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대착오적 '박사 영부인' 논란...대통령 부인은 직업 갖지 말라고?

'직업' 유지하는 '영부인'이 불편한 보수세력...질 바이든 "여성들 성취가 축하 받는 세상 만들 것"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질 바이든 '박사'에 대한 때아닌 논란이 뜨겁다.

일부 보수 언론인들이 교육학 박사인 질 바이든의 학문적 성과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모양새이지만 그 바탕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영부인이 되더라도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겠다는 질 바이든 입장에 대한 불편함이 깔려 있다고 보여진다. 때문에 이번 논란이 가라앉더라도 기존 영부인 상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보여지면 보수진영에서 또다시 논란을 제기할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전망할 수 있다.

WSJ 칼럼니스트 "질 바이든, 영부인 호칭에 만족하라"

시작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칼럼니스트 조셉 엡스테인의 글이다. 그는 "질 바이든이 자신의 이름 앞에 박사(Dr.)를 붙이는 것은 웃기다고 하긴 어렵지만 사기처럼 느껴진다"며 "한 현자가 아이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의사)가 아니라면 박사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에서는 박사 학위가 있는 사람들 중 상당 수가 자신의 이름 앞에 박사(Dr.)라는 호칭을 붙인다. 교육학 박사 학위가 있는 질 바이든도 언론 인터뷰 등에 '박사' 질 바이든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엡스테인은 칼럼에서 상당히 노골적으로 바이든의 학문적 성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은 시카고대학 학사에 그치지만 노스웨스턴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쳤다고 거듭 '박사' 질 바이든에 대한 불편함 심기를 드러냈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 출신인 질 바이든은 늦은 나이에 박사 과정에 입학해 56세가 되는 2007년 델라웨어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취득 이후에 델러웨어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조 바이든이 2008년 부통령이 된 이후에는 노던 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이민자들을 상대로한 영어 교육(ESOL), 작문 등을 가르쳤다. 엡스테인은 바이든이 학사 출신인 자신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를 가르쳤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어 "질 박사라고 불리는 작은 흥분(스릴)은 잊고, 퍼스트레이디로서 세계 최고의 공공주택(백악관)에서 향후 4년동안 더 큰 흥분에 만족하라"고 썼다.

"여성혐오적 칼럼"...힐러리 클린턴-미셸 오바마 등 반박

이 칼럼은 이후 성차별적인 칼럼이라며 숱한 비난이 쏟아졌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 등 전직 영부인들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오바마는 "현재, 우리는 많은 전문직 여성들이 그들의 호칭이 박사(Dr.)이든, 부인(Mrs.)이든, 심지어 영부인이든 간에, 너무나 자주 우리의 업적에 대한 회의, 심지어 조롱에 직면한다"며 "이것이 정말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설정하고자 하는 본보기냐"고 물었다.

부통령 당선자 카멀라 해리스의 남편인 더글러스 헴호프 변호사도 "바이든 박사는 순수한 노력과 투지로 학위를 받았다. 남자였다면 이따위 이야기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세했다.

엡스테인이 재직했던 노스웨스턴 대학은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박사' 학위를 가진 여성들이 엡스테인의 칼럼에 대해 "여성혐오(Misogyny)"라고 비판하며 자신의 이름 앞에 '박사(Dr.)' 호칭을 붙여 사진을 올리는 등 비난이 크게 일었다.

<폭스뉴스> 앵커 "바이든 박사 논문, 오타 투성이...국가적 수치"

이런 비판으로 수그러드는 듯했던 논란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언론인 중 한명인 <폭스뉴스>의 타커 칼슨 앵커가 다시 불붙이고 나섰다. 그는 앞서 "질 바이든이 '박사'가 아닌 것은 '닥터 페퍼'(음료수 이름)가 박사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조롱한데 이어 16일에는 바이든의 박사 학위 논문을 문제 삼고 나섰다.

칼슨은 바이든의 학위 논문에 대해 "첫번째 그래프에 오타가 있는 등 오타 투성이"라면서 "그녀는 문맹에 가깝다", "글을 쓸 줄 모른다", "영어를 사용했지만 외국어로 쓰여진 것 같다"는 등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더 나아가 "이 문제는 질 바이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학위를 준 대학에도 해당된다"며 "바이든의 박사 학위 논문은 국가적 수치"라고 공격했다.

성역할 고정 관념 깨는 '바이든 백악관'에 대한 불편한 심기 노출

질 바이든을 향한 비판은 사실 그의 박사학위의 문제가 아니다. 비판을 하고 나선 언론인들이 학문적 평가를 하기에 적임자들도 아니다.

바이든에 대한 비판은 '박사' 호칭을 붙이느냐, 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바이든이 부통령 부인(세컨드 레이디) 때 그랬던 것처럼 영부인(퍼스트레이디) 위치에서도 '교수'라는 직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질 바이든이 '교수' 일을 계속 하게 되면 미국 역사상 직업을 유지하는 첫번째 영부인이 된다.

또 이들의 '불만'은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 탄생에 대한 불만까지 포함된 것인지도 모른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은 미국 역사상 첫번째 여성, 흑인, 아시안 부통령이다.

여러모로 기존의 성역할을 깨는 '바이든 백악관'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질 바이든은 WSJ 칼럼 이후 트위터에 "나는 우리의 딸들이 이룬 성취가 폄훼당하지 않고 축하받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클 라로사 영부인 대변인은 트위터에 "WSJ는 여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존경심을 갖고 있다면 당장 이 혐오스러운 남성우월주의의 흔적을 삭제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WSJ는 이 칼럼을 계속 게재하고 있다.

▲ 질 바이든이 10일 해외에 주둔하는 미국 장병들에게 연말을 받아 보낼 물품들을 포장하는 일을 돕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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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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