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증오범죄 주 가해자는 흑인?"...美주류 사회의 이중적 인종주의

[아시아 증오범죄, 과거-현재-미래] '모범적 소수인종'과 '영원한 외국인', 美 주류사회의 이중적 획책 ②

지난 3월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미국 사회의 '아시안 증오범죄'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연일 크고 작은 '아시안 증오범죄'가 발생하고 보도되고 있다.

'아시안 증오범죄'의 뿌리는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에 있다는 점에서 매일매일 발생하는 '증오범죄'에 분노하고 더 강도 높은 처벌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근원적인 해결이 어렵다. 또 미국의 인종문제는 사회경제적인 문제와 겹쳐지기 때문에 더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기도 하다. '아시아 증오범죄'가 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급증했으며, 어떤 양상을 보이며,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필자 주

"빅차 라타나팍디는 살해당했다. 박호도 살해당했다. 노엘 콴타나는 한쪽 귀에서 반대편 귀까지 칼로 베어졌다. 89세의 여성은 몸에 불덩이가 던져졌고, 재즈 피아니스트인 타다타카 오노는 너무 심하게 맞아서 더이상 피아노를 칠 수가 없다. 이제 6명의 아시안 여성이 조지아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이 일들은 작년 3월 이후 신고된 3800건의 범죄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지난 선거에서 출구조사를 하게 됐는데, 조사요원에게 왜 인종적 구분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별도의 그룹으로 분류하는 여론조사가 드문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아시아계 미국인은 소수이기 때문에 통계학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여겨진다고 답했다. 통계적 무의미(Statistically Insignificant).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실 것이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We don't matter)'는 것이다.

우리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아메리카 드림'을 좇아 미국에 왔다. 일부는 성공했다. 하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고생하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 사이에 빈부 격차는 미국 내 다른 어떤 인종집단보다 크다. 뉴욕에서 아시안들은 다른 어떤 소수계보다 더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거의 4분의 1의 아시안들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특히 아시안 노인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비율은 다른 어떤 인종들보다 높은데, 우리 집단 내에서도 가장 취약한 이들이 조롱을 당하고, 밀침을 당하고, 칼로 베이고, 살해당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모범적 소수인종(Model Minority)'으로 여겨진다. 극소수의 성공한 이들이 아시안을 대표하고 있다."

"모델 마이너리티, 아시안을 옥죄는 고정관념"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김은 지난 3월 18일 미국 하원에서 열린 아시안 증오범죄 관련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그의 연설은 현재 아시아태평양계(AAPI) 미국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모델 마이너리티"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강력한 고정관념이다. 미국 주류사회에서 흑인은 범죄자, 히스패닉은 불법 이민자로 여겨지는 반면 아시안은 '근면하고 성실한' 아시아적 문화 규범에 따라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유색인종으로 인식된다. 상대적으로 학력 수준이 높고 사회 경제적 지위도 높다고 생각된다. 정청세 뉴욕 빙햄턴대학 한국학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3월 27일 시민참여센터(KACE)가 주최한 온라인 강연에서 '모델 마이너리티' 관념에 대해 크게 5가지의 문제를 지적했다.

첫째, 미국 사회에 내재돼 있는 인종적 구조적 불평등과 갈등을 은폐한다.

둘째, 다양한 국적, 종교, 문화, 종족, 역사 등을 가진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취급한다.

셋째, '모델 마이너리티'로 묘사되는 집단(아시아계 중 중산층 이상)과 그렇지 않는 집단 사이의 사회경제적 격차와 차별을 고착화하고 당연시하게 만들고 갈등을 무시한다.

넷째, 미국 사회의 구조화된 인종차별 때문에 받는 부당함과 불이익을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개인 책임으로 감수하도록 강요한다.

다섯째,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이들로 인식하게끔 만든다.

이런 문제점들은 급증하고 있는 아시안 증오범죄에서도 드러난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두드러진다. 첫째,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똑같이 인종차별을 받고 있는 흑인, 히스패닉들도 아시아-태평양계를 상대로 증오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둘째, 200년 가까이 아시아-태평양계가 온몸으로 겪어온 인종차별을 비가시화시켜 현재 발생하고 있는 증오범죄를 일종의 '일탈 행위'로 이해하게 한다.

▲ 아시안을 대상으로한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집회. 지난 3월 16일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 이후로 미 전역에서 아시안들의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 AP=연합뉴스

"아시안 증오범죄,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아시안 증오범죄 중 가해자가 흑인인 경우가 많다. 시스템화된 인종차별로 교육, 노동시장, 문화 등 사회 곳곳에서 유색인종으로 같이 차별받고 있는 흑인과 히스패닉이 왜 '인종차별 증오범죄'의 가해자가 될까? 안소현 케네소 스테이트대 교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개인들의 인종차별적 언행은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며 가해자의 인종에 지나친 관심을 두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또 교육과 언론을 통해 백인 인종주의 담론이 재생산되는 구조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결국 백인우월주의 사회에서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일부 흑인, 히스패닉들도 희생양이다.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핍박 받고 삶이 힘드니까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데, 미국 백인 주류사회에서 만든 담론인 '모범적 소수인종'과 '영원한 외국인'이라는 틀에 맞춰 아시안들을 바라보니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미국도 학교 교육이나 미디어 등을 통해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전혀 없고 '네가 가난한 것은 네가 게을러서 그런 것'이라고 주입시킨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성공한 아시아인들을 전시하면서 '이들을 보라, 미국엔 인종차별이 없다'는 식으로 현실을 왜곡한다. 또 아시안들은 미국인이 아니라 이방인, 언제든지 미국의 경제, 외교, 안보 등에 위협이 되면 추방 당해도 마땅한 존재로 여겨지니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요구를 하게 만든다."

자본주의가 노동자의 적을 노동자로 만들어 착취를 극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유색인종들끼리 서로 반목하고 배척하게 하는 담론은 백인 우월주의를 더 공고하게 만든다. 언론이 유색인종들끼리의 갈등을 극대화한 대표적인 사건이 LA폭동이다.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붙잡힌 흑인 남성 로드니 킹이 경찰의 구타로 청각까지 잃었지만 1년 뒤인 1992년 가해 경찰들이 무죄로 풀려나자 흑인들은 크게 분노하게 됐다. 로드니 킹 사건 관련 판결이 나올 즈음부터 언론들은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두순자 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한인 슈퍼마켓 주인이었던 두순자 씨는 흑인 소녀를 도둑으로 오인하고 싸움 끝에 총으로 소녀를 쏘아 죽였다. 또 LA 한인타운은 흑인 밀집지역과 백인 부유층 거주지 중간에 위치해 있었고, 백인 거주지에는 일찍부터 경찰이 배치됐지만 한인타운은 사실상 방치 상태에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흑인들은 6일 동안 한인타운을 습격해 방화, 약탈, 폭력 등을 휘둘렀고 한인타운은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언론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를 한인과 흑인들간의 갈등으로 치환시켜버렸다.

▲1992년 LA폭동 당시 모습. ⓒ연합뉴스

물론 아시안이 평균적으로 흑인과 히스패닉에 비해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1965년 이민법 개정으로 출신국가별 쿼터가 폐지되고 전문직 이민자 선호 제도가 발효되면서 전문직 동아시아계, 인도계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애초부터 고학력의 전문직이 미국사회에 이민자로 편입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지 아시안이 인종차별에서 자유롭거나, 개인의 노력으로 인종차별이 충분히 극복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민 자체의 형태와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일부 아시안들(특히 이민 1세대)이 미국의 백인 인종주의에 저항하기 보다는 순응해왔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흑인들이나 히스패닉들이 아시안들을 '중간자적 소수자', '명예 백인'으로 인식하는 바탕에는 이들의 '경험'이 존재하기도 한다. 일부 흑인 학자들은 동아시아 근대성 형성의 중요한 축에 '반흑인성(Antiblackness)'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시안들이 백인 주류사회에서 만든 인종적 위계질서에 적극 편승해 '중간자'로서 이득을 취하면서 흑인과 히스패닉에 대한 인종차별을 심화시키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기능했다는 비판이다. 이런 역사와 개인의 경험에 기반해 일부 흑인이나 히스패닉은 아시안들에 대해 유색인종으로 연대의식이나 공감보다는 적대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보여진다.

"연방의원들도 매일 크고 작은 인종차별 겪어...비가시화되는 아시아-태평양계들의 인종차별"

▲장성관 KAGC 사무차장

둘째, '모범적 소수'라는 고정관념은 아시아태평양계가 처한 현실을 비가시화시킨다. 장성관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사무차장은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인종주의에 기반한 사회적 지위는 개인적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AAPI가 성공적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전문직을 갖거나, 심지어 정부고위직에 진출하고 선출직에 당선이 되더라도 어디까지나 인종적, 문화적 소수자인 것이 현실이다. 앤디 김, 그레이스 멩 하원의원 등 연방의원들조차도 크고 작은 인종차별을 매일 겪고 있다. 참전용사나 유명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이는 경제적인 성공이나 학위 취득 같은 방법으로 넘어설 수 없으며, 시민권 취득 여부나 미국 거주 기간 또는 영어 구사 능력과도 절대 별개의 문제다. 정책 및 제도와 문화적 인식의 상호 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성공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도 인종적 불평등과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고정관념은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비영리학술재단인 공공지역연구소(PRRI)가 캘리포니아주에서 2684명의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지난 1월 발표)에 따르면, 이들 중 약 4분의 1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종별로는 캄보디아외 베트남계 이민자들의 경우 응답자의 26%가 빈곤문제를 토로해 가장 높았으며, 중국(23%), 필리핀(22%), 일본(22%), 인도(20%) 순이었다. 또 응답자의 3분의 1이 고용주로부터 임금차별이나 임금착취 등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10명 중 3명은 직장내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장성관 사무차장은 "최근 급증한 AAPI 대상 폭력사건을 보면 피해자는 대다수가 장년층이거나 여성이며, 대부분의 피해자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며 "AAPI 중에서도 물리적, 사회적으로 소수자이자 약자인 이들만을 타겟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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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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