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필승 전략? '바이블 벨트'와 '러스트 벨트' 결합!

[2020 美 대선 읽기] 트럼프, '어게인 2016년' 시동.."향수로는 이길 수 없다" 비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캠프가 지난 4일(현지시간) 비공개 참모진 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는 브래드 파스케일 선거캠프 본부장, 빌 스테피엔 부본부장, 저스틴 클락, 마이클 글래스너, 제이슨 밀러, 밥 파두치크 등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이 가장 신뢰하는 선거 전략가들이 참석했다고 <악시오스>가 8일 보도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경찰폭력과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지면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자리에서 선거 캠프 참모진들은 트럼프가 플로이드 시위 정국에 내놓은 해법 "법과 질서"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더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메시지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법과 질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 베트남전 반대 시위 등을 혼란스러운 상황에 치러진 대선 때 내세웠던 구호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플로이드 사망 관련 항의시위를 주도하는 이들이 "테러 집단"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폭동진압법'을 발동해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당시 일부 약탈이나 방화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절대 다수의 집회와 시위가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시위대를 위협하기 위해 워싱턴 상공에 '블랙호크'를 띄우고 군대를 동원한 대통령의 '초강경 대응'은 현직 국방장관이 반기를 드는 등 역풍이 일었다. 조지 W. 부시, 스티븐 매티스, 콜린 파월, 밋 롬니 등 공화당 내 무게감이 있는 전현직 정치인들이 모두 트럼프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트럼프의 메시지를 이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백인우월주의를 숨기지 않는 트럼프 열성 지지자들을 조준한 메시지다. 플로이드 관련 시위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제 노골적으로 큐클럭스클랜(KKK) 상징을 동원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 입장에선 인종차별 항의시위로 그 규모와 존재가 명확해진 '반대 세력'과 싸우도록 하기 위해 이들을 동원할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명분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지난 주 비공개 캠프 전략회의에서 결정된 구호가 "위대한 미국의 귀환"이다.

트럼프 재선캠프는 8일 성명을 내고 "미국 국민은 다시 행동할 준비가 돼 있고, 트럼프 대통령도 그렇다"며 "'위대한 미국의 귀환'은 실재하는 것이며 집회는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9일 트위터를 통해 다음 주부터 대중 동원 유세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성경책 해프닝', KKK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시위대에 의해 일부가 불에 탄 성요한 교회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AP=연합뉴스

트럼프는 지난 1일 오후 급작스럽게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플로이드 사망 관련 시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법과 질서의 대통령"이라고 선포하면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 뿐 아니라 군대까지 동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위대를 향한 '선전포고' 격인 성명 발표가 끝나자마자 당시 백악관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강경 진압이 시작됐다.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 섬광탄, 고무탄 등이 발사됐고, 말을 탄 경찰들이 시위대를 압박하면서 해산을 시도했다. 물리력을 동원한 경찰의 압박에 시위대는 흩어졌다. 그러자 트럼프는 곧바로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윌리엄 바 법무장관 등을 대동하고 전날 시위대에 의해 건물 일부가 불탄 성요한 교회를 걸어서 방문했다. 그리고 교회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그 유명한 기념사진을 찍었다.

트럼프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다수의 목사, 신부들이 "종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다"고 비판하고 나섰지만, 보수적 성향이 강한 복음주의 기독교 목사와 신도들의 생각은 다르다. 복음주의는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며 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 등을 강력 주장하는 기독교 분파다. 이들은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 그룹 중 하나다.

2016년 대선 때 복음주의 세력은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가 아닌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에 더 경도돼 있었다. 크루즈의 부친은 쿠바 이민자 출신이면서 복음주의 교회 목사였다.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패한 뒤에도 크루즈는 끝까지 트럼프에 냉랭한 입장이었다. 때문에 복음주의 신자들의 트럼프 지지가 지금보다는 낮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집권한 이후로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트럼프는 종종 현대판 키루스 2세로 비유될 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키루스 2세는 유대인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로 묘사된다고 한다. 트럼프 정부의 주요 정책인 멕시코 국경장벽, 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 등은 복음주의자들의 정치적 요구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올해 1월 3일 자신의 지지자들의 모임인 '트럼프를 위한 복음주의(Evangelical for Trump)'와 행사를 갖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나의 재선을 위한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는 2016년 당시보다 더 놀랍다"며 지지를 호소했다고 <크리스천포스트>가 보도했다.

트럼프의 '성경책 퍼포먼스' 이후로 복음주의자들이 행동에 나섰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제리 팔웰 주니어 리버티 대학 총장은 지난 8일 자신의 트위터에 KKK 복장을 한 사람의 사진을 올린 것에 대해 사과했다. 리버티 대학의 흑인 학생, 직원, 동문들의 거센 항의 때문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기독교 대학인 리버티 대학은 그의 부친(제리 팔웰 시니어)이 설립했다(한국 목사들의 상당수도 이 대학 출신이다. 한국 기독교의 주류가 보수적인 이유가 복음주의처럼 보수적 기독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부친은 보수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 모임인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를 만들었으며, 이들은 네오콘의 물주 역할을 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대학 총장이 된 팔웰 주니어는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 3월 한 방송에서 코로나19가 북한의 생물학 무기에서 유래됐다는 '음모론'을 펴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때 물의를 빚었던 트럼프의 각종 비과학적 주장("살균제를 체내에 주입하자",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들이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또 지난 7일 버지니아주 리치모드 레이크사이드 시위 현장에 한 백인 남성이 트럭을 몰고 돌진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차량에는 트럼프를 응원하는 문구,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문구 등이 적힌 깃발이 꽂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KKK의 리더 중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KKK는 1865년 남북전쟁 패배후 남부군 패잔병 6명이 만든 백인우월주의 테러집단이다.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동성애 반대 등을 내세우는 KKK는 복음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복음주의자들의 열성적인 지지는 '러스트벨트(미국 북동부의 쇠락한 중공업지대,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미시건 등)'에서의 지지 열기가 2016년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승리했던 6개의 경합주(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에서 모두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10일 프레시안과 전화 인터뷰에서 "2020년 트럼프 재선 캠프의 주요 목표는 러스트 벨트와 바이블 벨트를 결합해 열성 지지자들을 최대한 동원하는 것"이라며 "교회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사진을 찍는 이벤트 등이 실책으로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복음주의 신도 등 자신의 핵심 지지층에게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를 주기 위해 계산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현장 집회 장면. "법과 질서"라는 문구를 적은 푯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는 열성 지지자의 모습이 흡사 종교집회를 떠오르게 한다. ⓒ<폴리티코> 화면 캡처

2016년 선거팀의 귀환..."2020년은 2016년이 아니다" 비판도

2020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앞에 놓여진 상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불황, 전국적인 항의시위 등 중층의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대립 전선을 긋고 갈등과 증오를 극대화시키는 정치를 하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보면 이해가 안 되지만, 선거에 방점을 찍고 보면 이해가 된다.

10일 <AP통신>은 "최근 며칠간 트럼프는 자신의 재선 운동을 위해 2016년 대선 당시 참전 용사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을 승인했다"며 "충성심을 요구하고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성격의 트럼프는 유권자들과 다시 마주하기 5개월 전에 원래 팀의 마법을 재연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보도했다. 지난 주 있었던 캠프 전략회의 때 참가한 인사들의 면면을 봐도 2016년 대선캠프 때부터 중용한 인사들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패착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6년 트럼프 캠프에서 커뮤니케이션 담당 보좌관을 했던 샘 넌버그는 AP와 인터뷰에서 "2016년 그룹이 다시 뭉친 것은 환상적이지만 현실은 현실이다"라며 "트럼프는 간신히 이겼고 지지세를 확장하기 위해 지난 4년간 크게 한 일이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과거의 향수를 가지고는 이길 수 없다"며 "재선은 슬로건이나 주제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국민들이 나를 왜 다시 뽑아햐 하는가'에 대해 심판을 받는 것이다. 지난 번 전쟁을 그대로 할 수는 없다. 새롭게 적응하지 못하면 죽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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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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