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원 기수의 뜻을 진정으로 잇는 길, 마사회법 개정

[끝나지 않은 마사회 싸움 ①]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지난 겨울,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 이후 시민사회 일각에는 '14년 간 7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사회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았다. 문 기수의 죽음을 둘러싼 100일여의 싸움이 한국사회에 '마사회의 구조적 개혁'이라는 과제를 남긴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한국마사회 적폐 청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들은 △ 기수와 말관리사의 노동권·인권 보장 및 공공성 강화를 위한 마사회법 개정 △ 온라인 경마 합법화 저지 △ 경주마의 동물권 보장을 위한 동물권 단체와의 연대 등 활동을 벌여왔다.

문 기수 1주기를 맞아 대책위는 물론 대책위와 활동을 함께해 온 동물권 단체의 활동가들이 <프레시안>에 마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세 편의 글을 보내왔다.

첫 편은 공공성 강화, 마사회 권한 분산, 기수와 말관리사의 노동권 보장 등을 위한 마사회법 개정을 주장하는 글이다. 필자인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대책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문중원 기수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문중원 기수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말을 타지 못해 생계에 곤란을 겪었고, 마사회의 비리로 조교사 개업도 방해를 받았다. 문중원 기수의 죽음도 서러웠지만, 이 죽음의 책임을 묻는 일도 힘들었다. 정부는 감염법을 들이밀며 정부종합청사 옆 분향소를 폭력적으로 철거했다. 유가족이 단식에 나서 마사회와 합의를 이루고 장례를 치렀지만 마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국마사회 적폐청산 대책위원회'에서는 마사회법을 개정하여 마사회를 바꾸기 위한 논의를 진행해왔다.

공공기관인 마사회가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도록

마사회법 개정의 목표는 마사회가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사회는 조직을 승자 독식 구조로 만들었다. 기수와 말관리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이겨야 하고, 경쟁에서 패배하면 생존의 고통을 겪는 상태가 되었다. 사행성 산업인 경마가 매출과 경쟁을 중심에 놓으면 비리와 도박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마사회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매출만 올릴 수 있으면 불법도 눈감는 안이한 대처, 장외발매소 등 사행성 위주로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매년 감사원 감사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사항이다.

이렇게 매출을 올려도 사회 환원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사회 예산에서 경마 운영과 관련한 비용이 전체 예산의 98.5%(2019년 기준)나 된다. 말산업 육성이나 경주마 목장 운영, 승마보급 등 말산업 진흥에 투여되는 예산은 1%이다. 사회공헌사업 비중은 0.5%에 불과하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사회적 가치와 공공성 중심의 평가가 도입된 2019년, 마사회는 최하위 평가인 D 등급을 받았다. 사행성 기업이 공공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마사회법 전문에 '사회적 가치 실현'을 마사회의 목적으로 담아, 이를 토대로 사회공헌사업과 말산업 발전에 대한 기여를 높은 수준으로 올리고자 한다. 또한 사행성 산업인 마사회가 지나치게 매출과 경쟁에 매달리지 않도록 농림축산부의 지도·감독 권한을 강화하려고 한다. 그리고 사행성통합감독위원회가 사행 산업에 대한 총량 규제만 하고 있는데, 마사회의 내부 비리 등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사회법 개정 사안은 아니지만 경영평가 기준에서 사행성 산업의 경우 매출이 핵심 기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내 경마장에 모인 사람들. 사행성 산업을 위주로 매출을 올리는 마사회 사업비 예산(7조 621억여 원) 중 2020년 예산 기준 중독 예방 치유 예산은 0.08%(61억 4000만 원)에 불과하다. ⓒ연합뉴스

권한은 있으나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를 바꾸어야

마사회는 경마의 시행체일 뿐이며, 마주와 조교사, 기수, 말관리사는 마사회의 직원이 아니다. 그러나 마사회는 마사회법에 의해 매우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아 경마관계자들을 통제한다. 문중원 기수의 죽음 이후 기수들을 대상으로 하여 마사회가 기수와 조교사, 마방의 운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를 질문했을 때 90%가 넘는 기수들이 10점 만점에 8점 정도의 영향력이라고 답했다. 그만큼 마사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런데도 마사회는 자신들은 시행체일 뿐이라면서, 기수와 말관리사의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마사회는 마주와 생산자에 대한 등록 권한을 갖고 있다. 등록이 되어야 마주는 경마에 참여할 수 있고, 생산자는 씨수말을 공급받는다. 마사회는 등록 취소 권한을 이용하여 권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마사회가 경마제도 변경에 반발한 마주와 생산자의 등록을 취소하여 압력을 가했던 사례도 있다. 조교사들의 면허 발급과 갱신의 권한은 마사회가 갖고 있고, 조교사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마사대부의 권한도 전적으로 마사회에 있다. 그러니 조교사들은 마사회의 지시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기수들의 면허 갱신권도 마사회에 있어서 마사회는 순위가 낮은 기수의 면허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기도 했다.

마사회가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마사회법에 의거하여 각종 권한을 휘두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책위가 준비한 개정안에서는 마사회법에 보장된 마사회의 권한을 분산하고자 했다. 경륜 선수의 경우에는 면허의 발급 권한을 문화체육관광부가 갖고 있다. 경마기수의 면허 발급 권한도 농림축산부로 이관하고 마사회가 일방적으로 면허를 취소하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 경마 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마사회의 권한인 만큼 징계권은 마사회에 있겠지만 이의제기나 재심이 가능하도록, 그리고 징계를 위한 각종 위원회에 기수나 말관리사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만들고자 한다. 조교사면허를 딴 순서대로 마사대부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 마사회와 각 경마 주체의 맺는 관계. 말 생산자에게 지급하는 지원금, 마주에게 지급하는 상금이 마사회에서 나오는 것은 물론 마주, 기수, 조교사의 면허 및 등록 권한도 마사회에 있다. ⓒ한국마사회적폐청산을위한대책위원회

기수와 말관리사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경쟁성 상금이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기수들은 기승기회를 보장받아야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부당한 지시에도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말관리사들의 업무는 사실상 크게 차이가 없는데도 어느 조교사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임금의 격차도 매우 컸다. 그래서 경쟁성 상금의 비중을 줄이고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기수와 말관리사들은 재해발생율도 매우 높다. 문중원 기수가 일했던 부산경남 경마공원의 경우 2019년 재해발생률이 무려 28.4%였다. 이런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마사회법에 기수와 말관리사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조항을 담고자 했다. 말관리사는 조교사에게 고용되어 경주말을 훈련하고 관리한다. 그런데 개별 조교사의 성적에 따라 말관리사의 임금격차도 심해지고 고용이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조교사협회에서 말관리사들을 고용하도록 법에 담아서 고용불안정성을 없애고자 했다. 그리고 기수들에게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자 했다. 기수와 말관리사 개인이 대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기수와 말관리사 단체를 공식화하도록 개정안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기수와 말관리사가 마사회의 여러 구조에서 주체로 인정받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산업발전위원회를 비롯하여 마사회의 여러 기구에 기수와 말관리사 노조의 대표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기수와 말관리사의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마사회가 교섭에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사회가, 기수와 말관리사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기수, 말관리사 단체와 협의할 의무를 부여하여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기수와 말관리사들은 권한은 갖고 책임은 지지 않는 마사회 밑에서 숨죽여왔다. 경쟁과 효율 논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기수와 말관리사들은 노조로 모여 '죽음의 경마를 멈추기 위해' 나서고 있다. 진짜 변화는 이 기수와 말관리사의 목소리가 힘을 얻어야 가능하다. 마사회법 개정 논의는 마사회의 닫혀있는 구조를 바꾸어 이 목소리에 힘을 더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문중원 기수의 죽음과 장례는 서러웠으나, 그로부터 시작된 변화가 마사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관이 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되는 일터가 되는 데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마사회법은 꼭 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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