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이기는 정부'로 불판 갈아엎을 수 있을까?

[최창렬 칼럼] 정의당의 변신이 필요하다

'양대 기득권 정당의 카르텔 정당 체제의 타파'. 이는 한국 정당체제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정치가 작동하는 프레임 자체를 바꾸자는 주장의 핵심 내용이다. 정치사회의 구성이 양대 진영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양극체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현상을 지적하는 것으로서 진부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언젠간 진영 대립의 늪을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21대 대선에서도 중간 지대의 정당이 의미 있는 성적을 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이번 대선은 거대 양당의 승자독식 정치를 종식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며 "촛불정당의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진보정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양당정치는 서로 격렬하기만 할 뿐, 민생개혁에는 철저히 무능했다. 산업화, 민주화 세력은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며 "심상정 정부는 시장을 단호히 이기는 정부가 될 것"이라면서 "34년 묵은 낡은 양당 체제의 불판을 갈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득권 양당체제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은 기존의 중도지대의 제3정치와 맥이 닿아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정치이론상으로는 온건 자유주의 보수정당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양대 진영의 대립이 관통하고 있다. 정의당은 진보정당이지만 '낡은 양당체제의 불판'을 간다는 것은 외관상 제3지대의 중도정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심 의원이 주장하는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중도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양대 진영 정치를 타파하자고 하면서 강한 진영정치를 주장하는 역설이 보인다.

정치철학을 토대로 하는 이념은 정치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진보와 보수는 정책을 수립하고 사회 갈등의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나침반으로서 충분한 존재가치가 있다. 이 두 이념은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할 때 서로의 존재를 인정받고 민생에 기여할 수 있다. 이념이 이데올로기적 허구성을 띨 때 이념은 삶을 증진시키는 철학으로서가 아니라 적대와 증오를 배양하는 흉기로 둔갑한다. 이념이 의미가 있으려면 실질적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양대 거대정당 체제가 국민에게 불신 받는 이유는 안보와 냉전, 친일 프레임 등의 이념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으면서 정치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고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퇴행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되겠다면 이는 경제적 구획선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와의 구분으로 본다면 사회주의를 지향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북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시장을 이기는 정부'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기조로서는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하이에크(F. Hayek)는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학자다. 그는 저서 <노예의 길>에서 '사회주의는 노예로 가는 길이다'며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평등은 결국 국가의 비대화를 가져오고 종국적으로 전체주의나 독재로 갈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시장에 대한 맹목적 신뢰처럼 위험한 것도 없지만, 시장을 자본주의적 탐욕의 총아로 보고 이를 억제하고 시장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도 무리한 발상이다.

한국 정당체제를 시민사회의 계층과 세대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시스템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양대 거대정당 체제의 혁파가 답이라는 심 의원의 진단과 처방은 백 번 옳은 얘기다. 그러나 이념에서 자유로운 진정한 시민사회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선 노동에만 치우치거나, 시장만을 옹호하는 정당 모두 지지를 받기 어렵다.

정치적 이익에 매몰된 정치의 속성을 인정하더라도 지금의 한국 정치체제는 혁파되어야 한다. 중도층이 양대 진영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들은 갈 곳을 잃고 무당층으로 방황하다 결국 내키지 않는 어느 한 쪽 정당으로 수렴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어원인 파트(part, 부분)만 대변하며, 정체성 지향의 명분으로 과도하게 시장을 불신하는 메시지로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정의당이 적은 의석에도 불구하고 각종 정치사회적 쟁점 이슈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2019년 조국 사태로 정의당이 부침을 겪으면서 지금의 정의당은 영향력 면에서 많이 약화됐다. 정의당의 대선 출마가 선거공학적 측면에서 진보 진영의 분열로 민주당에 부정적 요인이 있을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유권자들은 정의당의 선전을 보고 싶다.

사회경제 차원에서 과도하게 이념적 색채가 들어가는 것은 정체성의 정치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선거전략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정의당도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시민사회가 무엇을 바라는 가를 실용적 차원에서 성찰해야 한다. 정의당의 주장처럼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충분히 보상을 받았고 산업화 대 민주화의 구분이 대결 정치의 온상이었다.

정의당이 실용정당을 지향하는 것이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보듬어야 한다는 진보 이념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양대 기득권 정당 체제 폐기'와 '시장을 이기는 정부 지향'은 상호 상이한 층위라는 측면을 인정한다 해도 서로 썩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의미 있는 득표를 위해서라도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구호로서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