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대역전>의 저자는 찰스 굿하트와 마노즈 프라단이다. 찰스 굿하트는 영국 재무부와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경제자문역, 런던정경대학(LSE) 석좌교수를 역임한 거시금융 정책분야의 세계적인 학자다. 마노즈 프리단은 모건스탠리에서 글로벌 이코노믹스 팀을 이끌었다. 둘 다 거시경제와 금융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다.
책은 크게 다섯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 첫째, 1장~4장 : 서론 및 지난 30년간 세계자본주의를 움직였던 3가지 주요 변수를 짚는다. 3가지 변수란, 중국의 부상 및 세계화, 인구구조 변동, 부양비의 변화다.
► 둘째, 5장~7장 : 3가지 변수를 통해, 지난 30년간 자본주의의 특징이었던 저물가, 저금리, 불평등의 부상을 설명한다.
► 셋째, 8장~10장 : 반론의 재검토다. 필립스 곡선, 고령화된 일본은 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글로벌 고령화의 상쇄 요인은 작동할 것인지 살펴본다.
► 넷째, 11장~12장 : 글로벌 저금리로 발생했던 글로벌 수준의 부채 문제를 짚어본다. 부채 문제가 발생한 원인과 탈출의 해법을 모색한다.
► 다섯째, 13장~14장 : 향후의 글로벌 경제정책 이슈들을 살펴본다. 세금, 고령화, 저성장, 부채의 문제를 살펴본다.
8개의 경제정책 이슈를 일관된 논리체계로 설명하다
<인구 대역전>의 가장 큰 특징은 다루고 있는 스케일이 매우 웅장하다는 점이다. 3가지 의미에서 스케일이 웅장하다.
► 첫째,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총 102개의 도표 및 그래프다. 행여, 논거와 팩트 중심의 사고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도표와 그래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지난 몇 년간 봤던 책 중에서 도표와 그래프가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은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생각의힘)였다. 그런데 찰스 굿하트의 책은 <세습 중산층 사회>보다 도표와 그래프가 더 많다.
► 둘째, 분석의 기간이다. 우리가 접하는 일반적인 경제 분석은 2~3년의 단기적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인구 대역전>은 다르다. 약 30년 정도의 자본주의 장기동향을 다룬다.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스케일이다. 이전 30년, 앞으로 30년을 다루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60년의 움직임'을 정리하는 책이다.
► 셋째, 경제정책 이슈 전반을 매우 폭넓게 다루면서도, 일관된 논리 구조를 통해 설명을 시도한다. <인구 대역전>은 최소한 8가지 경제정책 이슈를 연동해서 일관된 논리 구조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8가지 경제정책 이슈는 ①세계화 ②인구구조 변화 ③부양비 ④물가 ⑤금리 ⑥불평등 ⑦경제성장 ⑧부채다. 8가지 경제정책 이슈에서 알 수 있듯이, <인구 대역전>은 금융정책과 거시경제정책 거의 전반을 다룬다. 이런 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다만, 책이 약간 어렵다. 나 역시 경제학 교과서를 봤고, 경제 관련 책을 꽤 본 편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어떤 부분은 단번에 이해되지 않아 읽고 또 읽어야 했다.
요컨대, <인구 대역전>은 약간 어렵지만, 특히 경제와 경제정책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2회독~3회독을 해서라도 꼭 봐두면 좋은 책이다.
이전 30년, 앞으로 30년의 자본주의 중장기적인 경제 동향을 분석하되, ①세계화 ②인구구조 변화 ③부양비 ④물가 ⑤금리 ⑥불평등 ⑦경제성장 ⑧부채의 변화를 일관된 논리체계로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정말이지 굉장한 일이다.
공자의 말씀 중에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표현이 있다. <인구 대역전>의 저자들은, 이를테면 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일이관지를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30년과 앞으로 30년의 자본주의 동학을 설명하다
분석의 변수로 사용하는 것은 3가지다. 저자들은 2가지로 설명했는데, 3가지로 풀어서 설명하는 게 독자들의 이해에 더 도움이 된다. 변수 3가지는, ①세계화의 확대/축소 ②생산가능한 노동공급의 확대/축소 ③부양비의 확대/축소 여부다.
여기서 부양비(扶養費)는 생산가능인구와 피부양자의 관계를 의미한다. 생산가능인구는 노동자 및 취업자를 생각하면 된다. 피부양자는 어린이와 어르신들이다.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의 관계다.
돈 버는 사람이 많고, 어린이와 어르신(=피부양자) 숫자가 적으면 부양비는 낮다. 반대로, 돈 버는 사람은 적고, 어린이와 어르신(=피부양자) 숫자가 많아지면 부양비는 높아진다. 쉽게 말해, 일하는 연령 인구가 많을 때 부양비는 낮고, 고령화가 심해질 때 부양비는 상승한다.
찰스 굿하트가 다루는 지난 30년의 자본주의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최근 몇 년간 이 시기를 다룬 명저들이 몇 번 소개됐었다.
리처드 볼드윈은 <그레이트 컨버전스>(엄창호 역, 세종연구원)라는 책에서 이 시기를 ‘제2차 세계화’라고 표현했다.
'코끼리 곡선'으로 유명한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서정아 역, 21세기북스)라는 책에서 글로벌 불평등과 국가 내부의 불평등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다뤘다.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신작 <홀로 선 자본주의>(정승욱 역, 세종서적)은 공산주의 붕괴 이후 홀로 남은 자본주의를 분석하면서, 미국식 자본주의와 중국식 자본주의, 유럽 복지국가의 미래를 다룬다. 이 책이 다루는 시기 역시 대체로 비슷하다.
글로벌 저물가 시대는 가고,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온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자본주의에서 가장 큰 특징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세계화의 확장과 글로벌 노동 공급량의 급팽창이다.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기존의 논의와 구분되는 찰스 굿하트의 주장은 두 가지 면에서 새롭다. 첫째, 저물가, 저금리, 경제 불평등, 경제성장, 부채를 동시에 엮어서 설명한다. 둘째, 노동자와 피부양자의 인구구조 변화를 통해 저물가, 저금리의 작동 구조를 설명한다. 두 가지 모두 그간 접해보지 못했던, 매우 참신한 접근이었다.
이제, ①중국의 부상과 세계화 ②인구구조의 변화 ③부양비 상태의 3가지 요인이 ④저물가 ⑤저금리 ⑥경제 불평등 ⑦경제성장 ⑧부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목차를 기준으로 보면, ①~③번은 1~4장에 해당한다. ④~⑧은 5~12장에 해당한다.
► 첫째, 1990년대~2010년대 기간의 글로벌 저물가 현상에 대해 살펴보자.
물가는 기본적으로 화폐적 현상이다. 화폐를 마구 찍어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1970년대 세계자본주의가 특히 그랬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은 대불황 사태를 피하기 위해 양적 완화를 비롯해서 시중에 대량의 통화량을 공급했다. 통화를 대량 공급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게 정상적이다. 그런데, 왜 양적 완화 이후에도 저물가 상황은 지속된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저자들은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게다가 독창적인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찰스 굿하트는 세계화, 인구구조의 변동, 부양비의 낮음을 통해 저물가 상황을 설명한다. 저물가라는 화폐금융적 현상을 화폐와 금융 이외의 방법으로 설명한다. <인구 대역전> 이외의 책에서는 본 적이 없던 설명 방식이고, <인구 대역전>이 갖는 독창성과 장점이다.
세계화, 인구구조 변화, 낮은 부양비가 어떻게 저물가(디스인플레이션) 상황과 연결된다는 것일까?
이들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집단과 피부양자 집단이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저자들의 설명을 들어보자.
위 문장은 '5장. 인플레이션의 부활'에 나오는 단락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을 때, 읽고 또 읽어야 했다. 거시경제학 교과서도 봤고, 경제 관련 책도 꽤 본 편인데, "노동참여율 상승은 디플레이션적이고, 부양인구비 상승은 인플레이션적"이라는 표현은 난생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디플레이션적이고, 피부양자는 인플레이션적"이라는 표현은 한 번 봐서는 직관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약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집단은 생산-공급을 담당한다. 피부양자 집단은 수요-소비를 담당한다. 소비보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은 하락한다(디플레이션). 공급보다 소비가 많으면 가격은 상승한다(인플레이션).
즉, 생산가능인구(A)와 피부양자 집단(B) 중 어디가 더 많은지에 따라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의 방향이 바뀐다. A집단 증가량 > B집단 증가량일 경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현상이 발생한다. 이게 바로 1990년대~2010년대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저물가 상황이 발생한 이유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A집단 증가량 < B집단 증가량일 경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현상이 발생한다. 생산보다 소비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바로 저자들이 앞으로 30년간의 자본주의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물론, 1990년대~2010년대 글로벌 자본주의의 저물가 지속 현상에는 인구요인만 작동했던 게 아니다. <인구 대역전>에서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아마존과 ICT(정보통신) 혁명으로 상징되는 유통혁신 및 기술혁신, 셰일가스 혁명으로 인한 에너지 혁명과 국제 원유 가격의 하락 역시 세계경제를 디플레이션(저물가) 방향으로 작동하게 했다.
앞으로 30년간 고금리의 시대가 올 것이다
► 둘째, 1990년대~2010년대 기간의 글로벌 저금리 현상에 대해 살펴보자.
세계화, 글로벌 노동 공급의 확대, 부양비의 3대 요인이 저금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생애주기 사이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일반적인 생애주기 사이클은, (노후를 대비해) 젊었을 때 노동을 통해 저축하고, 노후가 되었을 때 저축한 것을 소비한다. 즉, 노동자 세대는 저축하고, 고령자 세대는 소비한다.
인구구조에서 노동자 세대가 많은 사회는 저축이 많은 사회이고, 고령자가 많은 사회는 저축이 줄어드는 사회가 된다.
둘째, 저금리는 언제 발생할까? 투자와 저축의 관계에서, 투자에 비해 저축이 많을 때 저금리가 된다. 투자에 비해 저축이 많다는 것은 돈에 대한 수요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저금리가 된다.
반대로, 저축에 비해 투자가 많은 경우는 돈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경우다. 이때, 고금리가 된다.
금리는 돈의 가격이다. 투자가 많을 때 고금리가 되고, 투자가 적을 때 저금리가 된다. 반대로, 저축이 많을 때 저금리가 되고, 저축이 적을 때 고금리가 된다.
지난 30년 기간이었던 1990년대~2010년대에는 세계화는 확대됐고, 글로벌 노동력 공급은 늘어났고, 부양비는 낮았다. 생애주기 사이클상 저축이 늘어났다. 저축과 투자의 관계에서도 저축이 더 많아졌다.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Fed(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글로벌 저금리 현상에 대해 "글로벌 과잉저축"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말했던 글로벌 과잉저축은 두 가지 차원에서 작동했다. 첫째, 글로벌 차원에서 젊은 노동력의 증가폭이 고령자 증가보다 컸다. 생애주기 사이클을 고려할 때, 젊은 노동력은 노후를 대비해서 저축을 하게 된다. 저축이 더 많아지니 저금리가 된다. 둘째, 투자보다 저축이 더 많았다. 역시 저금리가 된다.
실제의 경제 현실에서 글로벌 과잉저축의 핵심 주체는 중국이었다. 1990년~2010년대 중국의 인구구조가 부양비는 줄어들고, 젊은 노동자 세대의 공급이 급증하던 시기였다. 즉, 생애주기 사이클상 저축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2010년대 초중반을 지나며 중국의 고령자 비중이 증가하며 저축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림 2-5)
2010년 초중반 이후부터 중국의 인건비가 급상승하는 이유다. 1990년대~2010년대 시기에 중국에서 과잉저축이 발생하고, 중국의 과잉저축이 글로벌 저금리를 만들었다.
물론 여타 선진국 경제도 경제활동참가율이 꾸준히 증대하고, 부양비가 낮았다는 점에서 생애주기 사이클상 저축이 투자보다 많았다. 그러나 중국의 과잉저축에 비하면 규모와 비중이 작았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앞으로 30년간의 자본주의는 반대 방향이 될 것이란 점이다. 앞으로 30년간 인구구조의 고령화가 가속화한다. 노동자 세대 비중은 줄어들고, 고령자 비중이 늘어난다. 저축하는 세대 비중은 줄어들고, 소비하는 세대의 비중이 늘어난다.
금리는 돈의 가격이기에, 저축과 투자의 함수이다. 1) 저축이 투자보다 많으면 저금리가 된다. 2) 저축보다 투자가 많으면 고금리가 된다. 지난 30년간의 자본주의는 저축이 더 많았고, 저금리가 됐다. 반대로, 앞으로 30년간의 자본주의는 저축이 감소하고, (저축에 비해) 투자가 많아져서 고금리가 될 것이다.
지난 30년간 불평등 확대는, 다시 불평등 축소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 셋째, 1990년대~2010년대 기간의 글로벌 불평등 동향에 대해 살펴보자.
찰스 굿하트는 국가 내부의 불평등이 악화되는 원인에 대한 4가지 주장을 살펴본다.(p.175~179) 국가 내부의 불평등 악화 원인에 대한 4가지 주장의 대표 논자는 ①토마 피케티(자본주의 체제의 필연) ②데이비드 오토(기술 변화) ③스티글리츠(경제력 집중과 독점 강화) ④브랑코 밀라노비치 (세계화와 인구변동)을 꼽아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저자들은 토마 피케티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기술 변화, 독점 강화, 세계화와 인구변동은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중국의 부상과 세계화가 국민국가의 불평등 확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브랑코 밀라노비치가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를 통해 명쾌하게 밝힌 바 있다.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전 세계 취업자의 소득을 취합해서 백분위로 재배열했다. X축은 글로벌 백분위다. Y축은 해당 기간의 소득증가율이다. 기간은 1988~2008년이다.
위 곡선을 흔히 '코끼리 곡선'이라고 표현한다. 해당 기간에 소득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집단은 A다. A는 글로벌 소득분위 약 55%에 해당하는 글로벌 중산층이다. A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누굴까? 대체로 중국, 인도, 베트남 등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노동자들이다. 소득상승률이 가장 낮았던 집단은 B다. B는 누굴까? 선진국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다. 미국의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찍고, 영국의 제조업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브렉시트를 찬성했던 배경이다. C점에 있는 사람들은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워런 버핏처럼 선진국의 CEO들이다.
<인구 대역전>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그래프가 나온다.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급격하게 몰락하는 시점을 보여준다.(p.51)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은 2001년 12월이다. 중국의 WTO 가입은 미국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국의 WTO 가입을 앞두고 미국은 중국에게 선물을 준다. 미국은 2000년에 중국에 대해 '영구적인 정상 무역관계'(PNTR) 지위를 부여해준다. 중국에 대한 관세가 사실상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관세장벽이 사라지자 무슨 일이 생겼을까? 미국에 있던 생산 공장은 가성비 좋은 노동력을 찾아, 대거 중국으로 이전하기 시작한다. 그래프를 보면 제조업 일자리가 급격하게 축소되는 시점이 2000년 중국에 대한 PNTR 지위 부여 직후부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부상이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없애고 있는 것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였다.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곡선과 찰스 굿하트의 미국 제조업 일자리 감소 그래프가 말해주는 것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해 글로벌 불평등은 줄어들고, 국민국가 내부의 불평등은 확대되고, 선진국의 중임금(제조업) 노동자의 일자리는 급격하게 줄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홀로 선 자본주의>에는 매우 흥미로운 데이터가 나온다. 세계화에 대한 프랑스 국민과 베트남 국민의 태도 차이다. 베트남 국민의 세계화 지지율은 무려 91%에 달하는 반면, 프랑스 국민의 세계화 지지는 37%에 불과하다.(<홀로 선 자본주의> pp.35~36) 신흥공업국 국민은 세계화를 찬성하고, 선진국 국민은 세계화에 비판적이다.
고금리 시대가 오면 부채의 이자 비용은 늘고, 부채 축소 압박을 받게 된다
► 넷째, 1990년대~2010년대 기간의 경제성장과 부채 발생의 작동구조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경제성장을 살펴보자. 중국의 부상과 세계화, 인구구조의 변화, 낮은 부양비는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경제성장과 상관관계가 매우 높은 것 중 하나가 교역의 확대다. 1990년대~2010년대 중국의 부상과 세계화는 경제성장률 제고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생산가능인구 증가와 낮은 부양비 역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됐다.
그런데 앞으로 30년간의 자본주의는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다. 세계화는 축소된다. 교역 증가율의 둔화는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확대되고, 부양비가 증가하면 경제성장률도 둔화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데 고령자(피부양자)가 늘어날 경우, 부양비가 증가한다. 부양비 증가는 필연적으로 납세자(노동자)의 세금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다음, 공공부문 부채와의 관계이다. ‘11장. 우리는 부채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는 지난 30년간 부채가 증가한 원인을 규명하고, 향후 방향을 전망하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지난 30년간, 다시 말해 1990년대~2010년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부채가 급팽창했다. 자본주의 주요 국가들의 부채가 급팽창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 때문이었다.
①중국의 부상과 세계화 + 인구구조의 변동(노동자 세대 증가) + 낮은 부양비의 조합 → ②높은 경제성장률 + 저금리의 조합 → ③저금리로 인한 낮은 부채 조달 비용 → ④가계, 기업, 공공부문 모두의 부채 증가
(p.274 그림 전체 인용)
그래프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의 금리와 부채비율(GDP 대비 %), 그리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의 관계를 보여준다. 6개 나라 모두에서, 우하향하는 파란색 그래프는 금리다. 우상향하는 검정색 그래프는 공공부문 부채비율이다. 바닥 근처에 있는 평행선에 가까운 그래프는 DSR이다.
그래프에 나오는 모든 나라의 상황은 부채비율 증가의 주요 원인이 금리 하락임을 보여준다. 부채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리가 낮았기 때문에 DSR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인구 대역전> 주장의 설득력과 정책적 시사점은?
글의 앞부분에서 밝힌 것처럼 <인구 대역전>은 매우 놀라운 책이다. 이 책이 놀라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다루는 의제의 포괄성과 방대함이다. ①세계화 ②인구구조 변화 ③부양비 ④물가 ⑤금리 ⑥불평등 ⑦경제성장 ⑧부채의 8가지 정책 이슈에 대해 지난 30년과 앞으로 30년의 시야를 갖고 분석 및 전망한다. 이 정도의 스케일로 분석하는 책을 앞으로 또 접할 수 있을까 싶다. 경이로운 스케일이다.
둘째, 접근하는 방법론이 놀랍다. 우리의 경제학적 상식에 입각해볼 때, 금리와 물가는 화폐-금융적인 현상이다. 찰스 굿하트 당사자가 거시금융 정책 전문가이다. 그런데, 거시-금융적인 이슈를 설명함에 있어 화폐-금융 이외의 방법론으로 설명한다. 세계화, 인구구조 변동, 부양비의 변화다. 그간 생각해보지 못했던 독특한 접근법이었다. 저자들로부터 한 수 배웠다.
저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 주장일까? 세계화 확대의 축소, 인구구조 변화, 부양비의 증가는 명백한 팩트다.
노동자 세대가 줄고, 고령화가 진행되면 인플레이션(고물가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도 매우 설득력 있다. 노동자 세대가 줄고, 고령화 세대가 증가하면, 저축이 감소한다. 반면, 투자는 현재와 비교해서 일정 수준을 유지할 것이기에 고금리가 발생한다는 것도 매우 설득력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에는 다른 요인도 추가로 작동한다. 그렇더라도, 저자들의 주장을 기각할 정도인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즉, 인플레이션, 고금리 모두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의 축소는 어떻게 봐야 할까? 당연히 줄어든다. 당장 한국경제에서 글로벌 교역량이 노골적으로 축소된 2015년 이후부터 (임금 지니계수 기준) 경제 불평등은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다만, 임금 불평등과 별개로 가구소득 불평등을 기준으로 할 경우, 불평등 축소를 단정하기 어렵다. 왜냐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불평등이 증가했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인을 꼽으라면, ①세계화 ②고령화였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축소는 불평등 축소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고령화는 불평등 확대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경제성장률이 1990년대~2010년대에 비해 낮아질 것임은 너무 명약관화한 일이다.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는 ①교역의 증가 ②새로운 기술의 등장 ③도시화 ④고학력화(인적자본 축적) 등이다. 글로벌 교역량의 위축은 그 자체로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린다. 다만,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 새로운 기술이 대규모로 등장하거나, 고학력화가 대규모로 발생한다면, 경제성장률은 다시 반등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교역의 축소 자체만 놓고 보면, 명백하게 경제성장률 둔화의 이유가 된다.
부채 문제는 정말 흥미로운 주장이었다. 특히 공공부문 부채 문제가 흥미롭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가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이다. 약 230%다. 한국은 약 43%다. 유럽연합 주요 국가들도 약 90% 내외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GDP 대비 정부 부채가 가장 많은 나라다. 그런데도 망하지 않는 이유는 저금리 때문이다. 만일, 고금리 시대가 열리게 되면 일본은 어떻게 될까?
일본은 정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지금보다 훨씬 더 대규모로) 이자 비용으로 지불하게 될 것이다. 저금리 시대가 고금리 시대로 바뀔 경우, 일본을 비롯해서 선진국 중 정부 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들은 '폭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본,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벨기에, 아일랜드, 미국 순서다. 이 나라들은 많게는 GDP 대비 230%, 적게는 120%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두 가지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약 43%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은 너무 명백하게 바람직하다. 둘째, 하지만 저금리 시대는 만고불변의 진리인 게 아니다. <인구 대역전>이 경고하듯, 앞으로 30년은 고금리의 시대가 될 수 있다. 그 경우,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 순서대로 재정위기와 외환위기에 빠지거나, 최소한 재정의 상당 부분을 이자 비용으로 날릴 것이기에, 엄청난 부채 축소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향후 고금리의 시대가 열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하자는 주장도 일리 있으나,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지나친 확장재정은 위험하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인구 대역전>은 분석이 참신하기에, 처음에는 약간 어렵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어~ 이게 뭐지..."싶은 구절이 한두 개가 아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 거시-금융정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 미래경제 동향을 예측하며 '경제학적 선구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꼭 봐야 할 책이다.
한 번에 이해되지 않으면, 2번, 3번 읽으면 된다. 다 읽고, 자기 언어로 다 소화하게 되면, 분명히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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