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지자 부모의 크리스마스 선물 총으로 4명 살해한 15세 소년

[워싱턴 주간 브리핑] 트럼프 지지자들은 왜 '총기 소지 권리'에 집착할까

미국 미시건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난 11월 30일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용의자의 부모들도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체포됐다.

미시건주 옥스포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던 크럼블리(15세)는 지난달 30일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학생 4명이 죽고, 교사 1명을 포함해 7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던은 1급 살인, 테러 등 12건의 중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이던이 기소되던 날 검찰은 부모도 사건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기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이들 부모는 돌연 종적을 감췄으나 12월 4일 디트로이트에서 체포됐다고 CNN이 보도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던 크럼블리의 아버지 제임스 크럼블리는 지난 11월 26일 아들과 함께 범행에 사용된 총을 구입했다. 이던은 총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오늘 나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얻었다"고 썼다. 어머니 제니퍼 크럼블리도 아들의 총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면서 "그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적었다. 또 제니퍼는 이던을 주말에 사격장에 데려갔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에 한 교사가 이던이 휴대폰으로 탄약에 대해 검색하는 것을 보고 학교 관계자들에게 알렸고, 학교 측은 어머니 제니퍼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제니퍼는 이날 저녁 이던에게 "ㅎㅎㅎㅎ 나는 네게 화나지 않았어. 너는 붙잡히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해"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 당일, 또 다른 교사가 이던이 반자동 소총을 그리고 그 밑에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도와줘"라고 메모를 쓴 것을 발견하고 학교 측에 보고를 했다. 이 메모에는 "내 삶은 쓸모가 없다", "세상은 죽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는 이던 부모에게 상담교사를 통해 아들을 조퇴시키라는 요청을 했으나 부모는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이던은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했다. 사건 발생 직후 (뉴스 속보를 통해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제니퍼는 아들에게 "이던, 하지 마라"라는 문자를 보냈고, 제임스는 911에 전화를 걸어 집에 보관하던 총이 사라졌다고 신고했다. 검찰은 크럼블리 부부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용의자 이던 크럼블리(가운데)의 부모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됐다. ⓒ<뉴욕포스트> 화면 갈무리

트럼프에게 "총기 소유 권리를 허락해줘 감사하다" 편지 쓴 총기 난사범 엄마

<데일리비스트>에 따르면, 제니퍼는 2016년 대선 직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그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자로서, 무기를 소유할 권리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수정헌법을 존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썼다.

이번 옥스포드 고등학교 총격 사건 뿐 아니라 지난해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에 총기를 난사해 2명을 살해하고 1명을 부상당하게 만든 카일 리튼하우스 사건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점이 트럼프 지지자라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헌법(수정헌법 2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권리다. 이는 수정헌법 제1조의 종교와 표현의 자유와 함께 신성불가침의 기본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느 나라나 개별 법안과 달린 헌법을 개정하는 일은 전폭적인 여론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국에서 총기 사고로 12분에 1명 꼴로 목숨을 잃는(‘총기 폭력 아카이브' 통계) 등 민간인의 총기 소유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분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개인의 총기 소지의 자유와 권리가 다른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총기를 소지할 개인의 권리가 어느 수준까지 보장돼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확연하게 구분된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총기 소유의 권리와 자유"를 강조한다.

이처럼 총기 문제가 정치적 당파성의 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를 거치면서 목소리가 커진 극우세력들은 오히려 총기 자유를 더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이힐을 신은 트럼프'라는 별명을 가진 공화당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조지아)은 샌디 훅 초등학교(2012년), 파크랜드 고등학교(2018년) 등 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돈을 주고 고용한 배우들이 거짓으로 꾸민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린은 또 2019년 총기 규제 관련 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파크랜드 총기 사고 피해자를 쫓아다니면서 자신이 총기 소유자라고 밝히면서 괴롭히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또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텍사스주에서는 지난 9월 1일부터 허가나 교육을 받지 않아도 총기를 합법적으로 소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시행되고 있다.

총기 규제 강화 "찬성" 47% vs. "반대" 48%...바이든, 공화당 반대로 총기 규제 법안 통과 힘들 듯

퀴니피악대학교가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등록 유권자 중 총기 규제법 강화에 찬성하는 이들은 47%로 이에 반대한다는 응답자(48%)에 비해 소폭 적었다. 플로리다의 파크랜드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직후에 실시했던 여론조사(2018년 2월)에서 총기 규제 강화를 찬성하는 여론이 66%에 달했던 때와 비교하면 규제를 반대한다는 여론이 크게 늘었다.

이처럼 총기 규제에 대한 찬반 여론이 어느 한쪽으로 크게 기울지 않는 상황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전미총기협회(NRA)의 로비는 미국 정치권이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해왔다. NRA는 회원만 550만 명에 달하는 미국 최대의 로비단체 중 하나다. 2016년 선거에서 NRA에 의해 당락이 결정된 후보 비율이 72%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NRA는 비자금 조성 및 횡령 의혹으로 뉴욕주와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 지난 1월 파산 신청을 하는 등 위기를 겪고 있지만, 여전히 공화당을 기반으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이에 비해 총기 규제를 강화하자는 목소리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파크랜드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총기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10대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는 듯 했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온 듯 하다. 오히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회 불안감이 커지면서 2020년 한해에만 2300만 정이 판매되는 등 총기를 구매한 이들이 급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 규제 강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하원에서는 지난 3월 2건의 총기 규제 관련 법안을 통과됐다. 이들 법안엔 공격용 무기와 고화력 화기의 사용 금지, 총기 구매 시 신원 확인 강화하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법안들은 여전히 상원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상원은 민주당 50석, 공화당 50석으로 동률이기 때문에 법안 통과가 쉽지 않다. 바이든이 부통령을 역임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2012년 총기 규제 법안을 강화하려 했으나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반대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바이든 정부가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의 총기 문화는 '백인 우월주의'와 연관...트럼프, 리튼하우스 마러라고로 초대 "훌륭한 청년"

수정헌법 2조는 미국 건국 초기인 1791년에 만들어졌다. 미국인들이 '총기 소유를 시민의 권리'로 인식하는 것이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통한 건국 과정에서 굳어졌다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말한다. 영국 식민지 지배에 반기를 든 미국인들은 (당시 정부군이 없었기 때문에) 민병대를 조직해 독립전쟁에 나섰고, 총은 자강과 독립의 상징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250여년 전에 끝난 전쟁의 여파로 (현대화된 사회에서) 아직도 무장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 학자들은 '시민'들이 공공장소에서 무기를 소지할 헌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 지역의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사울 코넬 포덤대 교수(역사학)와 에릭 루벤 뉴욕대 교수(법학)는 <애틀랜틱>에 기고한 글("The Slave-State Origins of Modern Gun Rights", 2015년 9월 30일)에서 "총기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총기 소유의 권리는 노예를 보유하고 있던 남부의 세계관과 선례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서 미국의 총기 문화가 노예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 미국에서 '노예'는 '시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시시피 등 상당 수의 남부 지역에서는 (노예 뿐 아니라 자유) 흑인들의 총기 소유를 금지하는 법안이 존재했다. 민주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에서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처음엔 '일정 정도 재산을 가진 백인 남성'들에게만 주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총을 소유할 수 있는 권한도 상당 기간 동안 '백인'들에게만 주어진 일종의 특권이었다. 

미국의 총기 문화는 '인종주의'와 동떨어져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 진보적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며, 이는 '백인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부추겨온 트럼프 지지자들이 '총기 규제'에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옥스포드 고등학교 사건 발생 이전에 반자동소총으로 시위 참가자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나 '정당방위'라는 이유로 무죄 방면된 카일 리튼하우스 사건 때도 이런 움직임이 드러났다. 많은 이들이 리튼하우스에 대한 무죄 판결에 대해 비판했지만, 트럼프는 판결 직후인 지난달 22일 리튼하우스와 그 어머니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플로리다의 마러라고 리조트로 초대해 만났다. 트럼프는 다음날인 23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리튼하우스를 만난 사실을 공개하면서 "정말 훌륭한 젊은 청년"이라고 칭찬했다. 트럼프 지지자들과 총기 옹호론자들 사이에서 이 18세 소년은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리튼하우스를 초대해 직접 만났다. ⓒ트위터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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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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