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트럼포칼립스!

부시 전략가가 평가한 트럼프 정치 <트럼포칼립스>..."트럼프는 최악의 대통령"

"1980년대 말 파산한 이후 트럼프는 바로 그 다음 24시간 동안 채권자들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계획과 사기 행각을 벌였다. 이는 트럼프가 코로나19 위기를 관리해온 방법이다. 매일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안심시키고 금융지수를 끌어올리려는 희망으로 새로운 환상을 고안했다. 10주 동안 TV, 라디오, 소셜 미디어에 있는 트럼프의 디지털 친구들은 그가 트위터를 통해 한 거짓말을 패러디했다. (트럼프에겐) 어떤 계획도 없었다."

<트럼포칼립스>(Trumpocalypse)는 트럼프(Trump)와 아포칼립스(Apocalypse : 대재앙, 종말)의 합성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데이비드 프럼이 최근 펴낸 책 제목이다.

공화당 지지자이지만 '네버 트럼퍼'(Never Trumper,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인 프럼은 이 책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4년이 미국 정치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는 용어로 '(재앙으로 인한) 종말'을 제시했다. 그는 3월 중순께 쓴 서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지적하며 "책 제목의 트럼포칼립스는 이제 현실에서 트럼포칼립스가 됐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의 오는 11월 대선 결과를 예측하고자 하는 책은 아니다. 트럼프의 재선 여부와 무관하게 트럼프식 정치가 미국 사회에 '대재앙'이라는 주장이다.

프럼은 25일(현지시간) MSNBC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로 트럼프의 재선 전망이 어두워졌다고 밝혔다. 그는 6-7개월 전과 달리 현재 시점에서 "트럼프는 패배해야만 하며 아마도 패배할 것"이라면서 "그는 출구를 모색하고 있고 탈출 방법으로 찾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사라져도 트럼프 정치는 오래 남을 것"

프럼은 트럼프에 대해 "전직 대통령 중에서 가장 낮을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가 더 천착한 것은 트럼프가 재선에서 실패해 정치 일선에서 사라지더라도 트럼프식 정치는 미국 사회에서 그렇게 쉽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는 "감염병과 경제적 불황이 트럼프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더라도 트럼프의 핵심 기지는 남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프럼이 생각하는 트럼프식 정치란 무엇일까? 그는 트럼프가 정치에서 "양심"을 제거했다면서 미국 정치에서 도덕적 가치를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가로 성공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기는 것만을 추구했으며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은 요란한 승전보 뒤로 숨겨 버렸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로저 스톤, 마이클 플린 등 정치적 모사꾼들을 동원해 흑색 선전을 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썼고, 전체 득표 수에는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300만 표나 뒤졌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경합주(스윙 스테이트)를 공략하는 전략으로 뒤집기를 시도해 결국 정권을 잡았다.

'양심의 소리'에만 귀를 닫으면 쉽고 빠르게 이길 수 있는 트럼프식 정치에 지난 3년간 여당인 공화당도 포섭됐다. 트럼프는 집권 후 공화당을 빠르게 재편해 충성파를 행정부와 의회 요직에 앉혔다. 이들은 민주당 정권에서 오히려 더 커진 경제적 격차로 힘들어진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를 정치적 자양분 삼아, '미국 우선주의', '신보수주의'라는 허울로 '백인 우월주의'를 포장했다.

프럼은 "공화당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그들의 가치로 받아들였다"며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공화당은 망가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도 아니면서 트럼프식 정치를 전면에 내세운 공화당은 오는 11월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의회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현재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원의원 선거에선 공화당이 패배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는 특히 트럼프가 대선에서 다시 이기기 위해선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해 유색 인종을 억압하는 전면적인 문화 전쟁을 벌여야 하며 이 과정에서 공화당은 "민주 정당이 아닌 (트럼프) 수행 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트럼프는 코로나19가 중국이 의도적으로 유포했을 수도 있다는 음모론 등을 제기하면서 중국과 정치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분노'로 탄생된 트럼프 정치, '경멸'로는 이길 수 없다

프럼이 트럼프식 정치가 트럼프 재집권 여부와 무관하게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 까닭은 트럼프의 정치력의 근원인 공화당 지지자들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반의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2018년 중간선거 기간에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각각 관심 이슈를 꼽으라고 하자, 민주당 지지자들은 의료 서비스(87%)와 '성별간 불평등'(87%) 문제를 가장 큰 관심사라고 답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첫번째로 경제(85%), 그 다음이 이민(84%) 문제를 꼽았다. 이같은 차이는 미국 사회가 산적한 문제들에 대한 합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보인다. 어떻게 이렇게 달리 생각할 수가 있을까? 공화당 지지자들은 암에 걸리지 않나? 민주당 사람들은 국가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나?"

그는 양당 지지자들의 이렇게 양분화된 정치적 인식이 이런 분열에 기생하는 공화당과 민주당 정치인들로부터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분열은 2008년 이후 공고화됐다고 본다.

2008년 금융위기로 중산층은 대거 집과 일자리를 잃었지만, 상류층은 더 많은 돈을 벌었다. 평등을 주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민주당도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금융자본과 결탁해 그들의 이익을 대리했다. 백인 노동자 계층의 이유 있는 '분노'는 트럼프에 의해 정치적 목소리를 갖게 됐지만, 트럼프 정치와 마찬가지로 '분노' 이상의 비전과 전략은 없다.

문제는 이들의 '분노'를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다. 프럼은 "민주당이 모든 국민을 위한 미국을 건설할 역량이 없는 한 트럼프 정치를 이길 수 없다"며 "트럼프 정치를 양산한 이들의 '분노'는 이들에 대한 '경멸'로는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개혁 만이 '트럼프 재앙' 극복하는 길

"우리"와 "그들"의 확연한 구분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진정 트럼프식 정치를 종식시킬 수 없다고 프럼은 생각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작고 사소한 정치개혁"이 너무나 멀어보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유권자들, 특히 소수인종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유권자 등록제도, 인구 변동을 아직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선거구 등 소수의 표가 다수의 대표성을 갖게 만드는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대통령 후보들이 세금 신고와 금융 자산을 공개하도록 하는 등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등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더 근본적인 정치개혁의 문제, 선거인단 제도로 인한 사실상의 선거권 박탈 문제에 대해 비판하기는 하지만 개혁의 대상에 올려놓지는 않았다. 공화당은 1992년 이후 7번의 대선에서 6번을 유권자 투표에서는 졌지만 선거인단 투표로 결과를 뒤집어 3번이나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

프럼은 이런 노력 없이 트럼프로 인해 망가진 공화당의 재건은 불가능 하다고 본다. 냉소적 분노 이외에 어떤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는 정치 지형 속에서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로 한발의 진전조차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프럼은 자신이 제안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개혁은 민주당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향해 "화해와 포용의 정신을 보이면" 충분히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프럼은 신학에서 '아포칼립스'가 '종말' 그자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더 나은 질서'의 전조라고 본다고 지적한다. 트럼프가 가져온 재앙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종말'로 귀결될지, '더 나은 질서'를 가져올 수 있을지 아직 결론 내리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미국이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 출간된 <트럼포칼립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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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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