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교수인 마크 램지어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 왜곡 논문('태평양 전쟁의 성 계약')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에는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위치한 하버드대 앞에서 램지어 교수에게 논문 철회를 요구하는 규탄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는 한인들을 포함해 100여 명의 미국 시민들이 참여해 램지어 교수와 하버드대, 그리고 논문을 출간하기로 한 <법경제학국제리뷰>(IRLE)와 출판사를 규탄했다.
5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의회에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한국계인 데이비드 오 의원(공화당)이 지난달 25일 발의안 이 결의안은 "역사적 합의와 일본군 성노예를 강요당한 여성 수천명에 대한 역사적 증거와 모순되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 전쟁의 성 계약'을 반박한다"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과 전세계 여성을 대신해 역사적 잔혹 행위를 최소화하려는 위험한 시도를 계속 반대해야 하고,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파문이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 램지어 교수, 하버드대, 학술지에서 변화된 입장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본 극우세력들이 램지어 교수 등을 상대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역사 왜곡 세력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온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램지어 교수의 논문으로 미국에서 터져 나왔다. 이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더 알리고 피해자 중심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하게 됐다. 또 일본의 극우 정치인이나 학자에서 미국의 학자와 그를 비호하는 세력으로 대상을 바뀌었지만 '역사 왜곡 세력'도 건재한다는 것도 보여줬다. 하지만 앞선 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정의'를 회복하려는 젊은 세대의 의지를 미국에서도 확인한 것은 희망이자 성과다.
램지어 교수, 하버드대, 학술지 모두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지위를 이용해 반대 목소리를 뭉개고 넘어가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램지어 교수 논문의 문제를 발견하고 반대 목소리를 냈던 하버드대 로스쿨 한인 학생회를 포함한 젊은 학생들의 존재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싸움이 저들의 뜻대로 결론 내려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하버드 로스쿨 학생으로 이번 '램지어 사태'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등학생 때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온 자넷 박 씨를 만났다. 5일 오후 화상으로 진행된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자넷은 "우리 세대에게 '위안부' 운동의 의미는 역사의 옳은 편에 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통해 한인이자 청년세대가 생각하는 '위안부'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학생들의 정당한 문제제기에 침묵하고 있는 램지어와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 파문 관련해 하버드대 내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하버드 한인 학부생 위원회에서 건의해 하버드 학부생 학생위원회도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이 나왔고, 하버드 로스쿨 한인 학생회에서 낸 성명에 하버드 로스쿨 학생회도 서명을 했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상황이 더 커졌다. 그런데 학생들이 보낸 항의서한에 대해 하버드대 총장은 초기에 "학문의 자유"라는 입장을 밝힌 뒤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램지어 교수도 마찬가지다. 사태가 커질 만큼 커진 상황이기 때문에 하버드대와 램지어 교수의 입장이 발표될 때까지 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의 자유'가 통상적인 '표현의 자유'와는 다르다. 학문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해 '학문적 자유'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마이클 최 UCLA 교수 등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해 반대하는 서명을 한 수천명의 교수들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맞다. 현재 학생들은 학교와 램지어 교수의 입장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초기에 하버드 로스쿨과 학부의 한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문제제기가 나왔고 차츰 넓어져서 전 세계 학자들이 참여하는 비판 성명도 따로 나왔다. 학생들의 발 빠른 문제제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이 문제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위안부' 이슈에 대해 다른 학생들도 많이 알고 있나?"
하버드 로스쿨 한인 학생회에서 같은 학교 교수의 논문을 규탄하는 성명을 낸 사실이 처음에 관심을 불러 모은 것 같다. 평가를 받아야 하는 학생들 입장에서 교수를 반박하는 성명을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다른 역사학자, 법학자, 경제학자 등 교수들이 문제를 지적하기도 전에 학생들이 먼저 핵심적인 문제들에 대해 짚어서 SNS 등을 통해 올렸다.
저도 '위안부' 문제를 잘 모르는 주변의 친구들에게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 문제에 대해 잘 모르던 학생들도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반박하는 학생들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했다. 그래서 처음 한인 학생회에 낸 성명에 서명하는 학생들도 많아지고 지난 2월 16일 이용수 할머니를 모시고 연 온라인 토론회에도 많은 학생들이 참석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도 '위안부' 운동이 꾸준할 수 있었던 힘 중 하나가 젊은 세대가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함께 해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의 젊은 세대에게 '위안부' 운동의 의미는?"
뉴저지에서 고등학생 때 KACE(Korean American Civic Empowerment, 한인시민참여센터)라는 단체 인턴으로 3년 동안 활동했는데, 한국계 미국인들의 정치적 활동, 풀뿌리 운동의 중요성과 효용성에 대해 보고 많이 배웠다. 그때부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KACE 활동으로 워싱턴D.C.에 가서 상원의원, 하원의원들 만나기도 했는데 의원들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고 의견을 듣기도 했다. 그 경험들을 토대로 대학에 가서 학위 논문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쓰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 세대에게 이 운동의 의미는 역사의 옳은 편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증거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봤을 때 이 문제는 국제적인 인권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런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70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도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답답한데, '위안부' 할머니들께선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실지 상상할 수도 없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데는 항상 젊은이들의 힘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 문제도 학생들이 더 앞장서서 해결책도 같이 의논하고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H.RES 121)이 통과됐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역사 교육의 필요성 등을 요구한 결의안이다. 그로부터 15년 가까이 지났지만 일본 정부는 사실 인정조차 하고 있지 않다. 미국 의회나 정부에서 무엇을 더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저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한국과 미국 동시에 연결돼 있다. 또 많은 한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많은 시련을 이겨낸 가족들이 한국에 있다. 이런 이유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더 사명감을 갖고 도울 가능성이 있다. 저희 외할머니께서 1933년생이셨는데, 조금만 더 빨리 태어나셨으면 '위안부'로 끌려가셨을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한인들은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에 묶여 있지 않고 오직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생각할 수 있다. 또 미국 시민이자 유권자로서 당당하게 미국 정치인들에게 이 문제 해결은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중요한 문제라고 제시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인들이 다른 미국 시민들에게 최대한 많이 알려 미국 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미국 정부도 나서서 일본 정부에 사태 해결을 요구할 수 있게 되면 문제가 더 빨리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위안부' 이슈로 학교에 일본계 학생들과 이 문제를 얘기해본 적 있나?"
그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질문 때문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일본계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하버드 로스쿨에 일본계 학생이 소수라서 전체 의견을 대표한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개개인이 약간 온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제가 얘기를 해본 학생들은 대체로 '위안부' 문제에 공감을 하고, 이 문제가 전쟁시 여성 인권 문제라는데 동의하고, 몇몇 학생들은 하버드 로스쿨 한인 학생회가 낸 성명에 서명도 했다.
"최근 <뉴욕타임스>와 이 이슈에 대해 짧게 인터뷰를 했다. 거기서 이 문제가 "'부정론자(denialists)'와 '수정론자(revisionists)'와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달라."
'부정론자'는 '위안부' 문제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혹은 일어나기는 했지만 일본 책임이 아니라는 사람들이다. '수정론자'는 이미 일어났지만 우리는 이를 재해석하고 앞으로 나갈 것이라는 태도를 의미한다. 두 집단 모두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왜곡하려 한다. 제가 2월 16일 온라인 토론회 때도 말했는데, 상처가 났으면 상처를 드러내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을 해야지 치유가 가능하다. 상처를 보지도 않고 닫아버리거나 방치를 하면 더 심해진다. 그 일을 이들 두 집단이 아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용수 할머니께서 주장한 것처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여러 나라들의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이 문제가 가진 상처들이 어쩔 수 없이 열리게 되고 이를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할머니들이 되도록 많이 살아계실 때 억지로 상처를 열어서라도 치유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ICJ 제소에 대해 한국 내에서는 첫째, 일본이 안 갈 것이다, 둘째, 혹시라도 지면 어떻게 하냐는 크게 두 가지 우려가 제기된다. 명분으로는 분명 충분하지만 실제 법정으로 가게 되면 모르는 일이다. 일본이 국제적 소송에 있어 경험과 역량이 훨씬 뛰어나니까. 이런 지적에 대해 로스쿨 재학생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그런 우려 때문이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려 국제적 인식을 높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위안부' 문제가 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와 같은 시기에 일어난 전쟁 범죄로서 인식돼야 한다. 이런 인식이 높아지면 ICJ 판사들도 이를 고려하게 되고 이길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홀로코스트와 달리 여전히 '위안부' 문제는 가해국의 인정과 사과, 정치적 책임 및 배상 등 어느 것도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다. 이런 차이가 과연 가해국의 차이에서만 비롯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독일과 일본, 가해국의 차이도 아주 크게 있지만 유대인들과 한국인들의 차이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램지어 사태 때도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한국에서도 많이 나왔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인들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의견 차이가 있으니까 문제 해결도 더욱 늦어지는 것 같다.
미국에서도 유대인들과 한인들 사이에 인식 차이가 분명히 있다. 미국에 있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자녀에게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데 홀로코스트를 매우 핵심적인 사건으로 가르친다. 반면 한국계 미국인들의 경우 현재는 좀 달라졌지만 자녀들을 교육시키는데 한국계 미국인이 아닌 미국인이기를 바라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컸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계 미국인들이 오히려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뚜렷이 갖는 게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또 살아남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와 같은 전쟁범죄를 바로 잡아 나가는 과정에서 한국계 미국인들도 유대계 미국인들처럼 정체성도 더욱 뚜렷해지고 미국 내에서 정치적 활동 및 참여도도 더욱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논문의 문제점을 넘어서 인신공격이나 인종차별적 발언도 나오는데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인권 문제를 다루는데 인권을 침해하면 상호 모순적이지 않나. 램지어 교수에 대한 과도한 인신공격성 발언은 삼갔으면 좋겠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홍기혜
onscar@pressian.com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