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치가 '제3지대' 만나려면…

[최창렬 칼럼] 정치 양극화가 빚어낸 추미애·윤석열 갈등

내년도 보궐선거는 2022년 대선과 맞물려있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갈등 양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여러 변수가 돌출하겠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은 선거의 변곡점이 될 수 있을까.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과 민주당 등 여권의 압박은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집행정지와 징계청구로까지 치달았다. 경위·동기의 적절성 여부와 상반된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 총장을 밀어내기 위한 억지·궤변으로 포장된 무리한 권한남용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현 정권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윤 총장에 대한 징계심사 결과 해임 또는 면직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고 이후 법적공방으로 이어진다면 정치 활동에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만약 윤 총장 해임 시 피선거권 문제가 대두될 수 있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지난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가 정치에의 뜻을 굽히지 않는 한 지지율은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여권 반대 진영의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세력화에 성공하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느냐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역설적인 것은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추 장관의 윤 총장 압박이 국민의힘에게 호재로 작용하지 않고 오히려 야권 대선주자들의 왜소화를 결과함으로써 여권이 선거에서 우위에 서는 구조이다. 윤 총장이 정치에 뛰어들더라도 국민의힘과 결합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시대변화와 새로운 의제설정에 실패함으로써 대안세력으로서 각인되지 않는 정파와 연대한다는 것 은 정치상식으로 상정하기 어렵다.

또한 국정농단과 적폐수사로 검찰총장직에 오른 윤 총장과 국민의힘 본류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방향과 가치를 공유할 수 없다. 단지 반(反)문재인이라는 소극적 요인이 전망적 투표가 본질이라는 대통령 선거의 동력을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영정치는 이슈와 의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올바른 판단보다는 발언이나 입장을 진영의 관점에서 평가함으로써 공익으로 위장한 사익이 판단의 준거가 되는 정치다. 메신저는 정의와 공정에 근거하지 않고 진영의 관점에서 자신의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자기검열에 길들여지게 된다. 이러한 퇴행적 정치가 한국정치 공간을 지배하는 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진영의 이익을 홍보하는 도구적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만다. 민주화 이후에 이러한 현상은 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구도를 대체했고 박근혜 탄핵은 이를 심화시켰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시민사회의 갈등적인 요소를 다원적으로 반영하는 데 유리한 다당제보다 진영정치와 친화적인 양당제적 성격이 강하다. 분단과 냉전, 압축성장, 군사권위주의 정권 대 민주화 세력의 대치 등은 적대를 숙주로 하는 양극정치를 결과했다.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운 제3지대의 의미 있는 세력화는 번번이 좌절했다. 이유는 특정 진영에 속하다가 내부에서의 주도적 입지 확보에 실패한 이후 중도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고건·반기문·안철수 등의 실패한 인물 등은 진정한 제3지대와 중도라고 지칭할 수 없다.

정치평론도 양극으로 갈라졌고, 신문과 방송도 예외가 아니다. 유투버들은 적대와 혐오를 부추기는 데 여념이 없다. 조회 수는 곧 돈이고 정치양극화에 익숙한 구독자들은 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메시지에 몰입된다. 이러한 한국정치의 퇴행과 유권자의 심리를 돈벌이에 악용하는 얄팍한 자들의 천민정치가 오늘의 정치양극화를 강화하고 있다. 특정 진영에 유리한 발언을 의도적으로 쏟아내는 발언들을 선호하는 방송도 반성해야 한다.

중도를 갈망하는 40%에 가까운 유권자를 대변할 세력과 사람이 나올 때가 됐다. 만약에 윤 총장이 정치를 한다면 이들을 규합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의 본류에 실망한 국민의힘 내부의 정치인, 친문 주류에 절망한 민주당 내의 합리적 진보세력, 한 때 '데스노트'로 이념을 넘어 신뢰와 지지를 받았던 정의당 등의 힘을 잘 견인해 낸다면 새로운 정치세력의 탄생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단순히 수량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맞추는 정치, 양쪽의 평균을 지향하는 정치는 중도정치가 아니다. 중도는 때로는 진보를 선호하기도, 상황에 따라 보수적 의제에 동의하기도 하는 정치다.

항상 대선에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한국사회는 더 이상 분열로 가서는 안 된다. 임기 5년에 한국사회의 모순을 다 바로잡을 수는 없다. 정의와 공정, 통합의 사회가 차기 대선을 가르는 준거틀이 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슴을 울렸던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허공에 흩어지는 깃털처럼 가벼운 정치수사에 불과하다.

다시 촛불을 살릴 때다. 그러나 진영정치로 이를 이룰 수는 없다. 진부하게 들리는 중도가 다시 정치의제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여권 주류에 의해 배제되고 국민의힘과 결합할 수 없는 인사가 정의와 공정의 화두를 시대정신에 장착할 수 있다면 누구나 제3지대의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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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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