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스크 살인'까지...트럼프도 '마스크 거부'

일부 미국인들, 마스크 착용에 극심한 반감...정치인들이 혼란 부추겨

미국인들은 왜 마스크 착용에 그토록 거부감을 가질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부 미국인들은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가장 초보적인 수단인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고 있다.

마스크 착용 요구에 살인, 직원 옷에 코를 닦고, KKK 두건 쓴 인종주의자 등장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시의 한 상점에서 보안요원이 손님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시간주에서는 주지사의 행정명령에 따라 상점 내에서는 직원과 고객 모두 마스크를 써야 한다. 때문에 보안요원은 이를 지키지 않은 여성 고객과 딸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청하자 여성 고객은 격렬히 거부했다. 잠시 후 이 여성은 남편, 아들과 함께 다시 나타나서 보안요원과 말다툼을 하다가 흥분한 아들이 보안요원에게 총을 쐈고, 머리에 총상을 입은 보안요원은 결국 숨졌다.

지난 2일 미시간주의 다른 상점에서는 직원으로부터 마스크 착용을 요구받은 남성이 그 직원의 셔츠에 자신의 얼굴을 문지르고 코를 닦은 뒤 "이걸 마스크로 쓰면 되겠다"고 조롱했다. 그 남성은 상점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 소란을 피우고 난동을 부렸다.

또 같은 날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한 식료품 매장에는 마스크 착용 행정명령에 불만을 품은 한 남성이 백인우월주의자 테러집단인 ‘큐 클럭스 클랜’(KKK)의 상징인 고깔모자 형태의 두건을 쓰고 나타났다. 이 남성은 식료품점 직원들로부터 수차례 KKK 두건을 벗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다가 결국 경찰에 체포됐다.

▲주지사의 봉쇄령에 반대하며 주의회를 찾아 항의하는 미시간 주민들.ⓒCNN 화면 갈무리

마스크 착용 행정명령, 주민들 반발로 하루 만에 철회되기도

지난 4월 30일 미시간주지사의 행정 명령에 반대하며 경제 재개를 요구하기 위해 미시간주 의회의사당으로 7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이 시위대에 방탄조끼에 총기를 들고 중무장을 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마스크는 착용한 이들은 없었다. 이들만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경제 재개 요구 시위에 참여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거부감은 일부 사람들의 일탈 행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공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클라호마주 스틸워터시는 5월 1일부터 상점과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가 시행 하루 만에 이를 철회했다. 시행 첫날부터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는 점원이 고객에게 화염방사기로 위협 받는 등 자칫 인명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수준의 폭력이 잇따라 일어났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지난 3일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 중 다수는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으며, 그들에게 마스크를 쓰도록 강요할 방법이 없다"며 행정명령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개인의 자유권 침해한다 여겨"

미국에서는 상대방의 눈을 주시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인사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한다. ‘마스크 착용’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싶은 범죄자이거나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중환자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인종적 편견도 작용한다. 마스크 착용은 일본, 한국 등 아시안들의 유별난 행동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마스크 착용은 신체적 불편을 동반한다. 때문에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한번도 사회적으로 요구받은 적이 없는 마스크 착용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감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라고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팬데믹의 심리학>의 저자 스티븐 테일러는 특히 미국인들은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이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스크 착용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감염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이해시키더라도 이를 강요할 경우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 "분노하거나 격분할 수 있다"고 6일 CNN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밴더빌트대 의대 데이비드 아로노프 교수는 담배가 타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공공장소에서 금연을 요구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의 문제로 마스크 착용에 대한 계몽이 필요하다고 CNN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마스크 지침이 강제적인 순응이 아니라 필요한 연대 행위로 생각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며 "미국인들 모두가 전염병이 사라지기를 희망하고 있고, 그렇다면 나와 공동체를 위해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나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친절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사회 연대 의식이 부족한 상황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나서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고 이런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이런 혼란스러운 정치적 메시지는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논리적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마스크 공장 찾은 마스크 안 쓴 대통령, 병원에서 마스크 안 쓴 부통령

▲허니웰 마스크 생산공장을 찾은 트럼프. 그를 수행하는 이들은 마스크를 모두 안 썼고 생산라인의 직원들은 마스크를 썼다. ⓒNYT 화면 갈무리
▲대형병원을 찾은 펜스 부통령. 혼자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CNN 화면 갈무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허니웰사 공장을 방문했다. 38일만의 외부 일정이었다. 허니웰은 항공우주 시스템을 개발하는 미국의 다국적 복합기업으로,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N95 마스크를 생산 중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그를 안내하는 회사의 간부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였고, 생산라인에 있는 공장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심지어 공장 건물 벽에는 "주의 : 이 곳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요구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안내문구가 쓰여 있었다.

허니웰사 관계자는 "백악관의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안내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음성이 확인된 사람들이었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도록 했다"며 "나머지 직원들은 공장 규칙에 따라 마스크를 썼다"고 밝혔다. 이는 마치 권력을 가진 이들은 마스크 착용이라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권력이 없는 사람들만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4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마스크 착용을 전국민에게 권고하는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마스크를 쓴 채 다른 나라 정상들을 만날 수 없다며 "나는 쓰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앞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지난달 28일 미네소타 대형병원인 마요클리닉을 방문하면서 혼자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었다.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를 총괄하고 있는 펜스 부통령은 뒤늦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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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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