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을 늑장 확보한데다 기존 계약 물량마저 제때 들어올 가능성이 낮아지는 등 11월 집단면역 달성이 사실상 물 건너갈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목표 달성에는 흔들림이 없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8월 새로운 백신 국내 위탁 생산설, 고령층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 1단계 달성 등의 메시지를 내놓으며 코로나 백신 사면초가에 대응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 꼼수 대응이자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메시지 전략이다. 외려 나중에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우화만 연상시킬 뿐이다. 일이 풀리지 않고 실타래가 엉킬수록 정석을 펼쳐야 한다. 위기가 예상되면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국민과 소통하며 협조를 구해야 한다. 백신 확보의 어려움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쉽지 않고, 또 일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사면초가에 놓인 것이지만 정직하고 투명한 소통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지난해 봄과 여름 몇몇 전문가들이 백신 확보의 중요성을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와 정부 당국에 강조했지만 이를 한 귀로 흘려 들으면서 백신 문제가 엉클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왜 지난해 백신 확보 의제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아직까지도 정직하고 투명하게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야당과 일부 언론·전문가들은 이를 강력 비판하고 있다.
“백신 늦게 맞아 다행” 공식 브리핑, 아직 반성 없어
지난해 12월 영국에서 최초로 백신 접종에 들어가면서 일각에서 우리의 백신 늑장 확보를 지적하자 방역 당국은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그리고 일찍 백신을 맞지 않아 다행이다. 외국에서 먼저 접종하면 부작용 등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며 공식브리핑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궤변이 잘못됐다고 인정하지도 않고 그 궤변을 내뱉은 고위관료를 징계하지도 않았다.
일찍 백신을 접종하면 위험하고 잘못된 전략인 것처럼 말했던 그 나라들, 바로 영국, 이스라엘, 미국 등은 우리나라가 결코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집단면역 골인지점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반환점을 돈 지 오래다. 영국과 미국도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는 이제 마라톤 출발선에서 1km도 채 못 뛰었다.
코로나 백신 접종 마라톤에서 우리는 중간그룹에도 들지 못하고 후위그룹에서 허덕이며 달리고 있다. 하지만 속도를 내고 싶어도 속도를 낼 수 없는 처지다. 여러 걸림돌이 동시다발적으로 코스에 등장해 우리를 엎어지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AZ·얀센 백신 혈전 논란에 모더나 미국 우선공급 악재 터져
먼저 우리가 국내에서 위탁생산하고 있는 유일한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희귀 혈전 발생 등으로 일부 연령층에서 접종이 중단되는 등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백신과 함께 같은 아데노바이러스를 운반체(벡터, vector)로 하는 얀센 백신마저 혈전 발생 등 부작용 논란이 빚어지면서 접종 일정이 차질이 생기고 있다. 이들 백신 접종을 계획대로 하더라도 충분한 백신이 제때 국내에 들어올지 미지수다.
그리고 이 백신이 제때 들어오더라도 부작용이 우리 국민에게 크게 각인된 만큼 접종을 기피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생각보다 높아질 수 있다. 국민의 과도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한 소통 전략을 지금 당장 세워야 한다. 적어도 접종 대상의 90% 이상이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이 백신을 거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험난한 가시밭길은 또 있다. 특히 화이자 백신과 더불어 가장 안전하고 유효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를 받는 모더나 백신을 생산하고 있는 미국이 이 백신을 우선 공급받기로 하면서 우리는 모더나 백신을 3분기나 되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분기에 가서 제때 받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물량과 시기 모두 불확실성이 매우 커졌다.
항체 지속 짧다는 독일 연구 결과로 불안감 확산
여기에 최근 독일 등에서 연구한 결과 코로나에 한번 감염된 사람에게서 생기는 항체가 우리 몸에서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표돼 만약 이것이 확실하다면 낭패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지만 이미 후발주자로서 백신 적기 접종에 허덕이는 우리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후미그룹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새 백신 국내 위탁 생산설, 고령층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 1단계 달성 메시지는 이런 백신 사면초가로 빚어진 비난과 비판을 피하고자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묘수가 아니라 악수가 될 수 있다. 이 메시지가 나오자마자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비판하고 있다.
새 백신 국내 위탁 생산은 우리에게 분명 좋은 뉴스다. 하지만 백신 위탁 생산은 기업의 문제다. 발표를 하더라도 기업이 발표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어떤 백신인지, 어떤 기업이 위탁생산하는 것인지, 생산 조건은 어떤 것인지, 즉 국내에 유통할 수 있는 물량은 얼마며 언제부터 가능하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아 궁금함만 키우고 있다.
새 백신 위탁생산·집단면역 단계론은 전형적 꼼수 메시지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이를 기정사실로 발표하는 것은 맞지 않다. 만약에 하나 아직 정확한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정부가 발표했다면 이는 큰 문제다. 또 위탁 생산만 할 뿐 국내 유통시킬 수 없거나 그 물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정부 발표로 여기에 목을 매는 국민으로서는 실망만 더 커질 뿐이다. 하루빨리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면 주식시장 등 여러 곳에서 부작용만 생기게 된다.
고령층이 모두 백신 접종을 받으면 집단면역 1단계가 달성된다는 발표도 마찬가지다. 집단면역에는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닌데 느닷없이 감염병 교과서에도 없는 집단면역의 단계론을 들고 나온 것도 꼼수 성격이 강하다. 집단면역은 전체 국민의 30%, 50%, 70% 등 면역 형성 비율이 중요한 것이지 특정 계층 접종 비율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부가 백신 접종 지연으로 인한 국민의 불안감과 불만을 잠재우려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급할수록 서두르면 안 된다. 메시지는 정확하고 세밀하게 만들어 알려야 한다. 설익은 내용을 가지고 다 된 것처럼 자꾸 그럴듯하게 만들어 발표하면 결국에는 비수가 자신을 찌른다. 나중에는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던져도 국민이 믿지 않는다.
백신 확보와 관련해 잘못한 부분은 잘못한 대로, 불가항력적인 부분은 그것대로 명확하게 구분해서 소통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매서운 매를 맞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앞으로 잘 하겠다고 다짐하고 이를 열심히 실천해 국민이 과거를 묻고 따지지 않도록 하면 된다. 백신 확보와 접종과 관련한 메시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원점에서 다시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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