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직을 돈벌이에 활용"...NYT 폭로 TV토론 쟁점으로

[2020 美 대선 읽기] "트럼프, 10년 동안 소득세 제로"...바이든 "교사 소득세가 트럼프의 10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년 동안 10년간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폭로가 나와 3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자체 입수한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의 세무자료를 분석한 결과, 트럼프가 지난 2000년부터 15년간 연방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으며, 지난 2016년과 2017년 연방 소득세로 750달러(약 87만 원)를 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TV 쇼 출연만으로도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였지만 자신의 사업이 전체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고 보고함으로써 세금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오는 11월 3일 대선을 한달여 앞둔 상황에서 터진 이런 '대형 폭로'가 대선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트럼프는 기존 대선 후보들의 관행을 깨고 끝까지 세금 공개를 거부해 왔다. 스스로도 가장 큰 약점으로 인식해왔다고 보여진다.

우선 두 가지 영향을 예측해볼 수 있다.

첫째, 당장 29일(화) 저녁에 열리는 첫 번째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TV토론에서 트럼프에게 다소 밀릴 것으로 예상되던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주요한 공격거리가 생긴 셈이다.

둘째,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 계층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세금 문제'는 탄핵 사태를 야기한 '우크라이나 스캔들' 등 외교 및 국가안보 이슈, 섹스 스캔들, 인종차별 발언 등 이전에 트럼프가 공격당하던 이슈와 결을 달리한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당장 자신과 비교 가능한 사안이다. 2016년 트럼프 당선을 가능하게 했던 '러스트 벨트'(펜실베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 중공업 지대)의 유권자들의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가 핵심 관건이다.

NYT "트럼프, 수입보다 손실이 더 크다고 신고해 세금 회피...대통령직 돈벌이에 활용"

NYT는 27일 트럼프와 그가 소유·운영하는 가족 기업 트럼프 그룹(Trump Organization)의 20년 치가 넘는 세금 환급 자료를 입수해 심층 보도했다. 앞으로 관련 보도를 이어가겠다고도 예고했다.

트럼프는 TV 출연 등 만으로도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자신의 소유 기업들이 대규모 적자를 냈다고 신고해 세금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는 TV쇼 '어프렌티스' 진행자로 얻은 인기와 인지도를 토대로 2018년까지 4억2740만 달러(약 5022억 원)를 벌어들였다. 또 사무용 건물 두 채를 성공적으로 투자해 1억7650만 달러(약 2074억 원)의 수익도 올렸다. 하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지속적인 손실이 있었다고 신고해 연방소득세 대부분을 면제 받았다. 이 신문은 "셀러브리티로서 번 돈으로 고위험 사업체를 산 뒤 거기서 발생하는 손실을 세금을 피하는 데 활용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 재정 연금술의 핵심 공식"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세금 회피에는 자녀들도 동원된 정황이 보인다. 트럼프 그룹이 익명으로 지불한 '컨설팅료' 74만7622달러와 동일한 액수가 장녀 이방카가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공개한 재산 내역에서 발견됐다는 것. 이방카에게 별도로 컨설팅료를 지급한 것은 사업 경비로 처리해 세금을 줄이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트럼프는 개인 비용을 사업 경비로 처리해 세금 혜택을 받기도 했다. 음식값, 주유비 뿐 아니라 '어프렌티스' 촬영 당시 헤어 스타일링비 7만 달러(약 821만 원), 딸 이방카의 헤어 및 메이크업 서비스 비용 9만5000달러(1억1150만 원)도 사업 경비로 처리했다.

트럼프는 각종 '꼼수'로 미국에서는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지만, 2017년 인도에 14만5400달러, 필리핀에 15만6824달러를 세금으로 냈다. 게다가 이는 대통령 취임 당시 공약을 어기고 대통령직을 돈벌이에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첫 2년 동안 외국 기업과 거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이런 세금 회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재정 상태는 매우 위험하다고 NYT는 지적했다. 트럼프가 이런 '꼼수'로 세금을 환급 받은 것과 관련해 국세청으로부터 10년 넘게 감사를 받고 있으며,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1억 달러 이상을 벌금으로 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판결이 현실화될 경우 트럼프는 파산할 수도 있다고 한다.

트럼프 "가짜 뉴스" 반박...언론들 "트럼프 2년간 소득세가 머리 손질 비용보다 적어"

트럼프는 NYT 보도에 대해 "가짜 뉴스"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인 앨런 가튼은 성명을 내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사실이 부정확한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가 지난 10년간 수백만 달러의 개인 세금을 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측에서는 아직 이 보도가 "가짜 뉴스"임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출마 당시부터 자신의 세금 기록 공개를 거부해왔던 트럼프의 탈세 의혹에 대한 충격적인 보도가 나오자 언론과 전문가들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랫동안 비밀에 부치려고 했던 금융정보를 NYT가 상당 부분 폭로했다"고 평가했다. <CNN>은 트럼프의 '사기꾼'(sham)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났다면서 "대통령으로서 이해 상충에 자신을 노출시킬 수 있는 엄청난 부채에 짓눌린 무능한 사업가와 지속적인 세금 회피자가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자서전 <협상의 기술>의 대필 작가인 토니 슈워츠는 <CNN>과 인터뷰에서 "수억 달러의 소득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가짐이 드러났다"며 "그 무도함과 뻔뻔함에 놀랐다"고 비판했다.

CNN은 또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과 2017년 750달러의 연방소득세를 납부했는데 이는 극심한 불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숱한 미국인들이 내는 세금보다 훨씬 적은 액수"라면서 "트럼프는 자신의 머리 손질을 위해 쓴 7만 달러도 세금을 공제 받았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TV토론에서 활용할 듯..."이번 대선은 부자 후보 대 노동자 후보"

첫 TV토론을 앞두고 터져나온 이 보도는 당장은 바이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대선후보 TV토론은 29일 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폭스뉴스의 크리스 월리스의 사회로 진행된다. 바이든은 이번 선거를 자신이 태어난 펜실베니아주 스크랜턴 대 파크 애비뉴의 대결로 규정하고 있다. 스크랜턴은 백인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며, 파크 애비뉴는 뉴욕의 초고층 빌딩이 밀집한 지역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8일 NYT 보도에 대해 "이번 선거가 노동자 계층과 부유한 엘리트들 사이의 선택이라는 바이든의 메시지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캠프에서는 28일 영상 광고를 통해 교사(7239달러), 소방관(5283달러), 간호사(1만216달러) 등의 연간 소득세와 트럼프의 세금을 비교했다. 바이든 측은 또 "나도 트럼프보다 세금을 많이 냈다"고 쓰여진 스티커를 만들어 판매에 나섰다.

공화당 출신이지만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바이든 지지 연설을 했던 존 케이식 전 오하이오 주지사는 "나는 블루칼라 출신이며 평생 열심히 일해왔다"며 "트럼프의 변명이 무엇이든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힘들 것"이라고 CNN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바이든 측은 특히 이 보도가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층이 두터운 '러스트 벨트'(미시간,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의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전국 지지율에서 바이든에게 뒤지고 있는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선거인단 선거에서 역전을 꾀하는 것 밖에 없다. 미국은 단순 득표가 아니라 선거인단 선거(총 538표)에서 270표 이상을 확보하는 후보가 이기는 간접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단순 득표에서는 300만 표 가량 뒤졌지만, 선거인단 선거에서 이겨서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 골수 지지층은 흔들리지 않을 듯

트럼프 측은 NYT 보도에 대해 아무런 증거 없이 "가짜 뉴스"로 몰아세우고 있다. '트럼프를 저격하는 주류 언론의 가짜 뉴스'는 열성 지지자들에게 매우 익숙한 메시지다.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들은 기존 정치권, 주류 엘리트들에 대한 강한 불신과 불만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한다. 트럼프가 자신들을 대리해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틀을 깨기를 바란다. 따라서 트럼프 개인의 도덕성은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가 각종 스캔들 뿐 아니라 탄핵, 코로나19 대응 실패 등 여느 평범한 정치인이라면 일찌감치 날라갔을 대형 이슈들에도 건재한 이유다.

물론 '세금 도둑'이라는 비판은 다른 정치적 어젠다와 달리 추상적이지 않고 '내가 직접 피해를 보는' 문제라는 점에서 지지층 균열을 다른 이슈들에 비해 기대할 수는 있다고 할 수 있다.

TV토론에서 바이든의 공격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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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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