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현 신부는 왜 아직도 강정을 떠나지 못하나

[손호철의 발자국] 1. 제주 강정 :강정마을에서 21세기 '자주국방'을 생각한다

그동안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30회에 걸쳐 되짚어왔던 <한국일보> '손호철의 발자국' 칼럼이 이제부터 <프레시안>에서 주 3회씩 연재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지역 곳곳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높이고 '교양 있는' 여행을 돕기 위해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발로 뛰며 쓰는 한국 근현대사 기행입니다. 제주와 호남을 시작으로, 영남, 충청, 강원, 경기, 서울까지 약 60회에 걸쳐 이어질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합니다. <편집자>

'4779일.' 서귀포에서 모슬포 방향인 서쪽으로 20분 정도 달려 작은 어촌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허름한 천막 앞에 매달린 '해군기지 반대싸움 4779일'이라는 팻말이다.

▲ 강정의 해군기지반대투쟁을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물들 ⓒ손호철

그렇다. 허름한 천막에 붙어 있는 '강정미사천막'이라는 팻말이 보여주듯이 이곳은 우리 시대의 어른인 문정현 신부님이 이끌고 있는 강정노천평화성당이다. 4779일이면 고령의 문 신부가 주민들과 함께 싸움을 시작한 지 벌써 13년이 지났다는 이야기다.(지난 주 다시 강정을 찾았더니 그 날짜는 5040일로 변해 있었다.)

가슴 아픈 것은 그 옆에 써 놓은 또 다른 숫자였다. 이 투쟁으로 연행된 사람 700명, 기소가 587건, 구속이 60명, 벌금이 3억 원, 손해배상 구상금이 34억5000만 원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정부는 제주도가 삼무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

2005년 1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세계평화의 섬 지정 선언문에 서명하고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중문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제주평화의 섬 선포와 함께 건립한 제주국제평화센터에 있다.

▲ 서귀포에 있는 제주평화연구원에 설치되어 있는 제주평화헌장 ⓒ손호철

이곳에 들어서면 커다란 돌에 쓰인 제주평화헌장이 우리를 맞는다. 이로부터 16년 지난 2020년 현재, 제주는 해군 군사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아직도 갈등을 겪고 있다. 바로 강정마을이다. 한국근현대사 기행의 다른 이야기들이 기본적으로 '과거의 일'이거나 '과거가 되고 있는 일'이라면, 강정마을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미래의 현장'이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10여 명의 주민들이 앉아 있고 본인이 직접 파서 만든 '강정 생명 평화 미사'라는 목각 아래, 낯익은 문정현 신부의 검게 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 이상의 열정으로 아직도 정의와 인권이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는 곳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우리 시대의 '어른'의 모습을 보고 있자 정말 오랜만에 한 인간에 대해 경외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 문정현 신부가 강정마을 입구에서 이끌고 있는 강정 미사 천막 ⓒ손호철

미사가 끝나자마자, 노신부는 작은 경차에 나를 실고 어디론가 빠르게 움직였다. 도착해 보니 강정해군기지 앞이다. 매일 정오에 이곳에서 열리는 집회로, 한 젊은 외국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능숙한 한국말로 사회를 보기 시작했고 여러 사람들이 '구럼비야 일어나라!', '평화의 섬 제주' 팻말을 들고 모여들었다. 특히 'Stop Militarization(군사화 중단)'이라는 영어 피켓과 '미 핵함공모함 입함 금지'라는 피켓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 강정 '민군복합형관광미항' 앞에서 매일 정오에 열리는 문화집회의 사회를 보고 있는 외국여성 ⓒ손호철
▲ 문화행사에 참석한 평화운동가들. 제주로 날아온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와 최갑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보인다. ⓒ손호철

기이한 것은 갑자기 이들이 대낮에 해군기지 앞에서 '트롯' 노래자랑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피켓을 들고 해군기지 앞으로 행진해 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해군기지 앞에서 벌어진 춤의 향연이라니!

이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봤다. 그리고는 무릎을 쳤다. 아마도 집회 허가를 얻으려고 '문화행사'로 신고를 했을 것이다. 따라서 문화행사라는 것을 보여주느라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다. 게다가 '죽음의 문화'인 군사시설 앞에서 '삶의 희열'인 춤과 노래라니, 얼마나 멋진 대비인가!

▲ 민군복합형관광미항 앞에서 백주대낮에 벌어진 춤파티는 그 의마가 심장하다. ⓒ손호철

아스팔트 보도블록에 쭈그리고 앉아 춤을 추고 있는 젊은이들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노신부의 얼굴에는 10년이 넘는 노상 미사의 피곤이 배어났다.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의 해군기지 건설이 무엇이기에 이제 은퇴를 하고 편하게 여생을 즐기고 있어야 마땅한 노신부를 10년 이상 거리 미사로 내몬 것인가?

▲ 노구를 이끌고 몇년동안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이끌어온 문정현 신부에게 피곤함이 묻어난다. ⓒ손호철

정부는 세계 G2로 떠오르며 세계 패권을 위해 '대양해군'의 기치를 걸고 해군력을 강화하는 중국과 7광구 분쟁 등이 가시화되고 있는 일본의 해군력 증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분쟁 가능성이 큰 이어도와 7광구에 가까운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했다.

원래 최적지라고 판단한 화순이 내부 반발 등으로 표류하면서 강정마을의 마을회장 등 극소수의 개발론자들이 날치기로 유치 계획을 통과시켰고 제주도 역시 환경보호 등과 관련해 절대보호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던 강정의 등급을 낮춰주며 해군기지건설을 지원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이장을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탄핵시키고 유치 결정의 비민주성을 지적하는 한편, 환경평가 등의 졸속성, 부당성에 항의했으나 일단 칼을 뽑아든 정부와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이 계획을 구체적으로 집행한 것은 이명박 정부지만, 처음 구상한 것이 김대중 정부이고 본격적으로 진행한 것은 노무현 정부였다. 진보진영이 이에 대한 비판을 하자 노무현 정부는 평화의 섬과 해군기지는 모순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결국 정부는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해군기지 이외에도 두 척의 민간크루즈가 정박할 수 있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만든다는 계획 하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2015년 제1단계 공사가 끝났고 이제 해군기지는 작동하고 있다. 이처럼 공사가 끝나고 해군기지 작동이 시작한 지 이미 몇 년이 지났는데, 왜 노신부는 아직도 반대운동을 계속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해군기지가 이미 작동하고 있는데 왜 아직도 반대운동을 하고 계시나요?

= 손 교수까지 그따위 질문을 하세요? 그 이유야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지요. 이 기지는 주민 결정에 의해 해군기지를 유치했다는 것부터, 처음부터 모두가 사기지만 지금도 사기가 진행되고 있어요. 원래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건설하기로 할 때 방파제 이외는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양해각서를 작성했는데, 해군이 최근 항구 전체를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도록 요청했어요. 이는 크루즈 운항에도 지장이 있고 어로 작업 등을 침해하는 약속 위반이에요.

- 아 그런가요?

= 그건 큰 틀에서 보면 지엽적인 문제이고 문제는 제주도 전체를 군사기지로 만드는 것을 저지해야 하기에 운동을 중단할 수 없어요. 해군기지만 있으면 함정 보호에 문제가 있으니 제2공항이라는 이름아래 공군기지를 만들려 하고 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레이더기지도 설치해 제주도 전체를 군사기지화하려 하고 있어요. 요즘 진행되는 각종 도로공사도 이와 관련이 많아요. 특히 한미군사협정에 의해 미군은 언제든지 우리 기지를 쓸 수 있으니 제주도가 미국의 대중국 군사기지가 되고 있는 거지요.

- 이에 대한 제주도의 분위기는요?

= 의식 있는 소수는 우려하고 있지만, 다수는 '개발주의'라고 할 수 있지요. 나라도 끝까지 여기를 지켜야지요. 한명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진리를 이야기하면, 언젠가 승리하게 되어 있어요.

강정을 떠나 제주도청 앞으로 가면, 제주 제2공항과 도로공사에 반대하는 현수막과 천막농성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성산으로 향하는 비자림로에는 도로 확장공사로 숲을 베어낸 흔적들과 이에 항의하는 현수막들이 나를 맞았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나무에 매달아 놓은 '根音(근음)'이라는 글씨였다. 근음이니 '뿌리의 소리'라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이 숲을 파괴할 때 들리는 나무뿌리의 신음소리, 뿌리의 울음소리를 들으라는 이야기였다. 이 글씨를 보자 정말로 나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해졌다.

▲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해 도로확장을 위해 베어낸 비자림 숲. 그 앞에 '뿌리의 (신음) 소리'라는 뜻의 근음이라는 글씨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손호철
▲ 제주도청 앞의 제2공항건설 반대 농성텐트 ⓒ손호철

진짜 중요한 것은 강정이 단순한 강정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강정은 또 다른 심각한 분쟁 끝에 미군기지가 이주한 평택 대추리, 사드가 설치된 소성리, 미국 공군기지 증설로 논쟁이 되고 있는 군산 등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강정은 '지는 해'인 미국, 그리고 그 하위 파트너인 일본과 '뜨는 해'인 중국이 21세기 세계 패권, 특히 동북아 패권을 놓고 벌리고 있는 군사경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중국과 일본이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손만 놓고 있을 수는 없을 것처럼 보인다. 이 점에서 강정은 불가피한 우리의 자구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문 신부 등이 우려하고 있듯이 한미방위조약에 의해 강정기지를 비롯한 우리의 군사기지를 미국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정기지는 언제든지 대중국 미 해군기지가 될 수 있고, 우리는 이 미중 전쟁 속에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미국편에 설 수밖에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과연 그것이 올바른 선택인가?

미국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세계 제2의 해양대국인 중국과 일본 등에 대항해 (미국의 도움이 없는) '자주국방'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만일 우리가 통일이 돼서 중국·소련과 국경을 맞대게 된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군대를 유지하고 얼마나 많은 국방비를 퍼부어야 이들에 대항해 '자주국방'이 가능할까? 자주국방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프로젝트'가 아닐까? 해군기지 건설과 군비강화 지지론자들은 이에 비판적인 '평화주의자'들이 양육강식의 현실을 모르는 낭만주의자, 이상주의자라고 콧방귀를 칠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 등 인구나 영토 크기나 군사력이라는 면에서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 강대국들이 우리의 주변국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고려할 때, 군비강화를 통한 자주국방론이야 말로 '낭만주의자', '이상주의자', '돈키호테'가 아닐까?

군비문제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리고 현대가 '기술전'의 시대라고 하지만, 애당초 체급이 전혀 다른 '고양이'가 아무리 전투력을 강화한다고 '호랑이'에 대해 자주국방이 가능할까? 현실이 그러하기에, 차라리 중장기적으로 발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한반도를 스위스와 같이 영세중립국으로 만드는 '한반도영세중립화'를 선언하고 '제3의 길'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강정마을은 우리에게 이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묻고 있다. 그러하기에 강정은 21세기 한국의 미래가 달린 '미래의 현장'이다.

<후기> 답사를 다녀온 뒤인 2020년 말 문재인 정부는 문정현 신부 등 강정해군기지반대시위 관계자 18명을 특별사면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이는 생색내기에 불과한 선별적 사면이라며 그간의 인권침해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문 신부는 "용서받아야 할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정부"라고 비판했다.

또 해군이 기지건설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과 인권침해에 대해 사과하고 구상권, 행정대집행 비용납부명령을 취소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해군이 진정으로 사과하려면 "건설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이 전제되어야"하며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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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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