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선 출정식 열쇳말이 '슬픔'과 '공감'이 된 이유

소시오패스 트럼프 vs. 인간적 바이든...바이든 "어둠이 아닌 빛의 동맹 되겠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20일(현지시간), 이날 밤 화상 전당대회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이야기 중 하나가 '조 바이든의 슬픈 가족사'였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정치 입문 50년, 대선 도전 3수(1988년, 2008년, 2020년)만에 대선 티켓을 거머쥐게 됐다. 겉으로 드러난 이력만 보면 승승장구한 것 같은 바이든에겐 큰 아픔이 두 번 있었다. 그는 델러웨어주 상원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해인 1972년 교통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었다. 당시 부인이 운전하던 차 뒷자리에 타고 있던 장남 보 바이든과 차남 헌터 바이든도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그는 의원직을 사퇴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일을 하면서 슬픔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변의 만류로 의원 생활을 계속 했다. 어린 두 아들을 돌보기 위해 기차(암트랙)를 타고 델러웨어에서 워싱턴DC로 통근하던 것은 매우 잘 알려진 바이든의 일화 중 하나다. 바이든은 이후 1977년 현 부인인 질 바이든과 결혼했으며, 딸 애슐리 바이든을 얻었다.

그의 슬픈 가족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라크전에 자원해 참전했다가 전역하고 델러웨어 검찰총장으로 일하던 장남 보우 바이든이 2015년 뇌암으로 4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도 캘리포니아 검찰총장 재직시 당시 델러웨어 검찰총장인 보우 바이든을 알게 됐고 친하게 교류하던 인연이 이번 러닝메이트 선정에 장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큰 아들의 죽음에 크게 상심한 바이든은 2016년 대선에 도전하지 않았었다.

이날 전당대회에는 장남 보우 바이든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아들 헌터, 딸 애슐리, 4명의 손녀들이 나와서 '인간 조 바이든'에 대한 따뜻한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부인 질은 지난 18일 전당대회에서 바이든 가족의 슬픈 사연에 대해 담담하게 들려주면서 "망가진 가족을 어떻게 온전하게 바꾸는 방법은 한 나라를 온전하게 만드는 것과 방법이 같다. 사랑과 이해, 작은 친절, 용기 그리고 변함없는 믿음"이라며 남편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에 대해 강조했다.

전날 찬조연설에서 트럼프에 대해 "대통령직을 리얼리티쇼로 여겼다"고 맹비난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8년 동안 부통령으로 함께 일한 조 바이든의 '인간적인 신뢰'와 '공감 능력'에 대해 강조했다.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되는 행사에서 바이든의 '인간적인 면모'가 가장 강조된 것은 바로 경쟁자인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다. 트럼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5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사망한 시점(8월 4일)에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하루에 1000명이 코로나로 사망하고 있다"며 정치적 책임을 따져 묻자 "그들은 죽어가고 있다. 사실이다. 뭐 어쩔 수 없다(It is what it is)."고 답하는 등 국민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노선, 정책적 방향성을 떠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적 가치로 여기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측면에서 한참 부족한 대통령인 트럼프와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공개하며 '선량한' 바이든에 대해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이번 대선은 코로나19 사태로 사상 첫 화상 전당대회로 치러졌기 때문에 유독 '감성적인 접근'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가족, 이해, 공감, 회복 등의 가치는 중도적이며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는 조 바이든. ⓒAP=연합뉴스

바이든 "어둠이 아닌 빛의 동맹이 되겠다"

바이든은 이날 흑인 인권운동가 엘라 베이커의 말을 인용하며 후보 수락연설을 시작했다.

"민권운동의 거인인 엘라 베이커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지혜를 남겼다. 사람들에게 빛을 주면 그들은 방법을 찾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빛을 주어라. 현 대통령은 너무 오랫동안 미국을 어둠 속에 가렸다. 너무 많은 분노. 너무 많은 두려움. 너무 많은 분열.

여러분들이 내게 대통령직을 맡긴다면, 나는 최악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겠다. 나는 어둠이 아닌 빛의 동맹이 돌 것이다. 우리, 사람들이 함께할 시간이다."

바이든은 이번 선거가 100년 만의 팬데믹,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 인종 정의의 요구, 기후변화 등 4대 위기에 직면한, '퍼펙트 스톰' 상황에서 치러진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더 화가 나고, 덜 희망적이고, 더 분열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림자와 의혹의 길.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함께 이 기회를 빌어 치유하고, 다시 태어나고, 화합할 수도 있는 희망과 빛의 길. 이번 선거는 아주 오랫동안 미국의 미래를 좌우할 선거다. 후보들이 투표용지에 올라 있다. 그와 함께 동정심, 품위, 과학, 민주주의도 모두 투표 용지에 올라 있다."

바이든은 이런 노선과 가치의 변화에 따른 코로나19, 외교 등 구체적인 정책에서의 변화도 예고했다. 그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코로나19가 더 악화될 것이라면서 "지금의 대통령은 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리에게 얘기하며 기적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면서 "나는 그를 위한 소식이 있다. 어떤 기적도 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가 전략을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외교정책에 있어서도 그는 "동맹 및 우방과 함께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독재자들에게 비위를 맞추는 시절은 끝났다는 것을 우리 적들에게 분명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권위주의 지도자들과 친분을 강조해온 트럼프와 달리 이들과는 거리를 두겠지만,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으로 전통적인 동맹국을 압박하는 방식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오바마 뛰어넘는 시대를 위한 연설"...언론들 호평

바이든의 이날 전당대회와 연설에 대해 CNN,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CNN 정치평론가 존 아블론은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높은 수준의 연설을 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조 바이든이 이를 뛰어 넘었다"며 "개인의 고통과 좌절, 삶의 이야기를 국가의 이야기와 연결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캠프의 바이든의 정신력에 대한 거듭된 공격으로 기대치를 낮춘 덕을 봤을지도 모른다"며 "유권자들이 본 것은 확고한 통제력을 가졌으며 나라를 이끌 준비가 되어 있는 후보였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대선 캠페인에서 개인적인 비극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메시지의 중심에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하지만 가족, 동정심, 품위, 상실감은 바이든의 선거캠프가 그리려 했던 그림의 핵심이며 바이든의 이야기와 교차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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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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