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책임'이 부과된 코로나19 방역, 가능하게 하려면

[서리풀 논평] 더 나쁜 상황에 대한 준비 절박하다

정부가 11월 1일(일요일) 오후 늦게 새로운 방역 지침을 발표한다고 하는데, 작업 과정 때문에 더 기다리지 못하고 이 <논평>을 작성한다. 정부 발표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이미 여러 언론이 비슷하게 보도한 내용을 기준으로 했다. 막상 발표 내용이 다르면 헛수고가 될 수도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아주 작다고 판단한다.

지금까지 언론이 보도한 내용에는 크게 두 가지 강조점이 눈에 띈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11월 1일 자 '"코로나19 장기전 대비"…정부, 오후 '거리두기' 개편안 발표')

"전국적으로 일원화된 대응보다는 권역별로 세분화하고, 지역 상황에 맞는 대응을 준비할 것"

"획일적인 조치보다는 '정밀 방역'의 형태로 개인과 지역, 권역, 지자체의 자율과 책임을 큰 틀로 한 거리두기 개편 작업이 진행 중"

우리 생각에 첫 번째 방향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어떤 점에서는 때늦은 감마저 있다. 이러한 대응 기조는 3월 16일에 낸 '논평'에도 들어 있는 내용으로, 그때 '맞춤형' 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 근거를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 코로나19 사태, '책임의 정치'를 묻다)

"비말 감염의 특성상 접촉 시간의 길이, 물리적 밀접성, 마주 보는 접촉, 말하는 것, 공간 폐쇄성 등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 거리 두기가 효율적이 되려면 이런 과학에 맞춰 맞춤형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거리 두기를 더 강화해야 할 곳이 있는가 하면, 좀 완화해도 괜찮은 조건도 있다."

두 번째 강조점 또한 첫 번째와 무관하지 않다. 맞춤형이 될수록 정밀해야 하고 개인, 지역, 지자체가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영향과 이에 대한 대응의 주체는 결국 최종적으로는 개인에 이르므로, 이의 원심적 속성과 분권화 경향은 불가피하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정밀 방역'보다는 그다음, '자율과 책임'을 내세운 대목이다. 한국 사회에서 오래 통용되어 이제는 익숙해지기에 이른 이 말은 때로 날카로운 정치적 의미를 품는다. 그것은 바로 코로나19 유행에 대한 대응을 둘러싼 '책임'을 어떻게 배분하는지에 관한 것. 예컨대 바로 이전 질문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어떤 결과에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그 책임은 누구로부터 누구에게 옮겨가는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새로운 책임 주체는 개인, 지역, 권역, 지자체다. 맞춤형 방역이란 이들이 다양한 사정과 맥락에 맞추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해 대응하는 것을 뜻하는바, 자율에 따른 결과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분권화인 동시에 개별화(또는 개인화)라 할 수 있다.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말 '자율과 책임'은 갑자기 돌출한 관용어가 아니라 역사적 축적물이며, 특히 지방 분권(또는 지방자치)의 토대가 된 원리이자 이념이다. 이제 코로나19 방역에서 다시 등장한 것 또한 역사적 과정과 무관하지 않으니, 의도와 목적, 과정, 예상되는 결과 모두를 공유할 가능성이 크다. 지방 분권 논의의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냥 책임만 떠넘기는 분권화는 그 유명한 '이중의 자유'가 될 공산이 크다는 것, 그것이 지금 떠올려야 할 중요한 교훈이 아닌가 싶다. 분권화와 개별화가 같이 진행될 때, 모든 개별 주체는 스스로 자원을 동원해 자유롭게 대응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응에 필요한 그 어떤 자원과 역량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 즉 부재와 결여의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자칫 여러 개인과 집단이 '스스로 규율할 자유'와 함께 '위험해질 자유'까지 얻는 것은 아닌지 회의해야 한다.

부정적 의미의 자율과 자유는 가능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식과 정보가 충분치 않고 인력이나 장비도 장담할 수 없는 지자체에 "각자 상황에 맞추어 방역 지침을 정하고 대응 태세를 갖추라"라고 넘기면, 해당 지자체는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다시 농구장, 코인 노래방, 요양병원 또는 그 연합체가 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실천하라고 하면?

역량이니 인프라니 하는 말은 되풀이하지 않는다. 분권화, 개별화, 개인화가 지금보다 더 위험을 키우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율 그 자체보다 자율의 조건과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한 마디로, 맞춤형으로 '해야 한다' 또는 '하겠다'라고 말하기 전에 '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앞으로도 방역 대책은 당분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중심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관한 한, 우리는 경제 요인이 모든 조건과 환경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삶의 물질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어떤 사회적 거리 두기 방법도 실천할 수 없다. 지난 6월 중순에 이 '논평'을 통해 제기한 문제의식은 아직 유효하다.(☞ 관련 기사 : 실천 가능한 '록다운' 방안, 미리 준비하자)

"뭐니 뭐니 해도 수많은 사람의 생활과 생계 대책이 중요하다. 실직자와 비정규 노동자, 영세 자영자, 한계 상황의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꼼꼼하지만 담대한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감염병 유행의 사후 대책이 아니라 방역 대책 그 자체다."

집중이든 분권이든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경제적 조건을 조성할 책임은 1차로 국가와 중앙 정부에 있다. 정부 체계와 경제 집중도를 생각하면, 소득, 생계, 고용과 노동, 생산과 소비 등 경제활동에 다른 대안이 없다. 역설적이지만, 분권형 방역이 성공하려면 국가와 중앙 정부가 더 강해져야 한다.

내용만큼이나 '타이밍'도 중요하다. 이미 시기를 놓친 것도 많지만, 지금이라도 더 나쁜 상황에 대비한 준비가 절박하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시나리오별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필요한 때 맞춤형 방역을 실천할 수 있다. 예산과 법, 제도, 행정체계를 빠르게 정비해야 한다.

노파심에서 강조하지만, 맞춤형 방역을 반대하거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완화하자는 뜻이 아니다. 개별 주체가 민주적, 협력적,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맞춤형 방역을 실천하기 위해서도 국가와 중앙 정부가 더 유능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조건, 특히 경제적 조건을 갖추는 데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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