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 폐지 논의, 수면 위로

[기고] 국회의원은 당연히 입법의 전 과정을 '검토'부터 '직접'수행해야 한다'

필자는 그간 <프레시안>을 통해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를 국회의 본질을 훼손하는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하면서 이에 관련된 많은 기고를 이어왔다.

이러한 노력들의 총화(總和) 때문인지 올해 들어 오랫동안 거의 모든 사람이 관심도 가지지 않고 그 누구도 주장하지 않았던 이 문제가 서서히 수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시민단체도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를 폐지하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참여연대 "국회의원 입법권 훼손하는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 폐지 필요"

얼마 전 국회의 한 상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16개 피감기관 간부들로부터 ‘황금열쇠’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 받는 현장이 언론에 보도된 사건에 대해 참여연대는 “국회 상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피감기관의 향응과 금품 제공 대상이 된 것은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가 법안 심사의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라면서 “조속한 시일 내에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 폐지를 포함한 국회법 개정에 나서야 할 것”을 요구하였다(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2020년 8월 28일).

참여연대는 이 발표문에서 “국회법상 전문위원은 국정감사를 지원하고, 법안에 대한 조사 등을 통해 검토보고서를 제출한다. 국회는 법안 심사 시, 첫 단계로 해당 법안에 대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고, 전문위원의 검토보고가 국회의원들의 법안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며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훼손하는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 폐지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필자의 오랜 주장이 마침내 시민단체에서도 나온 순간이다. 필자는 시민단체가 이 ‘검토보고’ 문제를 주장하게 되면 이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시작이 반이다. 필자의 목표는 이미 벌써 많이 성공한 셈이다.

한편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믿기 어렵지만... 입법권한 없는 한국 국회”라는 장문의 <프레시안> 기고문(2020년 3월 25일)에서 “소준섭 박사의 결론은 국회의원 자체가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입법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라며 필자의 주장을 자세하게 인용하였는데, 이 기고문은 적지 않은 반향이 있었다.

또 김호균 명지대 교수는 “국회의원이 무능하고 게을러도 입법부로서 국회가 돌아가는 비결은 있다.”면서 “소준섭 박사가 체험하면서 분석한 국회의 구조를 보면, 국회(의원)의 입법권이란 사실상 형식일 뿐이며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통과되는 법안도 입법공무원인 전문위원의 검토 의견이 절차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시험권력’이 ‘선출권력’의 활동을 조종하는 구도로 되어 있다.”고 강조하였다(“국회는 ‘소도’가 아니다”, <아주경제>, 2020년 6월 2일).

학생이 자신의 '본분'인 수업을 하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필자는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의 문제점을 학생과 수업이라는 비유를 들어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학생의 본업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수업, 즉 학습이다. 그런데 만약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고 대리 수업을 한다든지 대리 시험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학생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학습과 수업을 하지 않고서 나가서 연애하고 패싸움하고 게임하고 놀 수밖에 없다. 패싸움 금지규정을 만들어본들 막을 수 없다.

수업을 하지 않고 시간이 남고 남아돌아서 날이면 날마다 패싸움하고 연애하고 게임하는데, 예를 들어, 패싸움금지법, 연애금지법, 게임금지법 등등을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본들 그것들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 또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학생을 선발해본들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는 그 본질을 고치지 않는다면 선발된 그 좋은 학생들도 수업을 안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교사를 초빙한다고 해도, 수업을 하지 않는 그 자체를 고치지 않고서 왜곡된 이 상황을 결코 바꿀 수 없다.

국회의원은 당연히 입법의 전 과정을 ‘검토’부터 ‘직접’ 수행해야 한다

동일한 논리로 필자는 오늘 국회 문제의 핵심이 바로 국회가 국회의 본분, 즉 입법을 국회의원들 스스로 수행하지 않고 ‘방기’ 혹은 ‘피동적으로 배제’된 데 있다고 판단한다. 우리 국회처럼 의원이 이렇게 입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또는 ‘소외된’ 의회는 세계 어느 나라 의회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입법이야말로 의회의 본령이고, 이 본령을 방기한다면 그것은 이미 의회일 수 없고 의원이라 칭하기 어렵다.

결국 국회개혁의 핵심은 바로 국회의원들과 ‘분리’된 국회의 본업, 즉 입법 활동을 다시 ‘복원’하여 결합시키는 것에 있다. 즉, 입법의 전 과정을 국회의원이 그 ‘검토’부터 모두 ‘직접’ 수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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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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