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후보직을 걸어라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언론이 어떤 비리 의혹을 보도했을 때 그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대략 판가름할 첫 번째 분기점은 당사자의 반응이다. 비리 행위자로 지목된 사람이 곧바로 보도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설득력 있게 항변하고 나서면 일단 오보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 반대로 당사자가 우물쭈물 석연치 않은 해명을 내놓거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둘러대거나, 해명이 계속 바뀌거나 하는 경우는 보도 내용이 사실에 부합할 공산이 크다. 대선 정국의 뇌관으로 등장한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어느 경우에 해당할까.

사건의 핵심 당사자 중 한 명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고발장의 존재와 그것을 당에 전달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보받은 자료를 당에 전달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수 없다"며 이를 "공익제보"라고 주장한다. '공익제보'란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그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거나 법령을 위반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부패행위) 등을 신고하는 행위를 말하는 법률 용어다. 검찰이 대신 고발장을 써준 '고발 청부' 가 바로 딱 부러진 공익제보 대상이다. 검사 출신으로 이런 용어의 의미를 모를 리 없는 김 의원이 공익제보 주장까지 하는 것을 보면 무척 당황하기는 당황한 모양이다.

김 의원의 해명도 계속 바뀌고 있다고 한다. 이진동 <뉴스버스> 발행인에 따르면, 취재 과정의 첫 통화에서 김 의원은 "준성이(손준성 검사)하고 이야기는 했는데 그거 내가 작성했다"는 취지로 답변을 했는데, 보도가 나가기 직전 통화에서는 "전달한 건 맞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말이 계속 바뀌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통상 해명이 궁색하다는 결정적 표시다.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은 '무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전혀 알지 못한다. 해명할 것이 없다"는 입장만 나왔을 뿐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명은 하지 않는다. 무대응이 결백과 자신감의 표현인지, 아니면 불안감과 심리적 패닉 상태의 표시인지는 조만간 수사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반응을 평가하자면 '법률가 출신다운 명료함'도 없고 '정치인으로서의 결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사건의 진실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 사건에 자신이 있다면 "손준성 검사를 포함해 검찰 쪽에서 그런 고발장을 작성해 전달한 사실이 전혀 없음을 확인했다"며 조목조목 의문점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해야 옳다. 한 걸음 나아가 "만약 고발 사주가 사실로 확인되면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칠 법도 하다. 윤 전 총장이 그런 자신 있는 모습을 보였다면 '언론보도가 틀렸나' 하고 속으로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은 "정치공작" 등의 주장만을 앞세울 뿐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윤 전 총장은 "조사 결과 나의 무관함이 밝혀진다면 내 책임을 운운하며 정치공작에 앞장선 정치인들은 모조리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작 고발 사주에 검찰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 자신이 후보에서 물러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수사를 통해 진실을 명백히 가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수사의 단서가 될 유력한 물증은 많은 편이다. 사건 당사자와 판사·검사만이 접근할 수 있는 '실명 판결문'이 존재하고, 고발장 초안과 판결문을 보낸 텔레그램에 '손준성 보냄'이라고 찍힌 기록은 이 사건을 풀 수 있는 결정적 열쇠다. '손준성 보냄'의 기록에 대해 윤석열 후보 캠프 쪽은 "발신자의 텔레그램 메신저상의 이름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주장한다. 실제로 손 검사가 그런 민감한 자료를 보내면서 어설프게 범죄의 흔적을 남겼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손 검사와 김 의원이 서로 친한 사이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듯하다. 전화 한 통화면 금방 확인이 될 상황에서 제3자가 이름을 도용하고, 그것을 김 의원이 몰랐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문제는 수사의 주체다. 일단 대검이 진상조사에 나서서 손 검사가 근무했던 수사정보담당관실 컴퓨터를 넘겨받아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진상을 명확히 밝히는 데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대검 자체 진상조사로는 검찰 외부 인사인 김웅 의원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없다. 손 검사가 사용했던 컴퓨터에서 범죄의 흔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손 검사 내지 검찰이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김웅 의원이 어떤 경로를 통해 고발장 초안과 실명 판결문을 받았는지 등을 입체적으로 조사해야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증거 확보를 위해 김 의원을 포함해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압수수색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이번 사안의 내용을 보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담당해야 할 전형적인 유형의 사건이다. 검사 등 고위공직자의 중대한 권력형 범죄를 수사하라고 만든 게 공수처다. 그런데 요즘 공수처의 모습을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 정치적 논란을 두려워하는 '정치 협심증'에다,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의 믿음도 주지 못한다. 조만간 한 시민단체가 손 검사 등을 직권남용과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한다고 하니 공수처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

수사 결과는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힘들다. 손 검사가 연루됐는지, 손 검사가 아닌 다른 검사가 연루됐는지 등 경우의 수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번 의혹이 말끔히 '100% 사실무근'으로 나타난다면 윤 전 총장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대선 경쟁에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고발 사주에 검찰이 조금이라도 연루된 게 확인되면 윤 전 총장은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그때 가서 윤 전 총장이 "나는 몰랐던 일"이라고 발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그런 상황을 미리 감안해 그는 '후보 사퇴'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일까? 윤 전 총장은 이제 천 길 낭떠러지 위의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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