 자국민들에 의해 의회가 침탈당하는 테러가 발생한 사실을 목격했다. 의회 '폭도'들은 트럼프가 "당신들을 사랑하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는 영상 메시지를 발표하고 나서야 철수했다. 이미 오후 4시가 넘은 상황이었다. 지지자들이 난입한 뒤 트럼프가 메시지를 발표하기까지는 무려 187분의 시간이 걸렸다. 긴급 대피했던 펜스와 의원들은 당일 밤 8시에 회의를 시작해 7일 새벽 바이든의 승리를 승인한다. 

의회 무장 폭동 1주년을 맞는 2022년 1월 워싱턴 정가의 표정은 뒤숭숭하다. 하원에서 '1월 6일 특별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하면서 사건의 진상과 책임 소재가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럼프가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1년전 1월 6일 당시보다 공화당에 대한 '그립'이 세진 트럼프는 이제 2024년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 중 한명으로 꼽힌다. 트럼프가 2024년 재집권할 경우, 미국은 2030년까지 극우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해 민주주의 시스템이 붕괴되고 전체주의로 다른 나라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섬뜩한 전망까지 나온다.

1.6 특별위원회, 청문회 등 공개 조사 활동으로 전환...여름에 보고서 발간 계획

1.6 위원회는 올해부터 공청회를 열고 그 과정을 언론에 공개하는 등, 여론 조성을 위해 보다 더 공개적인 활동 방침으로 전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해 여름 핵심적인 내용을 담은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고 11월 중간선거 전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게 될 경우 위원회 활동 자체가 가로막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최대한 서두르고 있다.

위원회가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공화당 내부의 개입 정도다. 공화당 하원의원들 중 스콧 페리(펜실베이니아), 짐 조던(오하이오) 의원 등이 무장 폭동을 기획한 이들과 연계됐을 가능성이 드러났고, 모 브룩(앨라배마), 폴 고사(애리조나), 마이크 리(유타) 의원 등이 1월 6일 당일 트럼프와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인 케빈 매카시 의원(캘리포니아)도 당일 트럼프와 전화 통화를 했다.

"이방카 등 백악관 내에서도 트럼프에게 즉각 개입 요청...트럼프 묵살"

위원회 조사의 최정점은 트럼프일 수 밖에 없다. 베니 톰슨 위원장(민주당)은 2일(현지시간) CNN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에서 난동을 피우자 백악관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는 결정적인 증언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미 마크 메도스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이 폭동 당일 <폭스뉴스> 앵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트럼프 장남) 등으로부터 트럼프가 당장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문자 메시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리즈 체니 부위원장(공화당)은 이날 ABC와 인터뷰에서 백악관 선임고문이었던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도 폭동 당일 트럼프에게 두 차례나 폭동이 중단되도록 개입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연방대법원에 의회 폭동 관련 백악관 기록을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트럼프 측의 요청을 기각시켜 달라고 신청했다. 트럼프 변호인단은 "헌법과 대통령기록물법 모두 전직 대통령에게 불리한 기밀 기록의 유포를 막을 수 있는 명백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면서 위원회가 관련 기록을 입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연방항소법원은 2주 전 트럼프 측의 요구를 기각했고, 사건은 연방대법원으로 넘어간 상태다. 위원회가 열람을 원하는 자료는 2020년 대선 이후부터 1.6 폭동 후까지 백악관에서 작성된 1500쪽 분량의 자료다.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이 자료 중에는 대선 이후 트럼프의 일정표, 1.6 폭동 전후의 백악관 통화 내역 및 방문자 기록, 메도스 비서실장의 수기 메모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체니는 "트럼프 대통령은 '직무유기죄'를 범했다고 생각한다"며 "위원회는 대통령의 행동과 관련해 강화된 처벌이 필요한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이 패배한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폭도들의 행위를 방관한 것은 헌법을 보존,수호하겠다는 취임 선서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체니는 이날 CBS와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법치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그는 민주주의의 모든 가드레일을 파괴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에 다시는 대통령 집무실 근처에 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체니는 자신의 소속 정당인 공화당을 향해 "우리 당은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에게 충성할 수도 있고 헌법에 충성할 수도 있지만 둘 다 할 수는 없다"고 요구했다.

공화당 지지자 27%만 "트럼프, 의회 폭동 관련 비난 받아야"...과반 이상 "의회 폭동은 자유 수호 행위"

그러나 체니의 주장처럼 공화당이 '헌법 수호'에 나설 것이란 기대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는 것은 과반 이상 공화당 지지자들의 '묻지마 트럼프 지지'다. <워싱턴포스트>와 메릴랜드 대학에서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 중 27%만 트럼프가 1.6 의회폭동과 관련해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CBS 여론조사에서 의회 폭동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들의 85%는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시위"라고 평가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56%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행사"였다고 답했다.

이처럼 공화당 지지자들의 과반 이상이 여전히 트럼프를 열성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화당 지도부가 다른 선택을 하리라고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오히려 리즈 체니, 애덤 킨징어 등 의회 폭동 직후 제출된 트럼프의 두번재 탄핵소추안에 찬성했던 공화당 의원들이 내쳐지는 분위기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대화된 미국의 현 정치 상황을 놓고 내란, 더 나아가서는 내전 상태에 가깝다는 분석이 정치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더 나아가 "미국 민주주의의 붕괴"를 걱정하는 의견도 나왔다. 토마스 호머-딕슨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로얄로드 대학 정치학 교수는 2030년까지 미국이 우파 독재 정권하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3일(현지시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호머-딕슨 교수는 "2014년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것이란 주장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터무니없다고 느꼈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런 가능성들이 터무니 없거나 상상하기엔 너무 끔찍해 보인다고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24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주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레드 스테이트'에서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전제로 이같은 전망을 폈다. "2024년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할 경우, 2025년까지 미국 민주주의는 붕괴되어 광범위한 시민 폭동을 포함한 국내 정치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 최소한 2030년까지 미국은 우익 독재정권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

1.6 위원회 활동을 포함해 민주당이 연방정부와 연방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올해 11월 중간선거까지가 어쩌면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을 수 있는 얼마 안 남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오는 6일 바이든과 트럼프는 의회 폭동 1주년을 맞아 각각 성명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은 백악관에서 트럼프가 의회 폭동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힐 계획이며, 트럼프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2020년 대선 부정 선거 주장과 의회 폭동의 불가피성에 대해 호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1.6 의회폭동 1주년을 맞는 워싱턴 정가의 표정은 여전히 뒤숭숭하기만 하다. ⓒ<가디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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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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