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패자 부활을 꿈꾸는 미국의 70대 포퓰리스트들

'미국의 시장'에서 '음모론의 대가'로...트럼프와 줄리아니의 '욕망의 정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74세)이 최근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76세)을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소송의 총책임자로 지명했다. 지난 3일 있었던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졌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하 생략)은 "선거가 조작됐다"면서 "합법적인 표만 계산하면 내가 이겼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줄리아니를 선거 관련 소송의 총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이런 의지의 표명이라고 현지 언론들을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와 줄리아니 둘 다 알고 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줄리아니와 1970년대 함께 검사로 일했던 존 프래너리 전 연방검사는 17일(현지시간) MSNBC와 인터뷰에서 "나는 이것(줄리아니 임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자랑스러운 법적 도전이 끝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며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줄리아니가 아무 주장이나 할 수 있겠지만 법정에서는 그렇게 안된다"고 주장했다.

'충성파'만 기용하는 트럼프에게 줄리아니는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는 마음에 쏙 드는 측근이겠지만, 2018년 4월 줄리아니가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가 된 뒤로 그가 주도하거나 개입한 모든 일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는 트럼프가 2019년 하원에서 탄핵소추를 당하게 된 계기인 우크라이나 사태의 핵심 인물이다. 최근 영화 <보랏2>에 '몰래 카메라'에 속아 추한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때 '미국의 시장'으로 불리며 뉴욕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줄리아니는 왜 '음모론의 대가'가 되어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트럼프 '선거 불복' 사태의 뒷정리를 하고 있을까? 한국인들에게 마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최시중 고문의 관계가 떠오르게 만드는 트럼프와 줄리아니, 미국의 70대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정치적 동업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 <보랏2>에 줄리아니가 등장하는 장면. '몰래 카메라'에 속아 줄리아니가 여배우를 성희롱하는 것으로 의심을 살 만한 장면이 찍혔다. ⓒ유튜브 갈무리

줄리아니, 9.11 테러 당시 뉴욕시장으로 인기 급등...2008년 대선 도전 실패

줄리아니는 1970년대 연방검사로 경력을 쌓기 시작하게 된다. 주로 마약과 강력범죄를 담당했던 그는 1980년대 뉴욕남부지방검찰청 검사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마피아, 다른 한편으로는 월가 금융권과 '내밀한 거래'를 통해 검사로 성장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뒷거래 뿐 아니라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법에도 일찍부터 탁월했다고 한다. 이런 개인기를 통해 검사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94년 뉴욕시장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검사 당시 얻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범죄 소탕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고, 매우 공격적인 방식으로 이를 밀어붙였다. 후임인 마이크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이번에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공격 받던 '불심 검문'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 바로 줄리아니였다. 그는 이 수준을 넘어서 빈민가이자 흑인 공동체였던 할렘가의 수많은 노숙자들을 '정리'했다. 지금도 그 많은 노숙자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시민들은 알지 못한다고 오랫동안 뉴욕에 거주하는 이들은 말한다. 그가 추구한 범죄 감소 정책은 흑인들의 희생에 기반한 것이었고, 비무장 흑인 남성들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줄리아니는 두 번의 시장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시장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위치한 '쌍둥이 빌딩'이 테러 공격을 받아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9.11 테러에 줄리아니는 '우린 괜찮을 것이다, 나를 믿고 따라오라'는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줬다. 범죄 소탕 과정에서 보여준 강경한 모습은 '외부의 적'이 등장하자 오히려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로 보이게 했다. 9.11 테러 수습 과정에서 실의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강인한 리더'로 인식된 줄리아니는 그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으며, 영국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다.

뉴욕시장에서 물러난 뒤 줄리아니는 '줄리아니파트너스'라는 보안 관련 법률 업무를 하는 회사를 설립해 1140만 달러(약 120억 원)를 벌어들였다. 이 돈을 기반으로 그는 2008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공화당 경선에 뛰어든 그는 9.11 테러 당시의 기억 때문에 처음에는 인기를 얻었지만, 새로운 정치적 노선을 내세운 것도, 당내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결국 무너졌다. 이 도전으로 그는 오히려 9.11 테러 당시 쌓았던 명성을 다 깎아먹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선 도전 실패 이후 줄리아니는 <폭스뉴스>의 고정 정치패널로 활동하면서 우크라이나 정치인, 이란 (테러) 단체 등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고객들을 상대로 법률 자문을 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와 줄리아니, 2016년 대선 출마를 계기로 '공생 관계'

정치 일선에서 사라지는 듯 했던 그는 2016년 대선에 다른 뉴욕 출신인 트럼프가 출마하면서 다시 등장하게 됐다. 트럼프와 줄리아니는 둘다 뉴욕의 명망가로 알고 지냈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선에 나서면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유용한 존재임을 알게 됐다. 줄리아니는 당시 '공화당의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에게 공화당 내부 인사를 소개시켜줬을 뿐 아니라 뉴욕 경선 직전 트럼프 지지 선언을 했다. 또 결정적으로 2016년 대선을 한달 앞두고 <워싱턴포스트>가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 파일' 관련 보도를 하고, 이로 인해 공화당 내에서 '후보 사퇴' 주장이 거세게 일어났을 때 줄리아니는 끝까지 트럼프 편을 들었다. 줄리아니 입장에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배신'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줄리아니의 '충성'이 보상을 받을 것처럼 보였다. 한때 그가 국무장관에 기용될 수도 있을 것이란 소문도 있었지만 공직에 오르기에 줄리아니는 이미 너무 위험한 거래를 많이 해왔다. 줄리아니가 아니라 골프 선수 출신인 아들 앤드루 줄리아니가 백악관에서 '대통령 특별보좌관 겸 공공연락실 행정관'으로 지난 2017년부터 일했다. 그는 사실상 트럼프의 골프 상대 역할을 하는 대가로 연봉 1억 원을 받았다고 한다.

대선 당시 트럼프의 불륜 상대 여성들에 대한 '입막음'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선거자금법 위반, 위증죄 등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은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이 2018년 트럼프와 결별하자, 트럼프는 줄리아니에게 개인 변호사 역할을 맡겼다.

줄리아니, 개인 변호사 자격으로 외교에 관여...결국 탄핵 사태 불러와

트럼프에게 개인 변호사의 의미는 사실상 '해결사'였다. 전임인 코언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트럼프 일가의 온갖 귀찮고 지저분한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집사이자 해결사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줄리아니에게는 자신의 재선과 관련한 '해결사' 역할을 맡겼던 것으로 보인다. 줄리아니가 오랫동안 거래하던 우크라이나 인사들로부터 당시 가장 유력한 민주당 후보였던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 아들 헌터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줄리아니는 이와 관련된 뒷조사에 당시 우크라이나 대사, 유럽연합 대사 등 외교관들을 동원하려 했다. 트럼프도 직접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바이든 부자에 대한 뒷조사를 요청했다. 이 과정이 내부 고발을 통해 폭로돼 트럼프는 2019년 12월 하원에서 권력남용 등으로 탄핵소추를 당했다. 이로 인해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하원에서 탄핵된 3번째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줄리아니는 끝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 대선 막판 헌터 바이든에 대한 의혹을 터뜨려 '옥토버 서프라이즈'를 기대했으나, 증거가 부족해 다수의 언론이 관련 뉴스를 보도하지 않으면서 '불발'에 그쳤다.

오히려 지난 10월말 언론을 뜨겁게 달군 것은 헌터 바이든이 아니라 줄리아니 자신이었다. 줄리아니는 영국 출신 코미디 배우인 사샤 바론 코엔 주연의 영화 <보랏2>에 등장한다. 그 영화에 몰래 카메라에 속아 10대 여성을 성추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만한 장면이 찍혔다. 보랏의 딸 역할을 맡은 연기자는 카자흐스탄 출신 여기자로 사칭해 호텔에서 줄리아니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배우는 인터뷰를 끝낸 뒤 줄리아니에게 "침실에서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말했고, 줄리아니는 흔쾌히 동의했다. 방으로 이동한 뒤 줄리아니가 침대에 누워 바지 속에 손을 넣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나중에 몰래 카메라인 것이 확인된 뒤 줄리아니는 이 행동이 마이크를 제거하고 셔츠를 고쳐입은 것이라며 자신은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며 발끈했다.

줄리아니는 또 대선이 끝나고 바이든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날인 지난 7일 트럼프의 소송 관련 입장을 밝히겠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포시즌스'에서 "큰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예고했다. 하지만 기자회견 장소는 '포시즌스 호텔'이 아니라 '포시즌스 종합 조경'이라는 조경회사 창고 앞이었다. 포시즌스 호텔은 별도로 트럼프 기자회견 장소가 자신들의 호텔이 아니라는 공고를 내는 등 작은 소동이 일었다. 이 기자회견은 소셜 미디어에서 엄청난 패러디를 탄생시켰고, 그 중 하나가 트럼프의 '법과 질서(Law and order)'를 풍자한 '잔디와 주문(Lawn and order)'이다.

▲줄리아니가 개최한 선거 부정 의혹 관련 기자회견. '포시즌스 종합 조경' 창고 앞에서 진행됐다.(위) 이 기자회견을 풍자한 패러디물(아래).ⓒ트위터 갈무리

2024년 대선, 패자 부활을 꿈꾸는 70대 포퓰리스트들

이처럼 2018년 이후 줄리아니가 개입한 일들 중 실질적으로 '성공'한 사건은 별로 없다. 줄리아니가 총책임을 맡게 된 대선 관련 소송도 줄줄이 기각되거나 패소하고 있다. 17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와 보수단체는 주요 승부처인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조지아, 위스콘신주에서 제기한 소송 4건을 취하했다. 또 트럼프 캠프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낸 소송과 관련해 광범위한 '유권자 사기'가 있었다는 핵심 주장을 포기하고 일부 투표용지가 참관인 없이 집계됐다며 개표 과정의 결함만 주장하기로 했다. 현재 개표 결과 바이든이 트럼프를 500만 표 이상 앞서고 있어, 소송을 통해 결과가 뒤집히기는 어렵다. (선거인단 수는 바이든 306 대 트럼프 232)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에게 줄리아니는 여전히 유용한 존재다. 줄리아니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가공 현실'(우크라이나 사태, 옥토버 서프라이즈, 부정 선거 주장)이 트럼프에겐 광적인 지지자들을 계속 결집하게 만들고 자극시키는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선 직후 참모들에게 직접 2024년 대선에 재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선거 불복 쇼'가 끝나고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오면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할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트럼프와 줄리아니의 동업 관계는 쉽게 청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 ⓒ워싱턴포스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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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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