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에 일상을 빼앗긴 2020년에도 가을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하늘은 높고 공기는 청명합니다. 백로에서 추분을 거쳐 한로에 이르는 한 달은, 가만히 하늘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시원해지고, 산과 들에서 나는 먹을거리로 풍성한, 일 년 중 축복받은 한 때이지요.
여느 해 같으면 이즈음에는 추석에 대한 다양한 기대들로 가득했겠지만, 올 해는 추석이후 COVID-19 사태의 변화에만 모든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보건당국은 귀성을 자제할 것을 권유하고 있고, 실제 저도 본가에 내려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경자년의 추석은 민족의 대이동이 사라진 원년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고 5일간 이어지는 연휴를 집안에만 머물면서, 추석특집 프로그램만 멍하니 보면서 보낼 수는 없습니다. 방역수칙을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휴일을 잘 즐기고 명절의 본래 의미를 살리는 방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먼저 책을 한 권 읽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이 읽어도 좋겠지만 연휴기간 동안 1권은 완독하는 겁니다. 해마다 명사들이 여름휴가에 읽으면 좋을 책을 발표합니다. 올 추석에는 그런 책이나 베스트셀러와는 전혀 상관없는 책을, 이름난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 아닌 지역의 독립서점에서 사보는 겁니다.
어슬렁어슬렁 동네 산책하듯 책방에 가서 그 안에 있는 책들을 훑어보다가 눈에 딱! 마음에 슬금슬금 들어오는 책을 제 값 다 주고 사는 경험은 색다른 즐거움일 것입니다. 호기심을 참을 수 없다면 그 서점 주인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권합니다. 황금만능주의의 시대에 독립서점을 연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는 읽자마자 중고서점에 팔리는 책에서 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사는 지역의 독립서점에 대한 정보는 http://www.funnyplan.com 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가족이 모여서 추석음식을 한 가지 해 먹어보는 겁니다. 요리연구가 고은정 선생님은 늘 사먹거나 본가에서 해준 음식을 먹었다면, 올 추석에는 송편은 물론 다양한 명절음식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합니다.
만드는 재미와 먹는 즐거움은 물론,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먹을거리며 엄마와 아빠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또한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인터넷 검색 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물어본다면, 세대 간 소통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모이는 대신 단톡방에 집집마다 직접 만든 음식의 사진과 이야기를 올린다면, 어느 해 보다 풍성하고 유쾌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조상과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귀신 같이 알고 온다'는 말과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지 않을까 걱정하신다'는 말을 기억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면 조상들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니 문제가 없고, 건강하고 유쾌한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부모님에 대한 효에도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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