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린다 브라운 소송 100년 전, 아시아인 메이미 테입은 왜 잊혀졌나?

[아시아 증오범죄, 과거-현재-미래] 증오범죄 뿌리는 인종차별, 교육이 중요하다 ③

지난 3월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미국 사회의 '아시안 증오범죄'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연일 크고 작은 '아시안 증오범죄'가 발생하고 보도되고 있다.

'아시안 증오범죄'의 뿌리는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에 있다는 점에서 매일매일 발생하는 '증오범죄'에 분노하고 더 강도 높은 처벌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근원적인 해결이 어렵다. 또 미국의 인종문제는 사회경제적인 문제와 겹쳐지기 때문에 더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기도 하다. '아시아 증오범죄'가 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급증했으며, 어떤 양상을 보이며,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필자 주

최서영 스텟슨 대학 교수는 지난 3월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 이후 '특별한 경험'을 했다.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고 교수로 일하면서 10년 넘게 거주하는 동안 아시안으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인종차별에 대해 최 교수는 크게 저항하지 못했다. 당장 주어진 삶의 과제를 해결하기 버거운 날들이었다. 그러다가 21세의 백인 남성이 쏜 총에 8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6명이 아시안 여성인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더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와 환경 커뮤니케이션이가 전공인 최 교수는 아시안 인구가 2~3% 인 플로리다의 한 대학에서 전체 교직원 중 2%에 속하는 아시안 교수로 자신의 수업에서는 100% '비'아시아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아시아태평양계(AAPI) 미국인들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증오범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애틀란타 사건을 보면서 '아시안 인종차별'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백인 학생들이 절대 다수이기 때문에 공감과 지지를 얻기 힘들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최서영 교수

다행히도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학과장을 비롯한 동료 교수들은 그의 수업 계획을 듣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한 흑인 교수는 따로 이메일까지 보내 격려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적극적이었다. 최 교수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애틀랜타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난 침묵하기 싫고 너희들을 믿는다. 난 진심으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이 피부색으로 인해 공격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학생들은 "거리에서 아시아인들을 조롱하는 것을 목격하면 구경하지 않고 개입하겠다", "이 문제에 대해 더 공부하겠다", "소셜미디어에서 연대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겠다", "아시아 혐오 표현 포스트를 보면 지나치지 않고 비판 댓글 남기겠다" 등 다양한 생각을 밝히면서 공감과 연대를 표명했다.

최 교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학생들은 내가 우려했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밝혔다.

"물론 이것이 아시안들에 대한 연대라고 바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큰틀에서 증오범죄, 인종주의가 가진 부당함, 폭력성에 대한 반대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회가 인종차별이 심각한 만큼 이에 대항하는 반인종차별에 대한 담론도 강력하다. 작년 미국 전역에서 거세게 일어났던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이 대표적이다. 학생들도 이런 운동을 보면서 반인종주의에 목소리를 보태는 것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백인과 유색인종 학생들이 이 주제에 대한 이해도, 반응 등에서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트럼프 지지자'인 한 백인 남학생은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공화당 출신인 플로리다 주지사가 학교의 시민 교육 관련 예산 편성 과정에서 노골적으로인종차별 비판 이론(Critical Race Theory) 교육을 배제해 논란이 일었다. 이들이 인종차별 비판 교육에 대해 반대하는 논리는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이 남학생의 반응도 유사한 논리였다. 그러나 내가 개입하기도 전에 대여섯명 학생들이 이 남학생의 논리에 대해 반박했다."

'짐 크로' 시절 중국인도 백인학교 입학 금지...백인학교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메이미 테입

최근 급증하고 있는 '아시안 증오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크게 두 가지가 지적된다. '교육'과 '정치 세력화'이다. 이 글에서는 교육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서두에 언급한 사례에 대해 최 교수는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교육의 효과가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시아태평양계가 경험하는 인종차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비가시화'다. 미국 전체 인구의 6%(2200만 명)을 차지하는 이들의 역사는 학교 교육에 거의 포함돼 있지 않다. 중국인들이 미국 이민은 18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0년대 진행된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됐다. 그러나 미국 백인 주류사회에서 유포시킨 '모델 마이너리티(모범적 소수)'와 '영원한 외국인'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아시안 미국인들의 역사는 잊혀졌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중국계 미국인 메이미 테입의 이야기다. 1885년 조셉 테입과 메리 테입은 캘리포니아에서 자신의 딸의 입학을 거부하는 학교를 상대로 소송 (Tape v. Hurley)을 제기했다. 당시는 '짐 크로법(Jim Crow Laws)'에 따라 모든 공공기관에서 인종간 분리가 합법이었다. 미국의 수정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난 이들을 모두 미국 시민으로 인정하며, 이들의 동등한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짐 크로법' 자체가 수정헌법 14조 위반이지만, 백인들은 이 문제를 "분리하되 평등하다"고 우기며 흑인 전용 시설을 만들어 해결했다.

그렇다면 당시 아시안들은 백인학교 입학이 허가됐을까? 물론 아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1851년 공교육이 제도화 됐다. 당시 인종 제한 없었던 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색인("Negros, Mongolians, Indians") 아동의 입학을 제한했다. 게다가 1882년 중국인의 이민을 금지하는 '중국 배척법'이 통과되어 중국 이민자들과 그 자녀들에게 '시민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안소현 케네소 스테이트대 교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당시 중국 이민자들은 백인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등 증오범죄로 시달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녀들도 폭력이 두려워 학교에 보낼 엄두를 못냈다"며 "학교를 안 보내고 집에서 공부를 시키거나 본국으로 보내 교육을 시키는 이들이 다수였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테입 부부는 미국에서 태어난 자신의 딸이 백인학교 입학을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메이미의 어머니 메리는 미국인 부부에게 양녀로 입양돼 미국으로 건너와 영어가 능통했고, 아버지 조셉은 사업가와 통역가로 활동하면서 백인 중산층과 교류가 잦았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자녀가 학교 입학을 거부당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결과는 테입의 승리였다.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공립학교에서 조상을 근거로 중국계 미국인 학생을 제외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캘리포니아주는 "분리하되 평등하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1889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아시안들을 위한 '오리엔탈 학교'를 만들었다.

'인종 분리 교육은 위헌'이라는 연방대법원 결정을 이끌어낸 소송은 1954년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소송이다. 캔자스주 토피카에 살았던 흑인 소녀 린다 브라운의 부친은 1951년 린다의 백인 초등학교 입학이 거부되자 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의 뒤를 이어 델라웨어, 버지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등에서도 유사한 소송이 이어졌다. 연방대법원은 3년 뒤 만장일치로 아동의 인종간 교육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브라운 소송' 100년 전 '테입 소송'이 있었고 심지어 주 대법원에서 승소를 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실은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메이미 테입 가족 사진 ⓒ안소현 제공

'백인 영웅 서사' 위주의 美 역사 교육...유색인종 아동보다 동물이 주인공인 동화가 더 많아

이처럼 아시안 아메리칸의 역사는 중요하게 기록되고 교육되지 않고 있다. 안소현 교수는 "미국의 역사 교육은 백인 중심의 영웅 서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며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역사는 교육 과정에 거의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역사 교과 과정(K-12)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80% 가까이 백인 관련(76%)이었으며, 흑인(10%), 라티노(6%) 관련 내용이 아주 조금 포함돼 있다. 아시안과 아메리카 원주민 관련 내용은 한건도 없었다. (2012년, 줄리안 바스케즈 헤이릭 등, <The Illusion of Inclusion>) 안소현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강제 수용, 1840년대 '골드 러시'로 인한 중국인 이민자들의 유입, 1860년대 대륙횡단철도 건설 당시 중국인 노동자들의 역할, 1882년 '중국인 배척법' 정도만 일부 주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또 아동들이 읽는 책을 분석(2018년)한 결과, 백인이 주인공인 책이 전체의 50%에 달했다. 두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주인공은 동물(27%)이었다. 흑인(10%), 아시아태평양계(7%), 라티노(5%), 아메리카 원주민(1%) 등은 동물보다도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낮았다.

▲미국에서 아동 서적을 분석한 결과 백인이 주인공인 책인 50%, 동물이 주인공인 책이 27%에 달했다. 유색인종이 주인공인 책을 다 합쳐도 동물이 주인공인 책보다 적었다. ⓒ안소현 제공

다양성 교육에 대한 요구 쏟아져

미국 교육 내에서 다양성 교육에 대한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 막 시작단계이지만 아시아계 미국사를 공립학교 모범교육과정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코네티컷주와 일리노이주에서 공립학교 교육 과정에 아시아계 미국사를 포함시키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또 캘리포니아주 교육위원회는 지난 3월 아시아태평양계 관련 연구모델 커리큘럼을 승인했다.

대학 내에서도 다양성 교육에 대한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아시안 학생들을 포함한 학생들이 직접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 명문 사립대 중 하나로 꼽히는 밴더빌트대학의 아시아계 학생들과 교수, 동문들은 최근 성명을 발표해 학교 측에 아시아계 미국인 디아스포라 연구 센터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듀크대, 코넬대 등은 아시아계 미국학 관련 강좌 뿐 아니라 전공학과를 개설하고 있다"며 관련 연구 센터 및 학부 대학원생 지원, 관련 교수진 채용 등을 요구했다.

최서영 교수는 "대학은 비단 아시안 뿐 아니라 소수인종 학생들에게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학생들과의 교류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지난해 BLM 등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직접 다양성 교육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를 좀더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최 교수의 특강 사례가 보여주듯 교육은 인종차별을 경감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름'에 대한 '공포'와 '혐오'는 '무지'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그림. ⓒ안소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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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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