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의학에 관한 상상 이야기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완벽의학과 온전의학이 자연스럽게 합치될 때

세계의 지붕에서 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환국이 있었다. 대륙과 바다를 잇는 곳에 있어서 예로부터 무역이 발달했고, 이를 통해 얻은 부로 동방의 어느 나라보다 높은 문화수준을 유지했다.

환국의 사람들은 나라의 풍부한 재정으로 인해 먹고 자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저마다 타고난 개성대로 살았고,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환국의 국민이 가장 경멸하는 것은 남을 속이고 필요 없는 부를 축적하고 물려주는 것이었다.

의료 또한 무상으로 제공되어서 아픈 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일부 신하들은 과잉진료를 걱정했으나, 21대 황제는 "국민의 수준을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하지 말라"는 한마디 말로 주장을 관철했다. 초기에는 걱정한 일이 벌어졌지만, 꾸준한 예방의학 사업과 높아진 시민의식 덕에 50년이 지난 지금, 21대 황제는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황제로 꼽히고 있다.

환국의 의료체계는 다른 국가들과 다른 특징이 있었다. 완벽의학과 온전의학이라는 두 가지 의학이 공존했다. 국민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경험적으로 더 효과가 좋은 의학을 찾아가 치료를 받았지만, 양측 의사들의 말이 다른 경우도 있어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서로가 환자를 위해 뜻을 모으면 좋으련만, 서로의 의학에 갇힌 의사들에게는 바라기 힘든 일이었다.

23대 황제가 즉위하고 3년이 지났을 쯤, 한 신하가 이 두 의학을 황제의 명령으로 통합할 것을 건의했다. 국민의 혼란을 줄이고, 국가의 재정을 아끼며, 의학의 통합을 통해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22대 황제의 부정부패로 인해 25세의 젊은 나이로 새로운 환국건설을 구호로 선출된 황제는 고민에 빠졌다. 전에 없던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의료체계의 개혁은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한 것이기에 즉흥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환국의 의료는 이웃의 나라들이 부러워할 수준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환국력 572년 입추절에 황제는 모든 신하들을 모으고 국사를 청해 이 사안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환국의 중요한 정책은 만장일치를 이룰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 결정에는 환국의 시작부터 이어진 철학자 그룹인 홍익회의 수장인 국사의 의견이 황제보다 더 강한 영향을 미쳤다. 홍익회의 학자들은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데 평생을 바치는 자들로, 대쪽과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난상토론이 열리는 종이 울리고 통합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신하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 중에는 누군가의 말을 대신하는 듯한 자들로 있었다. 양측의 의견을 다 들은 후 황제는 국사에게 의견을 청했다.

당대의 국사는 국민의 힘을 모아 이전 황제를 몰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국민은 그를 황제로 원했으나 홍익회의 학자는 권력을 갖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서 더 큰 존경을 받고 있었다.

"지금의 사태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조사에 따르면 이 일은 아주 오랜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여년전 서역에는 모든 의학의 기원이라 일컬어지는 인드라국이 있었습니다. 인드라국 최고 의사에게는 '마하 찌깟사끄'라는 칭호가 주어졌고, 그 이름은 대를 이어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19대 '찌깟사끄'에 이르러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에게는 2명의 수제자가 있었고,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찌깟사끄'에게만 내려온 의학의 비급을 상하권으로 나누어 두 제자에게 익히게 했습니다.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는 책을 바꾸어 익히게 할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황제의 사냥에 따라 나갔다가 사고로 죽게 되고,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두 제자는 스승의 책을 들고는 인드라국을 떠났습니다.

한명은 인드라국의 서쪽으로, 한명은 동쪽으로 떠나 자신의 의술을 펼쳤습니다. 서쪽으로 떠난 제자의 책에는 인간이 신의 형상을 본 딴 완벽한 존재로 그려져 있었고, 의사는 마땅히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의 책에는 본래는 완벽했지만 이 땅에 오면서 타고난 바가 다르고 처한 환경과 하는 일도 다르므로, 각자의 상황에 맞게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서쪽으로 떠난 제자의 의학은 대를 이어져 내려오면서 그 지역의 종교와 물질과학을 흡수하면서 더욱 엄격한 완벽함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동쪽의 의학은 그 지역의 환경과 철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연에 순응하며 온전한 기능을 유지하는 방법들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현재 환국의 의학은 이 두 의학이 발전하면서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처음에는 한 뿌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의 두 의학은 오랜 기간 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따라서 다시 한 길로 합해지는데도 시간이 필요하지요. 마침 완벽의학의 정점에 있는 서진제국도 그 부족함을 온전의학에서 찾으려고 하고, 온전의학은 과학의 언어와 발견을 흡수하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완벽함과 온전함이 겹치는 영역이 자연스레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것을 황제의 명령으로 강제로 하나로 합한다면 죽도 밥도 아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웃나라인 차국과 저국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백정 혹은 무당이라고 헐뜯는 두 의학을 하나로 묶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황제께서도 느끼시고 있겠지만 아래로부터 일어난 혁명 또한 유지하기 힘든 법입니다. 하물며 위의 몇 사람의 생각으로 결정하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갈 것입니다. 자고로 대의명분과 공익, 그리고 사명감을 내세우는 이들의 속내를 깊이 살피셔야 할 것입니다.

완벽의학과 온전의학은 결국 하나로 갈 것입니다. 하지만 강제로 합하기 보다는 교집합이 점점 커져서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 것입니다. 여기에 환국의 힘을 기울인다면, 차국과 저국, 그리고 서진제국이 이루지 못한 환국만의 완벽하고도 온전한 의학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황제는 국사가 말하는 동안 몇몇 신하들의 얼굴에 스치듯 지나가는 당혹감을 놓치지 않았다. 이후로도 여러 의견들이 나왔으나 황제는 이미 마음을 굳혔음을 모든 신하들은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사흘의 난상토론이 끝난 후 황제는 의무대신에게 환국의학 백년대계를 세울 것을 명했다. 이 계획의 첫 단계에는 두 의학이 가진 장점들을 가려 모으고, 국가단위의 연구를 진행하며, 양 측의 의사들과 학생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교류할 수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었다. 환국의료 백년대계 첫 번째 장의 제목은 통합이 아닌 통섭 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로 50년이 지난 후, 환국의 의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환자는 물론 의사들도 환국을 찾아왔고, 환국의 의사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각국으로 스카웃되었다. 서진제국 최고의 의학상 수상자가 2연속 환국의학자에서 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 즈음 총알막는사내들이란 이름의 가수들이 환국의 풍류를 세계에 알렸는데, 환국의 의학은 온 세상에 환류열풍을 일으키는데 또 다른 기여를 했다고도 전해진다.

- 현실과 1도 상관없는 만두선생의 상상 역사이야기, 환국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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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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