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재난국가가 전면에 등장했다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한 것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 1972년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즈의 강연 제목이다. 나비효과라는 말의 유래다.
2019년 하반기 어느 때인가 중국의 우한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와 전파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의 팬데믹을 선언했다.
한국 시간으로 2020년 5월 5일 03시 현재 전 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350만 명을 돌파한 362만8824명에 이른다. 사망자 수는 25만 명이 넘는 25만4430명.
1위인 미국의 확진자 수는 무려 197만2119명(사망자 7만115명)으로, 2위인 스페인의 확진자 21만8011명(사망자 2만5428명)의 5배에 달한다.(존스홉킨스대학, CSSE)
전 세계에 걸쳐 국가가 다시 최전면에 등장했다. 국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시에 준하는 각종 강제 지침을 실행하고 있다.
전 세계 187개 국가 약 40억 명의 국민이 ‘사회적 거리두기’, 모임 금지, 통행 금지, 도시 봉쇄, 국경 폐쇄 등의 감금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모터스에 인공호흡기를 생산하라는 긴급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동안 수십 년 동안 기업과 언론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데올로기 아래 국가를 축소하고 국가의 주요 핵심 기능, 예컨대 공공의료 분야를 영리회사들에게 넘기는 이른바 민영화를 밀어붙여 왔다. 미국과 이탈리아가 보여주고 있는 코로나19 의료 붕괴 현실은 바로 그 결과다.
그런데 이제는 심지어 스페인은 민간병원을 비롯한 모든 병원과 의료서비스사업의 임시 국유화를 단행하기도 했다.
한국의 극우 언론 시각에서 보면 미국과 스페인은 이미 빨갱이 나라다.
한마디로, 근대 국민국가가 생긴 이래 전쟁을 제외하고 비상사태에 대응한 새로운 유형의 비상재난국가가 탄생하고 있는 중이다.
장기비상 시대
코로나 비상상태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잦아들어도 언제든 또 다른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의한 팬데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코로나19보다 수십 수백 수천 배 인명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기후 재난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지금 미국 서부는 사상 최악의 거대 가뭄(megadrought)이 진행 중이다.(사이언스, 2020. 4. 16) 벌써 미국, 브라질, 유럽, 동남아 할 것 없이 때 이른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6개월이나 지속되다가 지난 2월 폭우가 쏟아지면서 간신히 진화된 호주의 대형 산불은 기후 비상사태의 예고편일 수 있다. 2019년 여름, 유럽의 살인 폭염도 전주곡에 불과할 수 있다.
2010년 러시아를 비롯한 곡물 수출국들의 이상 가뭄과 밀 수출 중단으로 국제 식량가격이 폭등했다. 이 여파는 곧바로 아랍 국가 인민들의 연쇄 시위와 '자스민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극단의 이슬람국가(ISIS)가 창설되고 시리아에서는 내전이 일어나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 식량전쟁이며, 우리는 지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비규환의 기상이변과 식량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다. 혹여나 이번 여름에 이런 기후재난 사태까지 겹친다면 이는 정말로 상상하기도 끔찍한 재앙의 복합 재난 상황이 될 것이다.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은 지금 여기의 시공간뿐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인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 같은 돌발 변수에 의해 미래는 언제든 전혀 다르게 변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과학의 인과론이든 붓다의 연기론이든 인과응보의 결과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장기비상 시대가 시작되었고 신종 비상재난국가가 지속되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권자 국민이 만든 민주주의형 비상재난국가, 한국
서구의 근대 국민국가를 태어나게 한 모태는 전쟁이었다.
영국도 프랑스도 전쟁과 내전 속에서 시민혁명과 함께 근대 국민국가가 탄생했다. 독일은 1871년 보불전쟁(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의 승리와 함께 40여 개에 이르는 국가를 통일해서 독일제국으로 출발했다. 미국도 영국과의 식민지 해방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연합(United States)으로 국민국가를 출범시켰다.
아시아 지역의 국민국가들도 대부분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식민지 해방투쟁을 벌이면서 새롭게 출범했다.
자본주의를 채택했건 사회주의를 채택했건 근대 국민국가의 본질은 개발 산업화와 경제성장 국가였다. 그리고 성장과 산업화의 주요 원동력은 전쟁이었다. 심지어 미국은 전쟁국가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전쟁을 먹고 사는 국가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상품 생산의 본질과 인간의 소외 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물신주의를 비판한 그 한 가지만으로도 존중받을 만한 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반공 정신병동이었던 한국에서 푸대접을 넘어 '빨갱이 사상'의 원조로 저주를 받고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역사를 반추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원과 에너지 고갈을 아예 무시한 개발 성장주의자였다. 그는 자본주의 근대 산업화를 문명 진보의 지표로 절대화해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기까지 했다.
특히 국가에 대해서는 지배계급의 착취 도구라는 단순 정의를 빼놓고는 더 깊이 조사 연구를 하지도 않았다. 공동체주의(communism)라고 번역하는 게 정확한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국가는 자동으로 소멸된다고 본 것이 전부다. 국가에 대한 이런 무지가 맑시즘의 국가론을 빈곤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조사연구와 논의는 오히려 인류학에서 풍성하게 전개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수메르 도시국가가 최초로 발생한 이래 국가의 기능과 역할, 성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 어떤 이론이건 한 가지 확실한 현실은 국민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전쟁에 맞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전쟁 수행자도 국민이며 국가의 주인도 권력자가 아니라 주권자인 인민이라는 사실이다. 국가를 해체할 수 있는 것도 인민이며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인민이다. 구소련은 구소련 인민에 의해 국가가 소멸된 극명한 사례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 대한 대응방식은 국가별로 천양지차다.
다만 중국과 일본, 유럽, 미국의 대응방식과 다르게 한국의 대응방식이 'K-방역'이라는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전 세계 주목을 받는 이유의 근저에는 주권자인 한국 국민의 존재가 부각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은 저강도 권위주의 국가 체제였던 '이명박근혜' 정권 당시인 2015년 5월 20일 최초 메르스 환자 확진 이후 은폐와 책임 회피로 일관한 국가방역 체제의 붕괴를 경험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선 2014년 4월 16일에는 '국가에 의한 세월호 승객 학살'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참담한 권위주의 국가의 실상을 목격해야만 했다.
2016~2017 대규모 촛불시위는 이 같은 '국민 없는 국가'를 주권자의 힘에 의해 바꾸자는 혁명의 시작이었다. 무력혁명이 아닌 비폭력 평화 혁명으로, 소수 엘리트의 대리 행동이 아닌 주권자의 연대와 연합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 태어나게 만들고자 일어선 ‘지속 혁명’의 출범식이었다.
수많은 소통의 네트워크와 함께 직접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주권자 인민들은 스스로의 힘을 구사해 대통령 탄핵을 이뤄냈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새로운 주권자 대통령으로 갈아치웠다. 4.15총선에서는 입법 권력도 교체해 버렸다. 앞으로 헌법개정을 통해 사법권력까지 교체하면서 제7공화국을 탄생시키는 데까지 나아가면 지속혁명은 완수될 것이다.
군사작전식 봉쇄와 통제의 권위주의형 비상재난국가 모델과 달리 한국의 민주주의형 비상재난국가 모델의 뿌리에는 이처럼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넓고 깊은 주권자의 각성과 행동이 있었다.
21대 총선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은 양당제 대의제 정치 국가이다. 그러나 그 뿌리에는 조만간 출구를 찾아야만 하는 주권자 직접 민주정치의 촛불이 넘실거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분출될 시꺼먼 구체제 이산화탄소 성장 경제
자본주의는 성장을 멈추는 순간 붕괴된다.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는 그 어떤 종교 교의보다 더 강력한 주술이었다. 오죽하면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기괴한 용어까지 만들어 낼 정도였다.
화석연료와 자원고갈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국가와 기업은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낸 뒤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길로 가속 페달을 밟아왔다.
인간 욕망의 극대화 현실을 보여주는 이 같은 눈먼 질주를 멈추게 하고 눈을 뜨게 만든 것은 어이없게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반생명체 하나였다. 바이러스가 우리를, 국가와 기업을 멈춰 세웠다.
코로나 격리와 봉쇄 조치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줄일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 4월 30일 2020년 1/4분기에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5% 정도 감소했고, 2020년 한 해 약 8% 정도 감축될 것으로 예상했다.(IEA, 2020 에너지 리뷰) 이 수치는 IPCC의 1.5도 특별 권고 수치인 2030년까지 40% 감축, 매년 약 7.6% 감축 목표를 상회하는 수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항공기와 선박 등 교통 분야의 탄소 배출은 대폭 줄었지만, 전기는 그저 약간 떨어졌을 뿐이고 음식 포장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은 오히려 급증했다. 우리나라의 4.15 총선에 사용된 일회용 비닐장갑만 해도 63빌딩 7개 높이에 이른다.
코로나19 제한 조치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 하반기에는 대규모 소비 폭발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거의 모든 국가와 기업들이 다시 경제성장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갈 것이고 그와 함께 탄소 배출 또한 다시 미친 듯이 시꺼멓게 폭발할 것이다.
예컨대 중국의 석탄발전은 2월에는 감소했다가 3월에는 다시 증가했다. 석탄은 전 세계 탄소 배출의 40%를 차지한다.(Carbon Brief)
개발 성장주의를 끝내는 대전환의 재난국가는 가능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개발성장의 팬데믹, 세계화의 팬데믹을 숙주로 폭발하듯이 일어났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세계관을 뿌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체제 자체가 전환되지 않으면 성장주의는 결코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끝은 인류의 멸종이다.
영국의 한 기후위기 행동 단체 이름은 '멸종 저항'이다. 이들은 비폭력 평화 시위를 벌이지만 일부러 도로를 무단 점거하는 불법 시위를 벌이고 연행 구금을 밥 먹듯이 당한다.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에 들어가 이미 인류보다 앞서 멸종돼 공중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공룡의 화석 뼈 아래 드러누워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그렇게 한다.
개발 성장주의의 대안은 이미 넘치도록 많이 나와 있다. 쌍둥이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산업화의 대안도 이미 수없이 제시되어 왔다. 성장에서 순환으로, 개발과 발전에서 생태와 공생, 연대와 협동 경제로의 전환은 그린뉴딜을 비롯해서 이미 수많은 정책으로도 제시되어 있는 상태다.
기후위기에 대한 주권자들의 문제의식은 대단히 높다. 4.15총선에서 유권자의 86.5%가 기후위기 비상사태의 선포 필요성에 공감했고, 77.4%가 기후위기 대응 공약 제시 후보 또는 정당에 투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그린피스, 기후위기에 대한 유권자 인식 조사, 2020. 2. 28.)
문제는 성장주의를 붕괴시켜야 하는 주권자들의 정치력이다. 국가 체제 자체를 전환시킬 수 있는 주권자들의 조직된 정치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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