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계획경제는 국가재정을 기반으로 한다. 국가예산수입의 마련과 예산지출이 국가경제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북한은 자본주의경제의 세금납부 시스템과는 달리 거래수입금, 국가기업이익금, 부동산사용료 등을 재정의 원천으로 삼는다.
거래수입금‧국가기업이익금‧부동산사용료 등을 납부하는 주체는 국가기업소들이다. 각 기업소의 생산 증대와 그에 따른 국가경제 전체의 확대재생산이 없으면 국가예산수입은 줄어들게 된다. 기업소의 경영활동이 그만큼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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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014년부터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도입해 기업소들에 경영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 제도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아래 진행되는 혁신조치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현재 국가기간산업의 연합기업소에서도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시범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기업소는 계획목표에 도달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원가‧가격‧수익성 등의 경제적 공간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또한 금융‧재정공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북한경제의 운영을 알려면 기업관리, 가격, 화폐‧금융, 재정 시스템의 순환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은 계획경제와 시장의 공존과 궤를 같이한다. 총 5편에 나눠 살펴본다.
한국개발연구원 이종규 선임연구위원의 글 "북한의 재정 충격, 경제적 영향은?"(<KDI 북한경제리뷰>, 2021년 1월호, 53쪽)의 결론 부분이다. 이 수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보고된 국가예산수입과 예산지출의 전년대비 증가율이다. 올해 증가율이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이래 가장 낮은 수치라는 것이다.
5개년계획(2021~25년)의 정비전략‧보강전략과 정리정돈의 기획이 재정 현실과 조우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다만, 재정 '충격'이라든가 '변곡점'이라는 지적은 과한 것 같다. 조정국면의 '긴축재정'으로 보는 편이 보다 현실에 부합된다.
국가예산수입에서 거래수입금‧국가기업이익금 80% 내외
코로나19와 대북제재 국면에서 긴축재정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북한의 재정금융을 이해하기 위해 국가예산수입과 예산지출에서 출발해보자. 국가예산수입 증대와 예산 범위에서의 지출은 매년 반복되는 국가 일상사다.
국가예산수입은 거래수입금, 국가기업이익금, 협동단체이익금, 봉사료수입금, 감가상각금, 부동산사용료, 사회보험료, 재산판매 및 가격편차수입금, 기타 수입금 등 국가에 집중되는 화폐자금이다(《국가예산수입법》 제2조). 이 중 거래수입금과 국가기업이익금이 80% 내외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래수입금은 소비품 가격에 포함된 사회순소득의 일부를 국가예산으로 동원하는 자금이다(제20조). 거래수입금을 계산할 때 '소비품 판매수입금'에 정해진 비율을 적용한다(제21조). 소비재의 거래에서 국정가격‧시장가격에 상관없이 판매수입금 규모에 따라 정해진 비율을 곱하는 것이다. 거래수입금에는 생산물판매수입, 건설조립작업액, 대보수작업액, 부가금, 봉사료 등이 포함된다(제28조). 그 중 생산물판매수입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국가기업이익금의 과세표준은 이윤 또는 소득이다. 독립채산제‧준(準)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기업소(기관‧단체 포함, 이하 동일)가 국가기업이익금의 납부 주체다. 기업체는 이윤‧소득 중 하나를 국가기업이익금의 과세표준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윤은 판매수입금에서 원가‧거래수입금 같은 것을 차감한 것이고, 소득은 판매수입금에서 원가(단, 생활비 공제)를 차감한 것이다(제27조). 거래수입금이 부과되지 않는 '생산재' 기업소는 소득을 과세표준으로 하여 국가기업이익금을 납부한다. 판매수입금을 기초로 국가기업이익금을 계산할 수도 있다(제26조).
감가상각금과 부동산사용료
감가상각금은 국가투자에 의한 '생산적 고정재산'에 대하여 납부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예산으로 설비투자를 하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 기업소에 적립된 감가상각금, 기업소기금 등 자체자금으로 설비투자를 한다(2015년 개정 《재정법》 제32조). 생산적 고정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업소의 자체자금으로 충당하면서 기업소에 적립된 감가상각금이 중요해졌다.
부동산사용료는 각 기업소가 부동산을 이용한 대가로 지불하는 사용료다. 부동산을 이용해 얻은 수입 중에 일정한 비용지출을 보상하고 남은 순소득의 일부를 사용료의 원천으로 삼는다. 부동산사용료 부과대상은 '토지‧건물‧자원 같은 것'으로 정하고 있다(《국가예산수입법》 제39조).
《부동산관리법》에 따르면 농업토지, 주민지구토지, 산업토지, 산림토지, 수역토지, 특수토지 등이 토지에 속하고 산업‧공공건물, 시설물, 살림집건물 등이 건물(시설물)에 속하며 지하자원, 산림자원 등이 자원에 속한다(제2조).
서비스업에 부과된 봉사료수입금은 봉사요금에 일정 비율을 곱하여 산정한다(제21~23조). 김정은 집권기에 들어와 봉사시설 확충과 지방예산수입 확보 노력 등에 따라 봉사료수입금이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타 수입금은 '시장 같은데서 합법적인 경리활동을 하여 조성한 수입금의 일부'를 내는 것이다. 기업소는 정한 데 따라 수입금을 해당 재정기관에 납부해야 한다(제62조). 종합시장의 확대에 따라 기타 수입금은 증가한 것으로 관측된다.
재정 원천은 기업소의 순소득 또는 소득
북한의 기업소는 생산‧경영활동의 과학화 수준과 노동생산능률을 높이고 원가를 낮추어 순소득 또는 소득을 더 많이 창조해 국가예산수입금을 늘려야 한다(《재정법》 제14조). 기업소들은 국가예산수입금의 증대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거래수입금, 국가기업이익금, 부동산사용료 등을 많이 납부해야 한다. 그러자면 순소득 또는 소득의 증대가 필요하다. 이것은 기업관리 시스템의 효율적인 작동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국가는 경제관리에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실시"한다(《사회주의헌법》 제33조)고 할 수 있다.
재정의 출발은 기업관리 시스템에 있다. 기업소의 원활한 운영에는 외부 여건도 필요하다. 가격시스템과 화폐‧금융시스템, 재정 시스템 모두 중요하다. 4대 시스템이 선순환구조일 때 국가예산수입은 증대할 것이다. '전환기' 북한경제에서 4대 시스템의 선순환구조는 중요하다.
한편, 예산지출은 기본투자(건설‧탐사‧대보수‧정보화‧설계사업) 및 인민경제사업비(공업‧농업‧과학기술발전‧수산업‧산림업‧도시경영‧국토관리‧대외경제‧지방사업), 인민적 시책비(교육‧보건‧사회보험 및 사회보장), 사회문화사업비(체육‧문화‧대외사업), 국방비, 국가관리비, 예비비 등의 항목으로 되어 있다(《재정법》 제15조~제19조).
기업관리-가격-화폐‧금융-재정 시스템의 작동
지난 1월 17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4차 회의에서의 <국가예산보고>는 다음 언급을 포함하고 있었다(중통, 2021,1,18. 중통은 <조선중앙통신>의 줄임말).
이 반성은 기업소와 재정의 연관관계를 보여준다. 경제지도기관들의 과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경제지도기관에는 내각과 국가계획위원회, 국가가격위원회, 재정성, 중앙은행 등이 포함된다. 그 과오는 계획화사업‧재정‧금융‧가격을 비롯한 '경제적 공간(槓杆)'들이 기업체들의 생산 활성화와 확대재생산에 작용하도록 대책을 세워주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기업체들에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생활력(실행력)을 발양시키는데 지장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경제적 공간'은 경제관리에 주요 경제법칙을 이용하는 수단(경영활동의 계산‧통제‧자극 수단)을 말한다. 기업관리, 가격, 화폐‧금융, 재정과 계획화는 경제적 공간이면서 계획경제를 구성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관리에서 시작해 재정과 계획화로 끝나는 과정이다. 국가의 관점에서는 그 과정이 계획화로 시작해 기업관리로 향한다. 이 과정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하의 기업소와 국가(경제지도기관) 간의 관계로 압축된다.
기업소들이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실행력을 발휘하면 할수록 ①생산 활성화와 확대재생산이 가능해지고 ②기업소의 사회순소득이 많아지며 ③국가예산수입은 늘어나는 과정이 작동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경제적 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각과 국가경제지도기관들은 사회주의경제법칙에 맞게 계획화와 가격사업, 재정 및 금융관리를 개선하며 경제적 공간들이 기업체들의 생산 활성화와 확대재생산에 적극적으로 작용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김 위원장이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위 <국가예산보고>의 밑뿌리가 되는 당부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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