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경찰개혁 행정명령 서명하고도 웃는다?

[2020 美 대선 읽기] 트럼프, 정치 양극화 활용해 바이든 압박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경찰개혁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달 25일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 폭력에 의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미 전역에서 인종차별 철폐와 경찰개혁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가 일어난 것에 대한 대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항의 시위 초기부터 플로이드 사망을 일부 '나쁜 경찰'에 의한 일회적인 사건으로 간주하며 인종차별과 경찰개혁 요구에 미온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오히려 "법과 질서의 대통령"임을 자처하면서 항의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력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는 11월 3일 있을 대통령선거를 고려한 반응이었다.

때문에 이날 트럼프가 서명한 행정명령에 별다른 내용이 없을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된 바였고, 그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들은 평가했다. 과도한 물리력 사용으로 민원이 제기된 경찰을 추적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방안, 정신질환자나 노숙자 등 비폭력적인 신고에 대처할 때는 사회복지사가 함께 현장에 나가는 방안, 경찰서에서 경찰들의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들어가 있다. 트럼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찰의 생명이 위험할 때를 제외하고는 경찰의 목조르기가 금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법과 질서를 원하며 대부분 경찰관이 이타적이고 용감한 공복이라고 경찰의 노고를 치하하기도 했다.

또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경찰 폭력 피해자들의 유가족을 만났지만, 정작 기자회견장에는 경찰관, 경찰노조, 의원들이 참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실패에 이어 플로이드 사망 이후 전국적으로 번진 항의시위에 대한 대응 실패로 6월초 트럼프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38%, CNN 조사) 수준을 기록했다. 재선에 실패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 지지율과 비슷했다. 이날 뻔한 내용의 경찰 개혁안에 서명한 것도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다.

분절된 정치 지형, 최대 수혜자는 트럼프?

하지만 경찰개혁이 과연 트럼프에게 불리한 이슈인지는 재론의 여지가 있다. 현재 미국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다. 공화당 지지자, 특히 트럼프 지지자는 트럼프가 무슨 말을 하든 그를 믿고 지지한다. 민주당 지지자도 웬만해선 지지 정당을 바꿀 생각이 없다.

어떤 사회적, 정치적 이슈가 생겨도 이렇게 분절된 정치 지형 속에서 논의가 되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인 예방 수단이 마스크 착용 문제마저도 트럼프 지지자들에겐 '정치적 올바름'의 상징이자, '반 트럼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플로이드 사건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전체 미국인들 중 54%가 이번 시위를 지지하고 22%가 반대(워싱턴포스트 조사)하지만, 지지 정당에 따라 찬반 비율이 크게 달라진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찬성이 69%, 반대가 13%인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찬성이 39%, 반대가 38%로 나타났다.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의 54%가 시위대의 경찰에 대한 폭력이 과도하다고 답했다.

때문에 트럼프 입장에서 자신의 '알맹이 없는 경찰개혁안'에 대한 비판은 어차피 자신을 찍지 않을 유권자들의 목소리다.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은 경찰개혁안의 실질적 내용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

트럼프는 이날 경찰개혁안을 발표하며 "급진적이고 위험한" 경찰 예산 삭감 요구에 대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경쟁자인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경찰 예산 삭감 주장을 재차 연결시켰다. 앞서 트럼프는 일부 시위대의 '경찰 예산 삭감' 주장에 재빨리 초점을 맞춰 '경찰 예산 삭감 = 공권력 붕괴 = 무질서와 혼란 = 바이든'이라는 공식을 지속적으로 설파해왔다. 바이든이 직접 '경찰 예산 삭감'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호시탐탐 트럼프의 공격은 계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경찰개혁안을 놓고 입장이 난처해진 것은 바이든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우리 혁명', '흑인 유권자도 중요하다', '라틴 아메리칸 시민연합' 등 50여개 진보성향의 단체는 16일 바이든에게 더 진보적인 경찰개혁 정책을 채택하지 않을 경우 지지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특히 지역 치안 유지 프로그램에 3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바이든의 공약을 비판했다. 이들은 "연방정부가 지역 경찰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그 비용을 지역의 교육비, 의료비, 기타 사회서비스 비용으로 돌려줄 것으로 요구한다"며 경찰 예산 삭감을 요구했다.

앞서 바이든은 이달 초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관련해 필라델피아를 방문해 경찰의 목조르기 사용 금지법, 경찰 무력 사용 기준안 마련 등 경찰력의 감시와 책임 강화를 약속했다. 바이든은 또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임기 100일 안에 경찰감독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 예산 삭감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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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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