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대선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수사, 압수수색, 영장 청구, 영장실질심사, 기소, 재판…. 지난 2년여 동안 우리 사회를 핏빛으로 물들여온 단어들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건'을 기술하는 건조한 단어가 아니다. 그 단어 하나하나에 '정치'가 실려 있다. 수사로 민심이 요동치고 압수수색으로 지지율이 춤추었다. 구속영장으로 정치적 희비가 엇갈리고 기소로 정치 판세가 널뛰기했다. 검찰 수사의 향배에 따라 정치적 삶과 죽음이 명멸했다. 한쪽에서는 '정치 살해'가 일어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 벼락부자'가 탄생했다.

'정치의 사법화'는 전 세계적으로 경계의 대상이다. 과도한 사법 활동이 정치를 포획해 그 안에 가두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사치스러운 수준의 말이 돼버렸다. 검찰이 정치를 요리하고, 검찰이 정치의 주체가 되고, 검찰의 손에 한국 정치의 미래가 맡겨졌다. 검찰의 칼날이 정치의 머리 위에서 현란한 칼춤을 춘다. 한국 정치 드라마는 제작자, 각본가, 연출자, 주연 배우가 모두 검찰이다.

현직 검찰총장이 곧바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한 정당의 공식 대선 주자가 되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 각본'이다. 웬만한 나라에서는 드라마로 채택될 수 없는 플롯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 각본이 실현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결국 국민의힘 대선주자로 확정됐다. 이로써 '검찰 정치 드라마'의 제1막이 끝났다.

군부 독재 시절에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으나 이제 권력은 '수사'에서 나온다. 정치를 겨냥한 검찰 수사는 21세기 대한민국에 등장한 일종의 '신종 쿠데타'다. 검찰 수사의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은 자신을 낳은 권력의 가슴을 향해 날아가 꽂혔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권력은 피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그 총알은 유권자를 홀리는 '마법의 탄환'이기도 하다. 이성과 상식을 마비시키고, 합리적 판단과 도덕적 감각을 무너뜨렸다. 이 탄환에는 증오와 분노의 독약도 묻어 있다. 많은 유권자가 마법의 탄환에 중독됐다. 검찰총장 출신 대선주자의 숱한 실언과 망언, 유치하고 시대착오적인 현실 인식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성 대신 맹목적 증오가 불타고, 상식의 자리를 핏발선 분노가 꿰찼다.

수사는 중요한 고비마다 정치 드라마의 결정적 변곡점으로 작용한다. 수사의 흐름에 실려 지지율이 흔들리고, 여론이 들꽃처럼 피어나서 들끓는다. '대장동 사건'에 대한 수사가 개시되면서 여당의 경선은 요동쳤다. 한때 들판을 질주하던 기세의 여당 후보는 어느 틈에 검찰 수사의 그물망에 갇힌 맹수의 신세가 됐다. 검찰 수사에서 새로운 내용이 더해질 때마다 빗발치듯 쏟아지는 여론의 창에 맞아 신음한다.

'고발 청부' 사건 수사가 속도를 냈다면 국민의힘 경선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손준성 검사와 김웅 의원 등에 대한 소환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야당 경선 결과는 다르게 나왔을 수 있다. 관련자들은 필사적인 '지연 전략'으로 저항했다. 갑자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됐다. 그러면서도 법망을 피하고 수사를 빠져나가는 온갖 술책과 꼼수의 기억은 잊지 않았다. 당내 경선 때까지 일단 버티고 보자는 법꾸라지들의 전략은 성공했고 변곡점을 무사히 통과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야당의 공식 대선 후보가 됐으니 이제 '야당 후보 탄압' 프레임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수사라는 것은 원래 수사 주체의 성향, 능력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하게 나온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농간이 작용할 수도 있고, 수사 능력 부족으로 뻔한 범죄를 놓칠 수도 있다. 수사의 '작위'와 '부작위'는 감추어져 있거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작위와 부작위가 일으키는 정치적 후폭풍은 엄청나다.

국민의힘은 수사의 불공정성을 외친다. "대장동 수사를 하는 검찰은 이재명 후보 편들기 수사를 하고, 공수처는 윤석열 후보 죽이기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말은 과연 맞는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검찰 조직 안에는 '친윤석열' 검사들이 득실거린다. 윤 전 총장은 검찰 조직 수호자를 자처해온 '검찰의 맏형'이었다. 윤 전 총장이 이제 대선 고지에 한 걸음 더 다가갔으니 검찰의 눈치 보기는 더 심해질 것이다. 윤 전 총장 본인과 가족·측근의 각종 비리 혐의 수사에서도 검찰은 낮은 포복으로 전진할 공산이 크다. 반면에 공수처는 선천적인 '정치 협심증'에 시달리는 조직이다. 고발 청부 사건을 다루는 어설픈 모습에서 수사 역량의 한계도 드러냈다. 여야 대선 후보에 대한 수사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모든 것을 떠나 검찰(공수처도 '범검찰')의 손에 한국 정치를 통째로 맡겨놓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법적 정의 실현이라는 휘황한 명제 너머로 민주주의 위기라는 비극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사 주체의 작위 또는 부작위에 따라 대선 판도가 출렁이는 구조 속에 한국 정치는 퇴보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게다가 대선까지는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자칫하면 대선 투표일 전날까지 수사가 진행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최소한 수사 기한이라도 설정해야 한다. 11월 말이든, 12월 말이든, 시한을 정해 여야 대선 후보에 대한 모든 수사를 그 시점까지 마무리하는 데 합의를 이뤄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검찰이 각본부터 연출, 주연 배우까지 독차지한 이 정치 드라마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어느 쪽으로 막이 내리든 해피엔딩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검찰이 정치 한복판에 뛰어들면서 촉발된 극심한 혼란과 갈등, 대립은 드라마의 어떤 결말로도 쉽게 봉합되기 어렵다. 그 파장은 우리 앞날에 길고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특히 '검찰 정치'가 성공으로 마무리될 경우 '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정치'가 확실하게 완성된다. 그때쯤 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이렇게 바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검찰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검찰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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