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국제입양 중단' 약속을 수십년째 못 지킬까?

[북토크] 이경은 "한국, 국제입양 시스템의 기원과 발전에 결정적 영향 미쳤다"

"처음 가졌던 의문은 왜 한국은 국제입양을 멈추지 못할까? 수십년동안 정부 고위인사가 멈추겠다고 했는데 왜 못 멈출까? 왜 아동인권과 관련한, 국제입양과 관련한, 수많은 국제협약들은 한국에만 오면 무력해지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입니다."

한국의 국제입양(해외입양)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경은 박사(법학 박사, '국경너머인권(Human Rights Beyond Border)' 대표)는 11월 30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역사책방'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이 문제에 천착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 박사는 최근 <Global "Orphan" Adoption System: South Korea's Impact on Its Origin and Development (국제 '고아' 입양 시스템: 그 기원과 발전에 미친 대한민국의 영향)>이란 책을 냈다.

한국에서 국제입양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시작됐다. 흔히 전쟁과 빈곤으로 인한 '고아' 발생이 한국에서 지난 70년간 20만 명의 아동을 다른 나라로 입양을 보내게 된 이유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에서 해외로 가장 많은 아동을 입양 보낸 시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다. 당시에는 그 해 출생한 아동의 1%가 넘는 아동이 해외로 입양됐다. 올림픽을 계기로 서구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한국이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도 이즈음 있었던 일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이 입양인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에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해외입양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20년 가까이 '해외입양 중단' 선언에 반복됐지만 2021년 지금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유엔아동인권협약,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등 국제입양을 규율하는 국제협약들도 한국에선 무용지물이다. 1980년대 헤이그협약 논의의 시작점을 제공한 나라인 한국은 현재 100개국이 육박하는 나라가 가입한 헤이그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모두 헤이그협약 가입을 약속했었다.

"국제입양을 개별적인 사건으로 놓고 보면 한두가지만 고치면 중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국제입양은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제도적, 조직적, 시스템적인 일입니다. 한국은 지난 70년 동안 이를 유지하기 위해 가족법, 출생신고제도, 아동보호제도 전반을 엉망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는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공통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편적, 분절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또 국제입양에 있어 한국과 같은 아동 송출국의 책임이 크지만 미국과 같은 아동 수령국이 (송출국의 법적, 제도적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입양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송출국, 수령국 공동의 책임이 있습니다."

이 박사는 네덜란드에서 국제입양과 관련해 국가 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나왔다고 말했다. 최근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는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를 꾸려 과거 국제입양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 2월 네덜란드 정부는 국제입양 과정에서 불법(아동 출생기록 조작 등)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국제입양을 전면 중단시켰다. 이처럼 늦었지만 수령국들에서 국제입양 과정에서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최대 아동 수출국' 중 하나인 한국에서는 여전히 이런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으로 입양됐으나 양부모의 잘못으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해 지난 2016년 한국으로 추방된 입양인 아담 크랩서 씨가 지난 2019년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 박사는 출생신고제도를 비롯한 아동보호와 입양 관련 법제 전반의 개편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처럼 모든 것이 얽혀 있기 때문에 관련된 일 하나라도 실행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십년 동안 약속을 못 지켜온 한국 정부는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기 보다는 모른 척 외면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 책은 이 박사가 지난 2017년 발표한 박사 논문("국제입양에 있어서 아동권리의 국제법적 보호")을 영어로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20만 명 입양인들의 삶을 다룬 것이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최우선적인 목적이었습니다. 또 송출국과 수령국의 정책 담당자들이 읽고 지금까지 우리가 피해왔던 불편한 대화를 시작하고 진실을 마주하고 책임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합니다.마지막으로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읽고 국제적 연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0일 역사책방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이경은 박사가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 책은 해외입양인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해온 (사)뿌리의 집에서 출판했으며, 이날 북토크는 뿌리의집, 법무법인 화우, 화우공익재단이 공동주최했다.

미국의 '입양인 시민권법', 이번에는 통과될까

세계 최대 아동 수령국인 미국에서는 '입양인 시민권법(Adoptee Citizenship Act)' 통과 여부가 중요한 현안이다. 미국으로 국제입양됐지만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입양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이 주요 골자인 이 법안은 하원에서 지난 3월 민주당 애덤 스미스(워싱턴) 의원과 공화당 존 커티스(유타) 의원이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 2009년부터 세 차례나 하원에 발의됐지만 2년 회기 안에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현재 공화당 의원 30명, 민주당 의원 28명이 공동 발의 입장을 밝혔다. 동일한 법안이 상원에서는 로이 블런트 의원(미주리, 공화)이 발의했고, 에이미 클로버샤 의원(미네소타, 민주) 등 5명 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입양부모가 입양절차를 완료하지 않아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입양인들은 최대 4만9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중 한인 출신 입양인들은 약 2만 명으로 알려졌다. 미 의회는 지난 2000년 '아동시민권법(Child Citizenship Act)'을 통과시켜 미국 시민에게 입양된 아동들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은 제정일(2001년 2월 27일) 기준 만 18세 미만의 입양 아동들에게만 적용이 되는 법이다. 때문에 1999년부터 2016년까지 입양된 아동들 중 최대 1만4643명이 성인이 되어도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입양인의 경우, 본국으로 추방되기도 한다.

추방 입양인 아담 크랩서 씨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시민권 문제와 관련해 내가 혼란스러운 것은 미국 정부, 한국 정부, 홀트(입양기관) 모두 현재의 모든 문제를 내 책임인 것처럼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세 살 반이었다"고 말했다. 입양 아동이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경우, 입양 당사자만 유일하게 책임이 없는데 그로 인한 모든 불이익은 입양인이 당해야 하는 부당한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1950년대 샌프란시스코로 입양된 아동 97명이 특별기를 통해 이송되는 장면. 비행기 좌석을 치운 자리에 종이로 만든 박스를 배치하고 아이들을 눕히고 중간 중간 아이들을 돌보는 위탁모들이 앉았다. ⓒ중앙입양원(홀트아동복지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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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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