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 과연 '사람 중심' 개혁으로 갈까?

[서리풀 논평] 보건의료 '개혁'을 위해 ③

코로나19 사태와 의사들의 진료 거부를 계기로 공공의료 강화를 포함한 보건의료 개혁이 다시 사회적 관심사가 된 것은 틀림없다. 언론 보도도 많이 늘어나 지금은 '문제'에서 '의제'로 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국회-의료계가 발표한 정책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논의가 사태를 봉합하는 수준에 머물지 개혁이라는 이름에 부합할 정도로 커질지 확실하지 않다. 아예 흐지부지 끝날 수도 있다. 지난 두 주의 '논평'이 지적한 것과 같이 무엇을 왜 바꿔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고, 절박한 이해관계가 있으면서 압력이 될 만한 힘도 찾기 어려운 상태임을 고려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개혁이라는 이름에 걸맞을 정도의 진전이 있을 것으로 낙관하지 못한다. 이렇게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보건의료 개혁을 둘러싼 과거의 권력 관계와 그 균형이 거의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 무엇을 왜 바꾸려 하고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지금까지 보건의료 개혁 또는 이와 관련된 제안과 정책 대안은 대부분 정치인, 정부와 관료, 전문가 시각에 치우쳤다. 시민과 국민의 이해관계와 요구는 추상적인 명분에 그쳤으니, 이를 탈피하지 못하면 어떤 개혁도 탁상공론이 되기 마련이다.

지금 이슈가 되는 공공보건의료만 해도 그렇다. 공공보건의료 확충에 대한 가장 최근의 정부 계획은 2018년 10월 발표한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이었다.(☞ 관련 기사 : 2018년 10월 1일 자 <연합뉴스> ''의료 지역격차 없앤다'…책임병원 지정·공공의사 육성',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공공의료 강화로 필수의료 서비스 지역격차 없앤다') 이 발표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관련 기사 : '공공보건의료 강화'는 면피용?)

보건복지부와 자문위원회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나, 예산 당국(기획재정부)이나 지방 정부(또는 조직과 인력을 장악하는 행정안전부)와 협의도 하지 못하는 계획이 실행될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혹시 정부 다른 부처는 이런 계획을 세우는지 알았을까? 관심이 없었을 공산이 크고, 전례대로면 알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여러 관련 당사자가 계획의 이런 구조를 몰랐을 리가 없으니, 우리는 이 대책이 처음부터 '면피용'이었다고 의심한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 모두가 정치적으로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과제에 대해 "우리는 하노라 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민관 합동의 위원회를 동원한 것으로 판단한다.

아마도 복잡하고 지루한 논의를 거쳐 내놓게 될 이번 결과물도 두 해 전의 그것과 비슷할 공산이 크다. 다시 말하지만, 그때의 권력 관계와 균형이 바뀌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런 예상이 맞지 않기를 기대하고 대동소이한 비판을 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관점이 중요하다. 무엇을 개혁할지는 반드시 국민과 주민의 고통과 요구, 아픈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중구난방의 요구를 그대로 따르라는 추수주의가 아니며, 그래야 정치적 힘을 동원할 수 있다는 포퓰리즘도 아니다. 개혁의 가치와 의미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그 개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목표가 정확해야 한다.

코로나19 유행과 이에 대한 대응은 '사람 중심'의 시각을 회복할 중요한 기회다. 확진자가 몇 명이니, 'K-방역'이니, 또는 지역 간 격차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는 않지만) 곳곳의 사람들이 당면한 현실과는 한참 떨어진 추상이다. 이 사태에서 사람들이 느낀 불안과 공포, 그들이 느낀 고통과 수고, 희망과 요구야말로 개혁의 출발점이 아닌가.

'인구 몇 명당 하나'라는 식의 논리는 살아 움직이는 지역 사람들의 고통에 답할 수 없다. 나와 우리는, 우리 지역은, 우리 동네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누가 어떤 방법으로 이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개혁의 첫째 질문이 되어야 한다.

개혁을 낙관하지 못하는 둘째 이유는 그것을 시작하고 밀고 갈 시민의 힘이 약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정부와 관료, 정치권, 의료계 등 눈에 보이는 참여자에게 개혁의 강한 동기와 동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 중심의 개혁 방향과 일치할 가능성이 작을 것으로 본다.

지금 진정한 개혁의 동력은 오로지 지역사회 주민, 시민, 국민의 힘, 그들의 정치 세력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힘, 그리고 조직화한 세력이 걸림돌을 넘어 권력 관계를 바꿀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만, 우리는 비관하지도 않는다. 현실의 고통과 수고가 끝나지 않는 한 사람들로부터 보건의료 개혁에 대한 요구가 분출될 수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그 힘과 세력은 형성되고 축적되는 법이다. 아, '~되다'라는 수동태가 아니다. 만들고 축적하는 능동이 이런 힘의 본질이며, 여기에는 현실의 제약을 뚫는 주체의 의지가 작용한다. 미래는 아직 닫히지 않았다.

이미 열린 공간, 어떤 형식이든 이 공간에 열심히 참여하고 일손을 보태야 한다. 특히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무엇인지, 무엇이 힘든지, 무엇을 바라는지, 알리고 주장하는 것이 급하고 중요하다. '시민 지식'의 힘을 기대한다.(☞ 바로 가기 : 2018년 6월 <환경철학> 25권 '환경 문제, 시민지식 그리고 시민과학 - 시민과학의 환경 문제 해결 가능성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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