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COVID-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극장이나 스포츠 경기장 같이 사람들이 밀집될 수 있는 곳이나 밀폐된 공간보다는 집에서 혼자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에 집에서도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PC로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영상 구독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추세에 있다.
DVD 대여업체에서 OTT의 공룡으로 성장한 넷플릭스
오늘날 최고의 OTT(Over the Top) 플랫폼으로 널리 알려진 넷플릭스는 처음부터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넷플릭스의 설립자 중 하나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당시 미국 비디오 대여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에서 빌린 비디오를 반납하지 못해 비싼 연체료를 물게 된 데에 불만을 갖고 마케팅 임원 출신이었던 마크 랜돌프와 함께 우편을 이용한 월정액 무제한 DVD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DVD 대여 서비스로 성장한 넷플릭스는 2007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작을 선언했다. 처음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적으로 시기상조라거나 넷플릭스가 기존 유료 케이블 TV의 아성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런 전망을 비웃듯 넷플릭스는 DVD 대여 서비스업을 하면서 축적한 개인별 맞춤형 콘텐츠 제공 시스템인 시네매치라는 데이터 주도 전략과 더불어 린 경영 방식(lean management), 신경제(new-economy) 방식의 노동의 자유, 성과 우선주의를 결합한 인재 정책, 지역 시장별 로컬화 전략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그 결과 넷플릭스는 중국, 시리아, 크림반도,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성장했으며, 시청자들이 유료방송서비스의 케이블을 끊어버리는 코드 커팅(code-cutting)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Netflix Nations>(넷플릭스 세계화의 비밀)을 쓴 라몬 로바토(Ramon Lobato)는 맥켄지 워크(Mackenzie Wark)의 저서 <가상의 지리학>(Virtual Geography)을 인용하면서, 전세계 190여 개 시장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의 동시 출시, 다양한 국가의 콘텐츠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번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넷플릭스가 초국가적 텔레비전의 특성을 갖추고 TV의 세 번째 물결을 선도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의 TV 역사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는데, 첫 번째 물결은 NBC, ABC, CBS, FOX 등의 지상파 방송사가 주도했으며, 두 번째 물결은 CNN, MTV, HBO, ESPN 등의 케이블 채널이 주도한 것으로 본다. 세 번째 물결은 현재 OTT 서비스가 TV 역사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넷플릭스라는 OTT의 공룡이 등장하게 되면서, 지리적 시장은 글로컬화(glocaliztion)를 경험하는 한편 상품 시장은 상품 간 경계가 무너져 융합되고, 거대해지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로 연결되는 세계: 넷플릭스는 왜 한류 콘텐츠를 선택했을까?
그러나 다양하고 질 좋은 오리지널 콘텐츠와 각종 제휴콘텐츠를 통해 OTT 업계의 공룡이 된 넷플릭스의 상황은 녹록지만은 않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디즈니플러스, 애플 TV 등이 잇따라 서비스를 개시하게 되면서 콘텐츠 가격은 상승하고 구독료는 내려가고 있다. 2019년 11월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 플러스는 디즈니의 오리지널 콘텐츠, 스타워즈 사가, 마블 시리즈를 앞세워 북미 지역에서 넷플릭스 점유율을 추월하기도 했다.
이렇듯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의 구독자 수가 정체기에 진입한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아시아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2019년 12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공개한 넷플릭스 구독자 현황을 보면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는 1억 5830만 명에 달하며, 권역별로 보면 북미 6710만 명, 유럽·중동·아프리카 4740만 명, 남미 2940만 명,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1450만 명이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다.
여전히 북미 구독자 수가 많지만, 아시아 태평양 시장의 3년 간 구독자 수가 세 배 이상 증가했을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전 세계 인구의 약 50%, 방송시장의 38.7%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 시장에 주목하는 것은 미래 사업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콘텐츠들이었다. 이처럼 넷플릭스가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한국 콘텐츠를 선택하고 투자금액과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은 한류 콘텐츠들이 아시아 지역 수용자에게 인지도, 신뢰도, 충성도를 끌어낼 수 있어 구독자 수 증가를 꾀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현재까지 약 7억 달러(한화 약 7970억 원)를 한국 콘텐츠 제작에 투자했으며, <옥자>, <킹덤>, <범인은 바로 너>, <보건교사 안은영>, <인간 수업>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19년 11월에는 CJ ENM이 보유한 스튜디오드래곤의 지분 일부를 인수하고, 3년간 오리지널 콘텐츠를 포함한 21편의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벌어간다?
바이어나 극장과 같은 중간 과정 없이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콘텐츠들이 보급되고 전 세계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현상은 고무적이나, 이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넷플릭스를 통해 보급되는 미디어 콘텐츠들은 아시아 지역 시장에 대한 판권을 넷플릭스에 넘기게 되는데, 이것이 단기적으로는 콘텐츠 외연 확장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재주는 한국 콘텐츠 제작자들이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벌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이나 미디어업계에서는 현재로서는 수억 명의 유료가입자를 보유한 넷플릭스를 통해 한류 콘텐츠가 확산되는 순기능을 하고 있지만, 넷플릭스가 시장을 장악해 한류 콘텐츠의 유일한 통로가 되면 콘텐츠 제공자가 플랫폼의 하청 업체로 전락해 끌려갈 수 있다는 점에서 넷플릭스를 양날의 검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갖춘 국내 동영상 플랫폼의 구축이다. 넷플릭스를 통한 한국 콘텐츠들의 외연 확장도 중요하지만, 장밋빛 미래에만 매몰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근본적인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플랫폼 마련에도 고심해야 할 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