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승부수를 독립기념일(7월 4일)을 기점으로 명백히 했다.
단순화하면 2016년 대선 전략의 '재탕'이다. 적을 명확히 해서 우리 편을 규합한다.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독립기념일 전후로 한 연설에서 "급진 좌파"를 콜럼버스 때부터 간직해온 미국적 가치를 무너뜨리는 '적'으로 호명했다. 6일(현지시간) 아침엔 미국 자동차대회 나스카(NASCAR)의 남부연합기 사용 금지 결정을 이끈 흑인 선수 부바 월러스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어 오후엔 100만 명이 넘는 미국 대학과 직업 학교에 유학 중인 유학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이민세관국(ICE) 결정이 발표됐다. ICE는 가을 학기에도 온라인 수업만 듣는 외국 유학생들의 비자가 취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발표된 트럼프 정부의 이민 축소 정책의 일환이다. 트럼프는 급진 좌파, 비백인, 이민자를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보수적 백인 유권자의 반대편에 놓았다.
트럼프는 2016년 중산층 이하 백인들의 박탈감과 분노 등을 연료로 한 '증오의 정치'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이 침몰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는 결국 자신이 가장 자신 있고 잘 하는 방식의 정치로 돌아왔다.
현재로선 그의 '승부수'가 또 한번 통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와 최측근을 제외한 모두가 이런 전략이 세를 더하고 불리는 것과는 거리가 먼 '뺄셈정치'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동물적 감각과 계산이 빠른 트럼프는 현재 그에게 남은 전략이 '진지전'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전세가 불리할수록 진지를 구축하고 최대한 버티는 것만이 유일하게 역전을 노릴 기회를 엿볼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만에 하나 11월 대선 전에 코로나19 사태가 백신 개발 등 예기치 못한 사태로 호전될 경우, 트럼프는 그때부터 승부가 다시 시작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온라인 수업만 듣는 유학생 비자 취소 초강수...한국 유학생 5만여 명도 영향
미국 이민세관국(ICE)은 6일 오후 성명을 내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번 가을 학기에도 온라인 수업만 듣는 외국인 학생들의 비자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비자(F-1)과 직업 훈련 학생비자(M-1)을 발급받은 유학생들이 오는 가을학기에서 100% 온라인 수업만 듣게 되면 미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또 이런 학교에 등록한 학생들에게는 신규 비자를 발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ICE는 미국에 체류 중인 유학생들이 합법적인 체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면 수업을 제공하는 교육기관으로 전학한 뒤 비자를 재신청해야 하며,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추방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ICE는 온라인 수업과 대면수업 일정이 변경될 경우에는 해당 교육기관이 10일 안에 이 사실을 ICE에 알려야 하며, 만약 학기 중간에 온라인 수업으로 바뀐 경우에는 유학생들은 비자를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거나 미국을 떠나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위해 상당수의 대학들이 가을 학기에도 온라인 수업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게다가 6월 들어 코로나19가 미국 전역에서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ICE의 이런 결정 때문에 대면수업을 강행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7일 미국 교육 전문 매체인 고등교육 크로니클에 따르면, 전날까지 1090개 미 대학을 대상으로 가을 학기 수업 형태를 파악한 결과 대면수업을 계획하는 대학은 60%로 나타났다.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제시한 대학은 24%, 온라인 수업을 계획 중인 대학은 9%로 조사됐다. 대학 10곳 중 1곳이 ICE에서 '추방' 가능성까지 언급한 온라인 수업만 제공할 계획을 갖고 있다.
연방교육국에 따르면, 2018-19학년도 기준으로 미국에서 학업 중인 외국 유학생은 109만5299명이다. 이 중 한국인 유학생은 4.8% 수준인 5만2250명이었다. 이들 중 상당 수가 미국 내 합법적 체류 신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4월 60일간 미국 이민을 일시 중단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한데 이어 지난달 22일에는 올 연말까지 특정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취업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코로나19 사태를 빌미로 '반이민 정책'의 수위를 높여왔다. 이번 ICE 발표도 반이민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내려진 조치다.
또 다른 이유는 대학에 대면 수업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줄곧 경제 재개를 강조해온 트럼프 입장에서 학교가 정상 운영되는 게 경제 정상화에 매우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유학생 비자 취소 조치 철회하라" 백악관 청원 등장
ICE의 갑작스런 발표에 대학 당국과 유학생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유학생들의 등록금에 재정의 일정 부분 의존해온 대학들도 영향을 받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일부 유학생들은 백악관 청원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바로가기) 이들은 "ICE는 팬데믹 사태가 한창일 때 유학생들을 본국으로 강제 송환하기로 한 결정을 철회하라"며 이번 조치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 국제학생들은 매년 410억 달러(약 50조 원)를 미국 경제에 기여한다.
- 미국 대학과 연구 프로그램은 생존을 위해 유학생의 수입에 의존한다.
- 미국 대학들이 대먼 강의를 조기 개설할 경우 바이러스 전염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기업은 글로벌 인재에 의존하며 번창한다.
오바마 수석전략가 "트럼프 전략 작동 안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의 이런 '뺄셈 정치'에 대해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인 데이비드 액슬로드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6일 CNN과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대선 전략이 작동 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액슬로드는 "트럼프의 정치적 미적분학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에 관한 것"이라며 "그는 선거가 두 기지의 싸움이며 아주 적은 스윙으로 이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제는그가 2016년에 자신을 지지했던 세력들이 분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6년 트럼프를 지지했다가 떨어져나가고 있는 세력으로 교외 지역 유권자들(suburban), 대졸 이상 고학력 백인 등을 지적했다. 또 여성들은 대졸자 뿐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계층까지도 트럼프 지지자 중 상당수가 돌아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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