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게도 연차가 필요하다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학생의 휴식권, 여가권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

내 첫사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처음 짝사랑을 해 보며 감정의 풍랑에 휩쓸려 어찌할 줄을 몰라 갈피를 못 잡았다. 그가 이미 다른 상대와 연애 중임을 알면서도 고백했고 거절당했다. 뻔히 예상한 결말이었고 고백은 그저 마침표를 찍기 위한 의례에 가까웠다. 하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슬펐고 각오했던 것보다 괴로웠다. 도무지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들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 무단결석을 감행했다. 그래 봤자 기숙사에 살고 있었고 학교 바깥 어딘가 멀리로 떠날 기력도 없었다. 아침부터 도서관 뒤쪽 교정 구석 벤치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해가 저무는 걸 보며 조금 울었던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단결석에는 대가가 따랐다. 어쩐지 당일에는 찾는 연락이고 뭐고 안 오더니, 알고 보니 교사들이고 동급생들이고, 내가 어디 교외 행사 같은 데 나간 줄 착각했다고 했다. 다음날 결석 이유를 묻는 담임 교사에게는 실연이 힘들어서 그랬다고 답했고 딱히 잘못했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담임 교사는 앞에 나와 엎드리라고 지시했고, 매를 든 교사에게 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실연 결석'은 마무리되었다. 매를 맞은 아픔은 곧 잦았지만 실연의 괴로움이 희미해지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생에게는 휴가가 있을까

옛날의 일이 문득 떠오른 것은 활동 중인 단체에서 상근자 휴가 규정을 논의하던 때였다. 논의 중에 직계 존속이니 비속이니 하는 제한은 두지 말고 소중한 사람이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면 휴가를 보장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결혼 시 휴가를 보장한다면 이혼이나 이별 시에도 보장해야 하지 않을지, 아직 법률혼이 불가능한 동성 커플의 경우는 어떻게 할지 등의 이야기도 오갔다. 어떤 것이 보다 인간적인 휴가 인정의 기준인가 고민하고 논의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보람차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론 '왜 학생은 이렇게 선택해서 쓸 수 있는 휴가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 싹텄다.

사실 굳이 특별한 사유를 인정받지 않더라도, 원칙적으로 노동자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자기 사정에 따라 며칠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근로기준법'은 1년간 15~25일의 연차 유급휴가를 보장한다. 한국에서는 법에 보장된 휴가를 실제로는 쓰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이 많다는 고질적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초·중·고 학생의 경우에는 자기 사정에 따라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휴가 제도가 있을까? 방학이 있지만 이는 일률적인 휴업이지 개인이 선택하여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근래 도입된 '교외체험학습'이라는 제도가 있긴 하다. 하지만 보호자의 신청이 있어야 하고 여행이나 학습 활동 등의 사유만 인정해 주며 사후 보고서도 제출해야 하니, 자유로운 휴가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꼭 하고픈 취미 활동이 있다거나, 참여하고 싶은 사회 활동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학교를 빠진 학생은 '무단결석'일 수밖에 없다. 학생의 개인적 사정에 따른 휴가, 결석을 인정해 주는 제도는 아예 없는 셈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자와 달리, 학생은 힘들게 일하는 것도 아니고 임금을 받는 것도 아니며 결석을 해도 큰 문제가 없으니, 휴가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학교에 나와 배우는 일이 학생의 교육권 실현을 위한 자발적 과정이고 출석이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면 맞는 소리다. 그러나 학교 출석과 공부는 의무처럼 부과되고 있고, 무단결석은 일탈 내지 비행으로 취급받는다. 대부분의 초·중·고에서 일정 이상의 무단결석을 중징계 대상으로 삼으며 결석은 평가상의 큰 감점 요인이다. 내가 체벌을 당했던 경험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단결석을 한 학생을 벌하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더군다나 교육이 입시 경쟁을 위한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현실 속에서 출결이나 학교생활 전반이 평가의 대상이 되는 이상, 출석은 다분히 강제적인 것이 된다.

교육이 학생을 위한 것이라면 배움에 덜 참여한 것 자체가 이미 학생 본인에게 불이익일 텐데, 학교는 그 이상으로 결석을 규칙으로 금지하고 학생에게 추가로 불이익을 준다. 마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떻든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에 자리를 지키도록 훈련시키고 통제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듯하다. 이런 현실에서 자유로이 쓸 수 있는 공인된 휴가 제도가 없는 것은 꽤나 비인간적인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개인 사정과 쉼을 존중하는 사회를 위해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노동시간도 학습시간도 길고 휴식권, 여가권 보장이 미흡하다. 그래도 노동자의 경우에는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거나 연차휴가를 보장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라도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어린이·청소년의 학습시간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고, 학생에게 휴가권을 보장하는 제도도 미비하다. 이는 청소년들은 사회적 의무나 고됨으로부터 면제되어 있다고 보는 고정관념, 청소년의 삶을 예비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태도의 영향일 것이다. '애들이 힘든 게 뭐가 있냐',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건 다 어른이 돼서 잘살기 위한 것이다' 같은 인식 탓에 청소년들에게는 자유시간이나 휴식 보장이 중요한 권리로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아동인권법 제정으로 적정한 학습시간과 휴식시간 보장'을 내걸었지만 임기가 1년도 채 안 남은 지금도 유의미한 진전은 없다.

교육이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원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학생을 통제하는 과정으로 오랜 세월 생각된 것도 한몫 거든다. 학교가 학생의 결석을 학생과 소통하고 협력하여 해결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학생을 처벌하고 평가해야 할 상황으로 대하는 것이다. 사실 실연이 괴로워 빠졌다는 학생에게 벌을 주는 학교보다는, 학생과 그 일에 대해 대화하고 걱정을 해 주며 빠진 수업에 보충이 필요한지를 묻는 학교가 훨씬 교육적이지 않을까. 학생의 결석을 학생이 교육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거나 포기한 일로 보고 도울 부분을 찾으려는 태도가 교육의 본질에는 더 부합한다. 입시니 관리니 하는 문제로 당장 그러기가 어렵다면, 학생이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가 제도를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 사회가 휴식권과 여가권 보장에 인색한 것에는 개근이 상 받을 일로 여겨지고 개인의 사정에 따른 자유로운 휴가 같은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학교에서부터의 문화가 미치는 악영향도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가 일수를 보장하는 것은 학생들의 행복지수를 높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조건에 있는 학생들에게 보다 평등하고 포용적인 교육 환경을 만드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좀 더 교육적인 학교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 개인의 사정에 따라 쉴 수도 있는, 휴가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큰 보탬이 될 학생 휴가 제도를 논의해 보자.

이 글의 일부는 서울시립대 인권센터 인권뉴스레터에 게재했던 칼럼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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