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 필적할 글로벌 도시 부산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금융 부문도 국가균형발전 정책과 함께 가야

지난 9월 25일 공개된 글로벌 금융센터 지수(GFCI, Global Financial Centre Index)의 최신호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세계 금융센터 순위에서 부산이 꾸준하게 40위권에 위치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도시'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표1>에 나타나는 것처럼, 뉴욕, 런던, 상하이 등 최상위 도시와의 격차는 상당하지만 부산은 코펜하겐, 슈투트가르트, 밀라노, 오사카 등에 필적할만한 금융센터로 거듭났다.

▲ 표 1. 글로벌 금융센터 순위(2020) ⓒ'The Global Financial Centre Index 28, Financial Centre Futures' *기업환경, 인적자본, 기반시설, 금융산업, 평판을 종합해 산출

글로벌 금융센터 지수(GFCI)

GFCI는 매년 2회(3월과 9월) 발간되는 글로벌 금융센터 지수 및 순위 자료이다. 기업환경, 인적자본, 기반시설, 금융부문의 발전, 도시 평판 등 5개 분야의 데이터를 근거로 GFCI가 산출된다. GFCI의 조사, 분석, 출간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싱크탱크이자 컨설팅 그룹인 지옌(Z/Yen)에서 맡고 있다. 금융센터의 도시 정부도 이따금씩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부산(2018년)과 서울(2020년)이 GFIC 발간에 참여했다.

2007년 처음 발간된 후 GFCI는 글로벌 도시 간 벤치마킹의 대표적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벤치마킹 도시의 수가 최초 46곳에서 2020년 9월 121곳으로 확대된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서울은 발간호부터 순위표에 포함되었고, 부산은 벤치마킹 도시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2014년 3월호에 처음 등장했다. 평가 도시가 매번 추가되고 있기 때문에 GFCI 순위로 시간에 따른 지위의 변화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새로 진입한 도시의 순위가 신뢰할만한 수준으로 안정화되는 데에도 몇 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비교 도시의 수가 100개를 넘어선 이후부터의 변화는 비교에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기간 동안 부산은 GFCI 순위에서 50위(2017년 3월) → 70위(2017년 9월) → 46위(2018년 3월) → 44위(2018년 9월) → 46위(2019년 3월) → 43위(2019년 9월) → 51위(2020년 3월) → 40위(2020년 9월)를 기록했다. 대체로 40위대를 유지하며 글로벌 금융센터로서의 위상을 다지는 부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국가균형발전 정책과 부산 금융허브의 부상

글로벌 금융센터로 입지를 강화하는 부산의 현 상황은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중요한 결실이다. 중앙정부는 2009년 부산을 금융허브로 지정했고, 이후 2014년 완공된 남구 문현동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Busan International Finance Center)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제2의 금융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됐다. 파생상품과 해양금융이 이곳의 전략적 육성 부문으로 선정되었다.

부산 금융허브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이다. 이에 따라 한국거래소, 기술보증기금,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예탁결제원, 주택도시보증공사를 비롯한 공공 금융기관이 문현동 일대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의 부산 본사에서는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무역보험공사에 산재했던 선박금융 업무를 부산으로 일괄 이전해 해양금융종합센터를 출범시켰다. 해양금융 육성책은 한국해양보증보험(주)의 신설로도 이어졌고, 이 회사 또한 BIFC에 자리를 잡고 있다.

최근 중앙정부와 정치권에서 '2차 공공기관 이전' 방침이 공론화되며 부산 금융센터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IBK기업은행,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예금보험공사, 한국무역보험공사,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등 20여 곳의 금융기관이 2차 이전 기관에 포함될 가능성 때문이다. 제1금융권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부산에서는 국책은행을 유치해 기존 공공 금융기관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외국계 금융기관 유치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제도적 제약과 우려의 목소리

그러나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은 험난한 여정일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제도적인 걸림돌이 존재한다. <한국산업은행법>, <한국수출입은행법>, <중소기업은행법>은 모두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명시하기 때문에 지방 이전을 위해서는 법의 개정이 필수적이다.

이밖에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금융노조와 <연합뉴스> 등 중앙 언론계를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민간과 외국계 금융회사가 서울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국책은행만 따로 지방에 있으면 자금조달 능력과 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과의 정책금융 네트워크가 약화될 것이라고 염려하는 이들도 있다.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금융업계에서 핵심 인력 이탈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도 우려의 요소이다.

한 마디로, 공간적 분산보다 지리적 집적이 중요한 금융업의 특수성 때문에 금융은 균형발전 정책과 같은 국가주도의 재입지 전략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와 반대의 견해는 경제지리학, 특히 금융지리학 분야의 기존 연구 결과에 비추어보면 일부만 타당해 보인다.

금융지리에서 물리적 집적의 중요성

우려하는 바와 같이 금융은 고도의 지리적 집중을 요하는 부문이며, 이것으로부터 규모의 경제 이점이 창출되는 점은 분명하다. 전자 금융 거래의 일반화, 탈규제화 때문에 금융에서 지리와 장소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견이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뉴욕, 런던, 상하이, 도쿄, 홍콩, 싱가포르 등 거대도시에 위치한 금융센터의 글로벌 경쟁력은 여전하다.

상기 글로벌 도시 모두는 마뉴엘 카스텔이 말하는 '다차원의 연결성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정보통신 네트워크, 육·해·공의 교통수단, 회계, 보안, 호텔 등 부수적 서비스의 인프라가 결집해 있다는 말이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도시는 거시적 금융 자본의 네트워크에서 초국적 허브의 역할을 맡는다.

다른 한편으로 금융업계에서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의 흐름을 빠르게 포착하고, 정교한 분석을 수행하여 신속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장소를 기반으로 한 미시적 사회관계의 네트워크도 금융센터 작동의 핵심 요소가 된다. 나이절 쓰리프트는 탈규제화 속에서도 금융기관의 집적을 꾸준히 유지하는 런던 금융가를 분석하며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금융] 회사는 사회성을 지녀야 한다. 일상적 접촉을 통해서 비즈니스 정보에 대한 흐름이 창출, 지속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아는 것만큼 '누구'를 아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기업과 직원 모두에게 '관계의 관리'는 아주 중요한 임무이다...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다면 접촉은 비교적 쉬운 일이 된다. 여럿이 무리지어 있을 때 접근성이 좋아져 신속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센터 발전에서 국가의 역할

대도시의 금융 클러스터 발전에서 민간 부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뉴욕과 런던은 민간 금융의 성장에 힘입어 최상위 글로벌 금융센터의 지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 '하이퍼(hyper)' 글로벌 도시는 거버넌스 측면에서 상당히 예외적이다. 뉴욕과 런던 바로 아래 위치한 상하이(3위), 도쿄(4위), 홍콩(5위), 싱가포르(6위)의 성장은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도쿄는 일본 기업과 금융기관의 성장을 밑바탕으로 글로벌 도시의 지위를 얻었는데, 이는 통상산업성(MITI)을 중심으로 관료 사회가 민간 경제를 조직하고 조절하는 '발전국가' 거버넌스의 영향을 하에서 이룬 것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식민지 시대의 유산을 바탕으로 보다 개방적인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며 성장했지만, 일률적 정책의 시행이 가능한 '도시-국가' 거버넌스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1990년 글로벌 도시 개발 정책으로 시작된 상하이의 발전은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진행되었다. 상하이는 1841년 개항 이후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 금융센터로 성장했지만, 이 역할은 1949년 중국의 공산화와 함께 끝을 보았다. 대다수의 상하이 금융인들은 홍콩, 타이완 등지로 이주했고, 상하이의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1950년 문을 닫았다. 남겨진 금융기관은 모두 베이징으로 옮겨졌다. 40년이 지난 1990년에서야 주식시장이 재개장했고 외국계 은행의 점포 설립도 다시 가능해졌다. 그러고 나서 30년 만에 상하이는 세계 3대 금융센터 중 하나로 급성장한 것이다.

도쿄,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의 사례로 알 수 있는 것처럼 국가의 정책과 거버넌스는 금융센터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곳에서 물리적 집적과 사회적 네트워크의 집약은 국가 정책의 후행 효과로 나타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의도 금융가의 형성도 1970년대 이루어진 여의도 개발과 증권거래소 이전 정책의 산물이었다. 이와 유사한 집적 이익의 효과를 부산의 문현동 금융단지에서도 10~20년 후에는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보다 많은 공공 금융기관들이 이곳에 이전하면 정책 효과의 시일이 훨씬 더 앞당겨질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나아가 제3, 제4의 금융센터를 조성하여 보다 균형 잡힌 국토 개발 전략의 도구로 금융 부문을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금융 부문 분산 정책의 적합성

금융의 분산으로 인한 글로벌 경쟁력의 약화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선진국 중 유일한 금융센터만을 가진 나라는 상당히 예외적이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표2>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국가대표' 금융센터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에서만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진국은 복수의 글로벌 금융센터를 보유한다.

▲ 표 2. 글로벌 금융센터 국가의 유형. ⓒ'The Global Financial Centre Index 28, Financial Centre Futures' *GFCI 순위 20위 내에 3개 이상의 도시가 있는 국가 유형 **1위, 2위 도시 간 GFCI의 격차가 50 이상이면 '패권도시형'으로, 50 미만이면 '경쟁도시형' 국가로 구분

미국에서는 최상위 도시 뉴욕 뿐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워싱턴DC, 시카고도 GFCI 순위의 20위 안에 위치한다. 중국에서는 상하이와 함께 베이징과 선전의 금융센터도 급부상하고 있다. 영국의 런던과 에든버러,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처럼 수위 도시와 차상위 도시 간 격차가 상당한 경우도 있지만, 스위스, 독일, UAE, 캐나다에서는 비슷한 순위의 금융센터가 경쟁한다.

따라서 국가대표 금융센터를 당연하거나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분산된 금융센터 시스템을 창출하는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효용성을 검토해야 한다. '경쟁도시형' 국가에서는 도시 간의 균형 잡힌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위 도시를 여럿 보유한 미국과 중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복수의 금융센터가 존재한다고 해서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이 가해지는 것도 아니다. 이런 국가에서는 분산된 금융센터 간 경쟁으로 각각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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