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닥치니 '저주와 막말'…'저비용 고효율' 정치?

[최창렬 칼럼] '쇼 비즈니스' 정치 게임, 시민은 절반의 주권자

인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시민이 정부를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치러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최대 민주주의(maximal democracy)를 성취할 수 없다. 사회구성원의 파편화와 시민이 정치적 측면에서 수동적 존재로 전락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선거가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정치과정으로 작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정당 이론의 대가인 샤츠슈나이더는 그의 저서인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정당이 공직자를 선출하는 데 머무를 뿐 정책과 강령을 수립하고 실현하지 못한다면 시민은 온전한 주권자가 아니라 절반의 주권자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경우 시민은 정부를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절차적 정의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정치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4월 보궐선거는 대선을 불과 1년 앞둔 선거라는 시기적 요인으로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 양보할 수 없는 선거가 됐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의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이번 선거 역시 선거정치를 이용한 정치계급의 게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는 쇼 비즈니스에 의존하고 현대시민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능력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 출마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어렵다. 정치계급이란 대중의 이해관계보다 정치인 자신의 이해와 정당이익 및 수익을 의식하는 현대정치인을 의미한다.(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 민주주의> 서문)

정치가 갖는 역동성의 근원은 투쟁과 갈등에 있다. 갈등이 제대로 조직화되지 않을 때 시민은 정부를 통제하지 못하고 정당은 당파성에 몰두함으로써 정치계급의 이익에 복무하게 된다. 시민들은 정치세계의 주요 갈등이 자신의 이해와의 관련성이 적다고 생각할 때 정치에서 멀어진다. 모든 이슈가 개인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연관될 수 없으나 시민사회의 갈등이 역동적일 때 정치가 시민의 삶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정치는 정치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혐오정치의 임계점에 와 있다. 팬덤과 진영정치에 기반한 진부함이야 새삼 거론할 일도 아니지만 4월 보궐선거에 임하는 정당들에서 나오는 발언들은 혐오와 적대를 부추김으로써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한국정치의 퇴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 언어의 저급함은 정치의 일상이 됐지만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상식을 벗어난 비유와 과장, 저주에 가까운 언술들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선거를 석 달 가까이 앞둔 시점에서 여야 정당에서 터져 나오는 발언은 철학의 빈곤이나 인품의 수준만의 문제가 아닐 정도로 고의성이 짙기 때문이다.

저급한 언어와 상대를 혐오하는 비합리적이며 반지성적 단어들은 시민의 갈등이 정치에 투영됨으로써 정치가 작동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이들 언어는 정치 균열을 차단하고 원시적 정서에 정치를 환원시킴으로써 반정치를 획책하는 주범으로 기능한다. 발언의 당사자는 잠시 언론의 비판만을 감수하면 정당 내에서의 위상 제고라는 전리품을 챙기고 비록 품격이 낮은 정치인으로 자리매김 되지만 인지도 상승이라는 혜택도 누린다. 정치인들의 막말들을 단순하게 일회성 실수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수혜가 존재하는 한 천한 언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언어로 오염된 정치는 초선 정치인들에게는 매력적이고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저비용 고효율의 기법으로 각광받는다.

선거를 앞두고 저질 단어들이 유별나게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정책적 차별화를 통한 승부보다는 선거 과정에서 사회갈등이 토론되고 용해되지 못하는 정책의 빈곤함과 선거공학적 구도에 집착하는 현실이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정치엘리트의 가면을 쓰고 극단화한 정치지형에 편승하여 자신의 입지를 노리는 추방되어야 할 정치계급의 위선도 한 몫 한다. 결국 시민이 정치 통제에 실패한 업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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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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