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활동가의 '고통 증언', 그 의미를 되새기다

[기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우리가 소홀히 여긴 것은 없을까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의 활동과 국회에 진출한 윤미향 전 대표의 행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었다.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와 전신인 정신대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인권옹호 활동가이자 당사자 경험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 입장에서 몇 가지 의견을 올리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민 모두의 관심사이며 정치적인 문제이지만,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와 식민지 가부장제하에서 수난당한 여성들의 문제다. 아울러 식민지의 상흔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구술을 듣고 증언 자료를 모아서 연구하고, 이를 여성인권의 문제로 드러낸 여성운동 선구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후 정대협이 만들어져 여성인권운동으로 발전한 것은 수많은 피해 생존자 활동가와 여성 활동가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30년 노력으로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중요한 의제로 대두되었다. 1993년 노태우 정부에서 1963년 한일협정에 묻혀 있었던 일본의 책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김영삼 정부시기 '고노 담화'를 통해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냈고, 한계는 있었지만 일본 정부와 시민사회로 하여금 '아시아여성기금'을 추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기금의 성격에 대한 논란으로 운동 내부의 입장은 분화되었다. 2012년 정대협의 제기로 국가의 책무에 대한 위헌 결정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진척은 없었고,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퇴행적 합의와 문재인 정부의 합의 번복으로 이어졌다.

정대협을 중심으로 한 군 위안부 인권운동은 정부의 책임 있는 해결 노력이 부족한 가운데 전시 하 동아시아 여성인권 문제에 경종을 울려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대협의 운동이 피해 생존 여성들의 다양한 증언 듣기에 소홀했고, 운동 과정에서 생존자들을 옹호하고 운동의 주체로 역량을 지원하는 '진정한 연대'를 실천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피해 생존자들의 삶의 문제를 규명하고 그들의 요구와 입장을 반영하여 운동의 방향 또한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미셸 파인(Michelle Fine)은 억압받는 소수자에 대한 글쓰기는 '타자화'를 경계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은 타인을 알기 위해 노력하거나 목소리를 제공하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지식을 구성하고 대리하는 자로서 타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위안부 피해자와 같은 차별받는 소수자의 투쟁에 참여하는 연구자는 공동작업의 가능성과 협력의 딜레마에 대해 질문하고 끊임없이 성찰할 때만, 내부적 식민지화와 착취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피해 생존자들이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고 고통을 증언하는 일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고통스러운 증언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운동의 과제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고통을 증언하는 분명한 목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발언 과정은 수치스러운 과거를 딛고 자신의 인권을 되찾는 주체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지만, 기억의 되살림은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이용수 활동가도 여러 차례 주저하다가 언론사를 찾아갔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논문과 인터뷰 등을 통해 이 같은 심정 밝히고 있다.

"이젠 그만해도 내가 수십만 번 했고 하니까 참 그 아주 괴롬(괴로움)을 주는 거고 피해를 입히는 거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하면 얼마나 가슴 아픈 줄 알아요? 그러니까 저는 잠을 못 자요. 자기네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증언하지만은 웃지만은 내가 그 사람들 쳐다볼 때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생각해요. 원망도 해요."(☞ 관련 기사 : <연합뉴스> 5월 18일 자 '숱한 증언 뒤 감춰진 고통…이용수 할머니 "나는 어디선가 운다"')

만일 증언하는 고통만이 있고 자신들의 삶을 실제로 개선시키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증언은 희망 고문이 되고 말 것이다. 정대협과 정의연은 피해 생존자들에게 증언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고통스러운 증언에 대해 합의한 운동의 목적이 있었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실천하고자 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경험한 과거의 고통을 증언할 때도 그 증언은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 자리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그들이 직면한 현재의 삶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귀환한 이후의 삶도 중요하게 증언되어야 하며, 그들의 삶의 문제가 현실 속에서 해결되어야 하고 동시대 시민 모두의 과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런데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귀환 이후의 증언은 매우 부족하고, 귀환 이후의 삶을 규명하는 사회학적인 연구도 부족하다. 귀환 이후의 삶에 대해서 뿌리 뽑힌 여성의 '피해 후유증'으로 다뤄지면서 여성학적 심리학적 초점으로 환원되고 있으며, 생애사적 서사로만 다뤄지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정대협이 펴낸 이용수 활동가의 증언 기록에도 귀환 이후의 삶은 아주 적은 분량만 차지한다. 그의 구술 기록을 동화적으로 엮은 생애사와 그의 활동을 소재로 만든 영화 이외에 귀환 이후 70여 년 장구한 세월 동안 고립되었고 차별받은 가난한 여성의 삶을 밝혀주는 자료는 부족하다. 여성학자 윤정옥 교수가 군 위안부에 대한 초기 연구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민족주의가 녹아든 여성학적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이후 정대협 공동대표로 활동했던 사회학자 이효재 교수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자들의 참여가 있었지만, 식민지하에서 성적 착취를 당한 후, 한국 현대사에서 차별받고 가난하게 살아 여성들의 삶을 규명할 수 있는 총체적인 연구가 이뤄지지는 못한 듯하다.

당초 정대협 운동을 태동시킨 여성단체연합과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여성인권의 문제에 전착하면서도, 그 여성들의 계급적 문제와 삶의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고 판단한다. 6명의 생존자들을 면담한 심영희 연구에 의하면, 생존자들 대부분은 가족을 부양하느라 닥치는 대로 일해 온 하층 여성의 경제 활동 양상을 보여준다. 식당과 술집, 식모살이, 새마을사업 이외에도 성냥이나 담배, 야채, 빵, 미제 물건, 고철 등을 사고파는 장사를 하였다. 귀환 이후 뿌리 뽑히고 차별받은 가난한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계급적 상황에 대한 자료는 개인적 서사가 다수다.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귀환 후 받은 삶의 고통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책임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셋째, 정대협과 정의연은 운동의 실천적 측면에서 피해 생존자들과의 관계에서 범한 오류를 되돌아봐야 한다. 정대협과 정의연은 30년간 대표적인 전시 하에서 아시아 여성인권 운동으로 발돋움하여 국제적 위상을 높였음에도, 근래까지 이견을 표출한 피해 당사자들을 운동에서 소외시키고 분열시킴으로써 운동의 주체로서 성장시키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피해 생존자들인 '무궁화회' 회원들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배제했으며, 생존자들의 독자적 노선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 생존자들의 당사자성을 무시하고 의제를 독점화하여 그들을 '내부 식민지화'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넷째, 군 위안부 인권운동이 권력에 편입되지 않고 보편적인 인권운동에 충실했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데도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밝히기 위한 역사적 연구도 중요하고, 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고통을 집단의 기억으로 되돌려 과거사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 생존자의 삶을 시민사회가 지지하고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노태우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에 대한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노력이 부족했음에도, 군 위안부 인권운동 조직의 대표가 반일 민족감정을 국내 정치에 동원한 집권당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진출한 것은 냉정하게 비판되어야 한다.

이용수 활동가의 공식 증언과 귀환 이후 삶에 대해 부족하나마 언론에 소개된 증언을 살펴보면서 그의 진술에서 의미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귀환 이후 망가진 자신을 보살펴 온 어머니 등 가족의 지지에 힘입어 살아올 수 있었으며, 위안부 생존자임을 증언하고 운동에 참여하는 주체성을 통해 스스로를 회복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연대해야 하는 옹호 단체와 인권운동 단체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지점이 아닌가 싶다. 그의 삶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겁이 많은 가난한 소녀였던 그는 만 16살 가을, 일하는 어머니 대신 동생들을 키우다가 친구를 따라 위안소 행(行) 기차를 타게 되었다. 대만으로 가는 선상에서 강간을 당했고, 위안소에 도착해 전기고문을 당한 후 두려움에 꺾여 위안소 생활을 시작하였다. 일본 특공대 병사를 상대해야 했고 성병과 더불어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후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근근이 자신을 부양하며 가난하게 살아야 했다. 환갑 나이에 결혼한 적도 있지만 실패하였다. 증언에 나서기까지 어머니 말고는 자신의 과거를 발설하지 못했으며, 어머니 때문에 죽지 못했다고 밝혔다. 죽기 전에 김학순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고, 자신의 원통함을 해결하고 싶다고 밝혔다.(정대협 발간 증언자료 참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권 이슈인 군 위안부 문제는 제국주의 문제(또는 민족문제), 전시 하 여성인권 문제, 가부장제와 계급 문제 등이 교차한다. 그러나 문제의 소재는 피해 생존자인 할머니들의 삶과 그들의 증언에서 찾아야 하며, 시민사회의 인권운동은 수치스러움을 감수하며 용기를 내어 증언한 그들의 삶의 회복에 기초하여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 이용수 활동가가 발설하는 목소리를 '현재의 증언'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저항하는 새로운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남아프리카 장애인 운동가들이 주창한 슬로건 'Nothing About Us Without Us!(우리를 제외하고는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은 '당사자주의'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는 군 위안부 생존자들에게도 그대로 관통한다. 이용수 활동가의 발언을 다시 한번 요약해서 들어 본다.

"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돼지도 않았는데, 단체 대표자가 개인적으로 정치에 진출한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반일 구호에 기댄 수요시위가 도움이 돼지도, 학생들에게 올바른 교육이 되지도 않는다. 정대협은 피해자들을 이용하지 말라. 한일 양국에 실현 가능한 문제해결 방안을 조속히 모색해야 한다. 기존 조직을 해체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정대협, 정의연의 성과를 바탕으로 국민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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